Book Column – 나와 마주서는 용기 <로버트 스티븐 캐폴런>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을까요? 물론 세상에서 ‘나’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은 사람은 ‘나’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최고로 좋아했던 장난감, 초등학교때 자주 갔던 친구네 집, 중학교때 혼자 좋아했던 이성친구, 고등학생때 제일 친했던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잠을 설치며 괴로워했던 일, 대학교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장래 희망, 대학생때 조별과제 발표를 맡아 교수님과 친구들 앞에서 멋지게 프리젠테이션을 해서 날아갈듯이 기뻤던 일 같은 정보는 구글, Chat GPT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소소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잊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 ‘내가 생각하고 싶은 나’로 살아가며 ‘진짜 나’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나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주어진 일에 우리를 맞춰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별로 관련이 없는 몇 십개의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가 그중 서류와 면접에 통과된 회사에 들어갔을 뿐인데 면접때 여러회사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뽑아만 주시다면 이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라는 맹세의 덫에 빠져, 진짜로 그 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회사 생활을 시작합니다.

몇년 먼저 입사한 대리조차 마치 대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대리님’도 신입 사원 앞에서는 마치 대단한 사람처럼 행동하다 보니, 스스로 자신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방해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욕을 먹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을 배웁니다.
장문의 보고서를 썼다가 ‘소설 쓰니?’라는 핀잔을 듣고, 발표 자료에 컬러를 사용했다가 ‘니가 피카소냐?’ 라고 면박을 당하고, 회의때 용기를 내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가 ‘국회로 가실분이 우리 회사로 오셨군요’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열심히 몇년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어느새 훌륭한 ‘대리님’이 되어 신입사원의 예술적 재능과 정치적 소신을 잘라내어 예쁘게 다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연말 인사발표날 즈음이 되면 사내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누가 올라갈지 누가 못올라갈지, 누가 떠날지, 누가 옮겨갈지에 대한 정보에 촉각을 세웁니다. 인사 결과를 열심히 분석하다 보면 오너의 의중과 실세의 의도, 회사의 방향이 보입니다. ‘잘나가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 앞으로 ‘나아갈’ 사람과 앞으로 ‘나갈’ 사람이 보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정보는 내가 ‘속도에 맞게 올라가고 있느냐’입니다. 그렇게 매년 웃고, 울며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납니다. 슬슬 회사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합니다. 뼈를 묻는다는 맹세를 할때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회사가, 이제는 내가 회사에 뼈를 묻을까봐 걱정합니다. 슬슬 나에게 주는 월급이 아까운것 같습니다. 소위 가성비가 떨어지는 나이가 된것이죠.
반값에 뼈를 묻겠다는 젊은 아이들이 줄을 섰는데, ‘임원이 될만큼 특별하지’ 않은 부장님은 좀 부담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뼈는 가족의 손에 의해 납골당에 가는 것이지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에서 회사에 뼈를 묻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을. 그렇게 눈치밥을 먹으며 하루하루 버티다가 문득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일을 정말로 좋아했나?’

<나와 마주서는 용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제목만 들으면 ‘심리학’책 중 하나로 느껴집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책은 ‘자기 계발’ 쪽의 책으로 ‘하버드대 10년 연속 명강의’라는 부제목에 끌려 손이 갔던 책입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10년 이상 명강의로 뽑혔다면 최소한 중간 이상으로 건질것이 있을거란 믿음이 있었는데 거기에 덧붙여 저자가 세계 최고의 금융기업 ‘골드만삭스’ 부회장 출신이라는 것에 한번 더 마음을 빼았겼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 골드만삭스 부회장,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라는 저자의 경력은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컴퓨터 게임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깨는 극단적으로 강한 캐릭터) 레벨입니다. 지구에 살면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최고의 정상에 올라본 사람이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그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조언이 궁금했습니다.

다소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느낌의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서 철학적, 심리학적 용어를 찾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심리학 서적으로 분류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랬던것 같습니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아껴주는 그러나 나의 성장을 바라기에, 어리광은 용납하지 않는 잘 나가는 직장 상사와 1:1 면담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조언은 이렇습니다. 저자는 30년이란 세월을 고민하며 성공이란 부모님, 배우자, 친구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잠재력에 도달하는 것에 있다는 것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열정이란 최고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진짜 나’를 만나야 합니다.일단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업무적으로 평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년 자신을 업무적으로 업그레이드 할 줄 아는 사람이 변화된 경제 환경, 조직 환경에 맞춰 조직에서 오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평가와 조언에도 귀기울이고 결코 자신의 약점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오랜 조직생활을 위한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스토리(부모님 포함)를 직접 써보고 자신의 과거를 마주함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마음속 깊이 원하는 일을 찾아내어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을 것을 권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만나보면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의 원인을 만나서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때 잡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꿈(비젼)을 꾸고, 관리자를 넘어 리더가 될것이며,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서 고립되는 상황을 피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때, 홀로 고립된것 같은 기분을 느낄때, 너무 돈이 필요해서 좋아하는 일을 따라갈 수 없을 때 등 저자는 본인의 경험과 자신의 학생 및 지인들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나’라는 블랙박스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험 전날에는 외운것을 잊어버리는 내 자신이 정말 싫지만, ‘망각’은 개인이 본인에게 불쾌한 기억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진화의 결과입니다. 모든 불쾌한 기억을 모두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보니 좀 끔찍하네요. 그 불쾌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심지어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을 조작하기 까지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이 일을 사랑해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하지만 이런 망각, 조작 시스템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진짜로 좋아했던 것, 잘했던 것, 마음 깊숙한 곳부터 행복했었던 일 또한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인생의 어느 순간 벽을 만나거나, 길을 잃거나, 무기력해지는 순간을 만나 타의에 의해 인생의 경로가 바뀌는 아픈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시킬 수 있는 열정에너지를 사용하여 남들보다 너 높은 벽을 뛰어넘고, 더 멀리 지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항으로 뛰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컴퓨터 화면을 열고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잘했던 일, 싫어하고 못했던 일, 행복했고 슬펐던 일을 적어보며 인생스토리를 적어보면 어떨까요? 잠깐 길을 잃었거나, 더 성장하고 싶은 갈망을 느끼거나, 성취감을 느끼며 일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장연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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