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가까이 있는 서늘함

중국 쿤밍, 리지앙

가깝고 시원한 곳을 찾으려는 욕망

위도 10도 부근, 적도와 가까운 호찌민시의 8월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더웠다. 습도 높은 30도의 날씨에 갑작스레 쏟아지는 스콜까지, 동남아시아 특유의 짜증스러운 기후였다. 한국조차 36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되던 2025년 여름, 시원한 곳을 찾는 것은 절실한 욕망이 되어 있었다.
달랏이나 사파 같은 고원 휴양지들이 늘 거론되지만, 인터넷 어딘가에서 발견한 정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호찌민에서 비행시간 1시간, 아니 베트남에서 육로로도 갈 수 있는 곳인데 홋카이도 삿포로보다 더 서늘한 도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중국 남부 운남성의 성도, 쿤밍이었다.

국경, 그 경계의 의미

그렇게 시작된 여행길. 홍강 삼각주의 끝자락, 라오까이의 새벽 공기는 예상보다 서늘했다. 2025년 8월 30일, 베트남과 중국을 가르는 1,297km의 육상 국경선 중 한 지점에서 나는 또 다른 세계로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국경이란 무엇인가. 지도 위의 선 하나가 언어를, 화폐를, 그리고 시간마저 바꿔놓는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웠다.
라오까이 국경 검문소는 2025년 들어 160억 달러 이상의 교역량을 기록할 만큼 활기를 띠고 있었다. 용과와 수박, 망고를 실은 트럭들 사이로 여행자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에서 이곳이 단순한 경계선이 아닌, 두 문명이 만나는 교차로임을 실감했다.

베트남 라오까이에서 바라본 중국 국경 세관의 모습

복흥호, 시간을 압축하는 기적

허커우북역에서 마주한 복흥호는 중국의 현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2019년 개통된 이 노선은 과거 하루가 걸리던 여정을 4시간 45분으로 압축시켜 놓았다. 속도가 곧 문명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듯, 160km/h로 달리는 열차는 윈난성의 험준한 산맥을 거침없이 관통했다.
건수역을 지나 몽자역에 이르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두루마리 산수화를 펼쳐보는 듯했다. 석회암 지대 특유의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기암절벽과 구름에 잠긴 봉우리들은 ‘산수갑천하(山水甲天下)’라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허커우 북역에 정차한, 복흥(푸싱)호 열차, 고속철도는 아니며, 최고속도 180킬로미터의 열차다

춘성, 영원한 봄의 도시

쿤밍역에 내린 순간, 고원 특유의 맑고 건조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해발 1,892m, 뎬츠호를 품고 있는 이 도시는 ‘춘성(春城)’이라는 별명답게 8월 말의 무더위조차 26도에 머물러 있었다.

쿤밍이 품고 있는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촉군에서 시작해, 원나라 때 ‘쿤밍’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이 도시는 중화문명의 최남단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다. 특히 중일전쟁 당시에는 충칭 정부의 대외창구로 기능하며 ‘비행기 띄우는 도시’로 불리기도 했다.
홀리데이인에 짐을 풀고 시내로 나서니, 쿤밍의 현재가 한눈에 들어왔다. 868만 인구의 거대 도시이지만 어딘가 여유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이는 아마도 1년 내내 변하지 않는 온화한 기후가 만들어낸 도시의 성격일 것이다.

서산 용문, 절벽에 새긴 믿음

다음 날 아침, 서산산림공원으로 향했다. 청나라 시대 도교 승려들이 뎬츠호 서쪽 절벽에 정으로 뚫어 만든 이 공원은 중국인들의 종교적 열정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1,333개의 계단을 오르며 숨이 가빠올 때마다, 수백 년 전 이 험준한 절벽에서 돌을 깎아낸 선인들의 의지가 새삼 경외스러웠다.

해발 1,000m 용문에서 내려다본 뎬츠호는 ‘고원의 진주’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았다. 중국 여섯 번째 담수호이자 윈난성 최대 호수인 이곳은 340㎢의 넓이에 수많은 갈매기들이 점점이 떠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쿤밍에 왔다면 서산에 가지 않으면 안 되고, 서산에 왔다면 룡문에 올라야 한다”는 옛말의 무게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석림, 지구가 빚어낸 조각품

오후에는 2억 7천만 년 전 바다였던 곳이 지각변동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낸 석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자연이 시간을 도구 삼아 빚어낸 거대한 조각품이었다.
미로 같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만난 기묘한 돌기둥들은 각각 고유한 이름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족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다 돌이 된 아시마의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지질학적 경이로움과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다.

리지앙, 나시족 천년 왕국의 수도

9월 1일 아침 일찍 쿤밍역에서 리지앙행 고속철도에 몸을 맡겼다. 3시간의 여정 끝에 도착한 리지앙은 해발 2,400m 고원 위에 자리한 나시족의 옛 수도였다. 한족보다 소수민족 인구가 많은 이 특별한 도시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성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Hotel Indigo Lijiang Ancient Town에 체크인하며 느낀 것은 이곳만의 세련된 문화적 감수성이었다. 나시족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인테리어는 천년 고도의 품격과 현대적 감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였다.

고성, 성벽 없는 성의 지혜

리지앙고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시간이 역류하는 착각에 빠졌다. 원나라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 고도는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성벽이 없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을 다스린 목씨 가문이 ‘木’자를 ‘困’자로 만들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성벽을 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는 복잡하게 얽힌 수로와 지형적 특성상 성벽의 방어 효과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이런 언어유희가 담긴 설화야말로 중국 문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고성의 심장부인 쓰팡제(四方街)는 명청 시대 차마고도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사방으로 뻗은 거리’라는 뜻의 이름처럼 6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골목들은 각각 고유한 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태극권을 하는 노인들과 전통 복장을 한 나시족 여인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온 배낭족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졌다. 이것이야말로 리지앙이 가진 진정한 매력 –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조화로운 공간감각이었다.

밤, 또 다른 얼굴의 리지앙

해가 지고 리지앙고성에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나시 고음(古音)과 현대적 팝송이 기묘하게 어우러지며, 젊은 여행자들로 가득 찬 바와 카페들이 불야성을 이뤘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헌팅의 성지’라고까지 불리는 이곳의 밤 문화는 천년 고도의 품격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행의 끝에서

9월 2일 저녁, 4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든 생각은 ‘경계’에 대한 것이었다. 라오까이에서 시작된 이번 여행은 단순히 국경선을 넘나드는 이동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권 사이의 경계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쿤밍의 현대적 역동성과 리지앙의 전통적 정취, 한족 문화와 소수민족 문화,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계지대에서 나는 여행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이란 결국 경계를 넘나들며 차이를 체험하고, 그 차이 속에서 인간과 문화의 보편성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다음에는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옥룡산의 만년설과 호도협의 급류까지 만나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뒤로 하며, 나는 영원한 봄의 도시에서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귀로에 올랐다.

리지앙까지 와서 본 사진의 풍경을 못본것이 너무 아쉽다

쿤밍으로 가는법

육로 (하노이-라오까이-쿤밍)

육로로는 하노이(Ha Noi)에서-라오까이(Lao Cai)까지 가는 버스 혹은 열차를 타면된다, 라오까이행 버스는 Sao Viet사에서 운영하는 침대버스가 하노이 구도심 114 Tran Nhat Duat거리 혹은 미딩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7 Pham Van Dong거리에서 출발하여 라오까이 국경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하루 약 20편 운항중이다. 23시 59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추천하며, 베트남 고속버스 예매는 Vexere.com을 추천한다.

국경통과후 중국으로 넘어가서는 여행객에게 가장 편리한 방법은 버스가 아닌 열차다.
허커우 북 역에서 준고속열차인 복흥호(푸싱호)는 하루 3편 08:30, 13:20. 18:10시에 쿤밍행열차가 출발하며, 여유있게 즐기고 싶으면 K9604열차가 있다. 본 열차는 08:55분에 출발하여 7시간 뒤인 15:05분에 쿤밍역에 도착한다. 중국열차 예매는 trip.com에서 하시길 권유한다.

항공

호찌민, 하노이 양대도시에서 중국동방항공이 독점으로 매일 운항중이다.
호찌민 -> 쿤밍(비행시간 3시간 15분):
▶ MU(중국동방항공) 9634편 출발시간 1910~도착시간 2310
쿤밍->호찌민:
▶ MU(중국동방항공) 9633편, 출발시간1605~도착시간 1810
하노이-쿤밍 (비행시간 1시간 30분):
▶ MU(중국동방항공)9606편, 출발시간 1730~도착시간2015
쿤밍-하노이:
▶ MU(중국동방항공)9605편, 출발시간 15:55~도착시간1630

중국 여행의 기본 Essential 5가지 명심할 사항

1. 알리페이
중국에서 QR코드를 통한 모바일 결제가 일상화되면서 외국인 여행객들도 알리페이(Alipay)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알리페이는 VISA나 마스터카드 등 해외결제 가능한 신용카드와 여권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다.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서 ‘ALIPAY’를 내려받은 뒤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하고 본인인증을 하면 된다. 상점에서는 알리페이 앱으로 QR코드를 생성해 결제하거나, 상점의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스캔해 결제, 택시, 교통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2. 제 3국 출국 항공권 혹은 교통편
중국 무비자 입국의 핵심 조건은 정해진 체류 기간 내 출국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육로로 입국하더라도 중국을 떠나는 항공권, 선박승차권, 또는 열차표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열차를 통해 홍콩으로 빠져나가는 티켓 혹은 각 여행객에게 적절한 승차권을 추천한다.
3. 호텔 예약은 외국인이 리뷰한 곳에서만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투숙할 수 있는 호텔이 별도로 지정되어 있어, 지정받지 않은 숙박업소는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 홀리데이인, 힐튼, 쉐라톤, 메리어트 등 외국계 체인 호텔은 대부분 외국인 투숙이 가능하다. 하지만 저가 호텔이나 소규모 숙소는 중국 국적자만 투숙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내국인 전용 호텔들은 글로벌 예약 사이트에 등록은 되어 있어도 외국인 투숙 제한 사실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4. 여행시 주숙등기 필수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외국인의 경우 현지 도착 후 24시간 이내에 ‘주숙등기’라는 거주지 등록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외국인이 호텔에 투숙할 경우에는 호텔 측에서 이 절차를 자동으로 처리해주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주숙등기 제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국 현지인의 집이나 외국인 투숙이 불가능한 숙소에 머물 경우에는 직접 파출소에 가서 등록해야 한다.
5. 핸드폰을 끄면 곤란해 진다
중국에서는 모바일 기기 없이는 의사소통과 결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알리페이를 통한 일상적인 결제, 교통카드 발급, 고속철도 승차권 예약구매 등이 모두 스마트폰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휴대폰을 켜둔 채 소지해야 하며, 반드시 중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심카드가 필요하다. (데이터 전용이라도 준비해두어야 한다). 중국은 외국어 소통이 어려운 나라다. 상하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고급 유명체인호텔 직원조차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파파고와 같은 번역 애플리케이션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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