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오늘의 제목은 좀 철학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누구나 가끔은 돌아보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그대는 어떻게 답할 수 있나요?
역사에 기록된 모든 철학자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어느 철학자도 정답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저도 이 주제를 끄집어 냈지만 정답을 도출할 방법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제 글을 즐겨 읽는 독자들과 함께 사고해 보려 합니다.

마크 투 웨인이라는 미국 작가를 아시죠.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책을 쓴 작가로 한국인, 특히 아동들에게 잘 알려져 있던 작가입니다. 이 양반은 그런 흥미롭고 가벼워 보이는 소설을 통해 사회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런 사회정의에 대한 경종과 동시에 이 작가가 평생 관심을 준 주제는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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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가 한 말 중에 묘한 의문을 던지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 두개는, 태어난 날과 그 이유를 알아낸 날이다.
모든 세상 만물은 원인과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 탄생이 원인이라면 그 이유는 반드시 있다는 것이지요. 세상을 만든 조물주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존재한 인간자체가 갖는 타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 영문 문장에 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날, 태어난 날과 그 이유를 알아낸 날, 두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The day you were born and the day you find out why –
그는 태어난 이유를 알다 라는 표현을 know를 쓰지 않고, find out 즉, 찾아 낸 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find out 이란 자신의 의지가 동원되어 찾는다는 동사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찾아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만들어 가는 것” 이 더 합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침마다 집사람이 밥상을 차리면서 틀어 놓은 찬송가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찬송가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구절이 들어간 찬송이 있습니다. 참 좋아합니다. 이 찬송을 들으면 외로운 영혼이 위로를 받는 듯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새겨보면 참 공허합니다. 현실감이 좀 떨어지죠.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사랑받기 위함이라고, 어떻게?
자조적인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번 깊이 돌아보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주기 위해 애쓰라는 말 아닌가요? 스스로를 잘 가꾸어서 사랑받고, 마음을 선하게 쓰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요. 이것으로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갑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이라는 서사를 아시죠. 그리스 신화 속의 고린도 왕이었던 시지프스는, 죽음을 속이고, 저승의 신 하데스를 묶어 놓아 세상의 인간을 아무도 죽지 않게 만들어, 신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신들은 그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립니다.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에 굴려 올리고 꼭대기에 다다르면 갈 곳이 없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다시 굴려 올리게 하는 가혹한 형벌입니다.
영원히 반복되는 무의미한 노동을 계속하는 형벌입니다.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한 그에게 내린 합당한 벌일 수 있습니다. 너 역시 의미 없는 노동을 영원히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인생의 허무입니다.
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고,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지만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어김없이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일터를 향해야 합니다. 우리같은 평범한 범부들의 일상입니다. 이런 일상에서 어떻게 우리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나요?
삶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전도서 1:2)에 보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평생을 공부하고 노력하며 쌓아 올린 지혜도, 쾌락도, 부도, 명예도 다 바람같이 사라진다고 말하며, 결국 인간 스스로가 찾아가는 인생의 행복과 의미는 궁극적으로 허무에 부딪힌다 고 말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삶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귀띔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며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 이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니 주어진 삶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이라 말씀하십니다.

요즘 너무 애쓰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호기있게 세계를 누비며 다니던 세상이 갑자기 변화하면서 완전히 낯설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숨쉬고 있으니 세상을 거부하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낯설은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익혀가야 하는데 이게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하루 하루 지쳐가는 마음에 이제 이만큼 살았는데,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왜 살아가는 가 하는 의문이 올라옵니다.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려 하는가 하는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는 말이 정답인 듯합니다.
살아있으니 살아갑니다. 이 각박한 삶 속에서 내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역시, 주물주가 주신 기쁨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하루 해가 저물고 집으로 돌아갈 때 세상 풍파에 지친 뻐근한 어깨의 통증이 뿌듯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이겠지요.

현대 철학자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의 무의미한 노동을 두고 인생자체가 이렇게 무의미하지만 그 무의미를 깨닫고 굴하지 않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태도가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이렇게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결국 위대한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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