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첫 남편 부여우태가 일찍 사망하여 20대 과부가 된 소서노는 운명을 개척합니다. 두번째 남편 주몽을 만나 고구려 건국을 주도 합니다. 하지만 주몽의 배신으로 소서노는 자신이 세운 고구려를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당시 기준으로 노령인 49세 소서노는 두번째 국가 백제를 건국했습니다. 소서노가 남쪽으로 떠나는 시점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야사에 의하면 주몽은 첫번째 부인 예씨를 만난 후 소서노를 의식하여 아들 유리의 거처만 궁궐에 마련하고 예씨부인은 궁궐 밖 사저에 머물게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소서노는 궁궐에 예씨부인의 거처를 마련합니다. 또한 소서노는 예씨부인에게 첫번째 왕후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둘째 왕후가 됩니다. 소서노의 통 큰 양보에도 불구하고 주몽은 유리를 후계자로 선정하자 소서노는 분노가 폭팔합니다. 하지만 주몽은 소서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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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8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군주로 기록 되었습니다. 이는 전쟁에 승리한 신라와 당이 역사를 기록하기였기 때문입니다. 삼천궁녀와 낙화암 이야기는 당시 기록에는 없습니다. 백제멸망 천년 후 조선시대 유교사상에 젖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면서 만들어낸 남성 중심 사회의 결과물 입니다. 구석기 시대의 모계사회 “소서노”, 필자가 접한 역사인물 중 참 신비한 여성입니다. 어떤 학자는 소서노의 업적에 대해서 고대사회의 흔적인 모계사회가 남긴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인류 역사는 고대에서 중세까지 여성의 사회활동을 극히 제한하였습니다. 모계사회는 구석기 시대에만 존재 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정착된 주거지가 없고 동굴 생활을 했는데 집단 거주를 합니다. 결혼제도가 생기기 전이라 수십 명의 남녀가 혼숙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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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8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는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믿고 있으며 대중 가요에도 등장합니다. 백제의 마지막 군주 의자왕 실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국가 멸망의 책임은 당연히 마지막 군주에게 있지만 의자왕의 경우는 왜곡이 심한 것 같습니다. 당과 신라는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보니까 의자왕을 폭군으로 기록해야 침략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경우 거의 폭정에 신음하는 이웃국가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는 논리로 역사를 기술합니다. 따라서 망국의 마지막 군주의 잘못은 과장하고 잘한 것은 축소합니다. 우선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을 중심으로 의자왕을 살펴봅시다. [의자왕은 무왕의 장남이고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고 불렀다] 이 기록은 의자왕을 소개하는 첫 기록입니다. 상당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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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4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수나라와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에 대한 기록은 당 태종 이세민이 편찬한 수서 당서 입니다.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라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삼국사기 역시 중국 기록을 많이 참조하고 우리나라 기록은 자료가 부족하여 참고한 내용은 미미 합니다. 따라서 고대사 해석은 합리적 추론이 필요 합니다. 첫째, 당 태종 이세민이 기록한 고당 전쟁의 기록은 진실인가? 안시성 전투에 관한 기록은 진실인가? 우선 안시성 성주 이름은 양만춘인가? 진실을 살펴봅시다. 고당전쟁 당시의 기록인 구당서 기록에는 안시성 성주 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름은 없습니다. 우리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도 안시성 성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안시성주 양만춘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 선조 실록에 등장하고 효종 실록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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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3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700년 역사를 지닌 고구려와 백제가 사라지고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민족이 활동하던 영토가 축소되어 아쉽지만 단일민족의 개념이 생기고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합니다. 수 문제의 30만 대군은 전염병 때문에 고구려 침략에 실패 했는가? 먼저 중국 수나라의 역사서 “수서”에 기록된 고구려 침략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수 문제는 30만 대군으로 고구려 정벌에 나섰지만 전염병이 번져 회군했다. 또한 산동반도를 출발한 수나라 해군도 풍랑을 만나 철수 했다. 고구려 정벌에 나선 군사들은 열에 여덟 아홉은 죽었다.” 수서의 기록이 좀 이상합니다. 세계 전쟁사 어디에도 전염병으로 90%의 군사가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수서의 기록과 비슷 합니다. 이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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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9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삼국시대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7세기 중반 고구려 백제 연합군에 의해 한강유역을 침범 당하고 백제에게 대야성이 함락된 신라는 비담의 반란까지 겹쳐 국가 존립이 위태 했습니다. 그러나 김춘추는 외교력을 발휘하고 김유신은 뛰어난 군대 통솔력으로 신라는 위기를 극복 합니다 입지가 강화된 김춘추와 김유신은 신라를 이끌며 권토중래 합니다. 이렇게 위기를 극복한 신라는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아갑니다. 삼국통일 전쟁의 시작 삼국통일 전쟁이 일어나기 20년 전부터 삼국은 치열하게 싸웁니다. 먼저 백제의 멸망 과정을 살펴봅시다. 의자왕은 641년 즉위하자 마자 귀족들의 권한을 약화 시킵니다. 이때부터 백제에는 귀족들의 불만이 생깁니다. 왕권을 강화시킨 의자왕은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와 당나라의 연결 통로인 당항성을 공격합니다. 또한 윤충 장군을 보내 신라의 요충지 대야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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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6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끝났지만. 요동벌판을 피로 물들이고 지구전 수성전 청야전으로 버틴 고구려는 농토가 황폐화 되고 많은 전사자를 내고 10만이 넘는 고구려 백성들은 노예로 끌려갑니다. 농토와 농부가 없는 고구려는 한동안 정상적인 경작이 불가능하여 향후 몇년간 대기근을 겪게 됩니다. 세계 전쟁 사학자들도 극찬한 대제국 수 당과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국력이 소진됩니다. 하지만 건국이래 다시 없는 고구려의 위상을 자랑합니다. 전쟁 승리로 연개소문 정권은 힘을 받아 독재자의 길을 갑니다. 고려의 탄생 고구려가 중국을 상대로 싸울때 백제와 신라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을까요? 한번 살펴봅시다. 먼저 삼국통일 시대보다 조금 과거로 돌아갑시다. 서기 371년 광개토 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은 평양성 전투에서 근초고왕에게 패하고 전사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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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2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중국의 혼란기를 통일한 수나라는 창업주 수 문제와 아들 수 양제 2대에 걸쳐 4번이나 고구려를 침략 했습니다. 그러나 4전 4패한 수나라는 멸망하고 승리한 고구려도 엄청난 국력을 소모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일반 백성들 입니다. 고구려를 4번이나 침략한 수나라는 무모한 전쟁으로 멸망합니다. 이때부터 중국에는 “요동랑사가” 라는 노래가 유행합니다. “요동에 (고구려) 가서 헛된 죽음을 당하지 말자” 라는 내용입니다. 중국의 백성들도 고구려 침략은 힘들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승리한 고구려도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구려 보다 20배의 인구와 50배의 경제력을 가진 중국과의 전쟁을 4번이나 이긴 고구려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하지만 승리해도 중국보다 더 지쳐갑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겪는 백성들의 삶은 너무 고달프죠.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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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6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2천년 동안 지속된 순장제도는 수 백만명을 희생 시켰습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국가 멸망때까지 순장제도를 지킨 가야는 인구 부족으로 생산성 감소, 국방력 약화로 신라에게 멸망 당합니다. 또한 인도적 차원에서 유교 학자들의 순장제도 반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순장제도의 반대가 많은 가운데 천년 동안 순장제도는 더 지속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국민들만 힘듭니다. 우리민족 최초의 통일인 삼국 통일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라가 통일한 삼국 통일의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는 통일 후 우리 민족의 영토가 대동강 이남으로 축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구려가 통일 했다면 만주 땅은 우리 국토가 되었을 것이고, 남북 분단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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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9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2천년 동안 지속된 순장제도는 수 백만명을 희생 시켰습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국가 멸망때까지 순장제도를 지킨 가야는 인구 부족으로 생산성 감소, 국방력 약화로 신라에게 멸망 당합니다. 또한 인도적 차원에서 유교 학자들의 순장제도 반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순장제도의 반대가 많은 가운데 천년 동안 순장제도는 더 지속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국민들만 힘듭니다. 결초보은이 기록된 배경 위과는 아버지 위주의 장례때 단 한명도 순장하지 않고 장례를 마칩니다. 장례 절차 도중에 동생 위기는 “형님 왜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조희를 무덤에 넣지 않았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위과는 장례가 끝나고 동생 위기, 조희, 조희 아버지 세명을 불러놓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합니다. “아버지께서 늘 조희를 아끼셨고 사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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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5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2020년 9월부터 작가의 사정으로 휴식기를 갖은 <전종길의 역사더하기>가 새해를 맞아 독자 여러분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한국 역사이야기를 중심으로 당파싸움의 구조로 글을 작성하셨던 전종길 작가는 역사의 시기가 아닌, ‘역사기간에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있었던’ 테마를 중심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2021년 첫 편은 순장제도(상편)입니다. – 순장제도는 사후 세계가 존재 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국왕이나 신분이 높은 귀족이 죽으면 주인을 모시던 노비 첩 등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입니다. 즉 자기가 모시던 주인이 죽으면 젊은 첩과 노비들은 저승까지 따라가서 모셔야 하는 슬픈 처지입니다. 발굴된 고대 시대의 무덤을 보면, 적게는 3 ~ 4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을 함께 묻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순장된 노비들이 많을수록 자식들은 효자라고 칭송 받았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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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4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전쟁이 나면 임금 곁에 숨어야 안전하며 공신도 되지 충절이 넘쳐서 전투에 참가하면 역적으로 몰려서 집안이 거덜난다” 난 이야기 사림파가 정권을 잡고 곧이어 분열과 전쟁을 겪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왜군의 침략을 감지하고도 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왜군과 싸워야 하는 조선 장수들은 도망가기 바쁩니다. 문관만 고상하고 무관을 천시하는 성리학의 풍조가 빚어낸 현상입니다. 의심받은 무관들 신립 장군의 기마병이 충주에서 몰살했으나 상주에서 도망친 경상도 순변사 이일 장군은 충주 전투가 시작되자 또다시 도망갑니다. 이일은 한양으로 도망가서 신립의 패전 소식을 선조에게 고하고 이렇게 건의합니다. “오랑캐의 기세가 드세니 일단 피하시어 훗날을 도모하소서” 이일은 자기처럼 선조에게 도망가자고 채근하고 연이은 패전에 불안한 선조는 북쪽으로 몽진을 갑니다. 다수의 신하들은 “임금이 한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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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만년 야당 사림파가 180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으나 사림파 내부의 자리 싸움으로 사림파는 동인과 서인으로 쪼개집니다. 이른바 4색 당파의 시작 입니다.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으로 인해서 국가보다는 당과 가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백성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당파대결과 외교정책 사림파가 동인 서인으로 쪼개진 후 두 계파는 서로 정권을 주고 받습니다.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들이 선조의 미움을 받아 동인들이 먼저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서인에서 동인으로 당적을 바꾼 정여립이 역모 사건에 연류되어 동인들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 합니다. 서인 집권 당시 1580년 부터 10여년 중국과 일본은 격동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중국의 사정을 먼저 살펴보죠. 청 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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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9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180년 동안 성리학을 공부한 사림파는 정권 획득 후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동서로 갈라집니다. 조선의 우수한 전랑 제도 역시 권력 투쟁에 악용됩니다. 이때부터 300년 사림파 내부의 권력 투쟁은 이전의 훈구파보다 더 심하게 진행됩니다. 초심을 잃어버린 속도가 훈구파보다 빠릅니다. 붕당을 예언한 영의정 “만년야당” 많이 들어본 말 입니다. 현대 정치에도 50년 만년 야당이 존재했고, 조선 초 등장한 사림파도 80년 야당 생활을 했습니다. 사림파는 수천명의 희생자를 댓가로 치르면서 얻은 정권인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훈구파의 부패한 정치 때문에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은 사림파는 10년 남짓 유지하다가 분열됩니다. 이러한 붕당을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영의정 이준경 입니다. 이준경은 사림파의 지나친 원칙주의와 이론주의 때문에 분열을 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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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4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고려말 성리학을 같이 공부한 동문들이 조선 건국을 거치면서 서로 갈라져서 훈구파와 사림파가 되었습니다. 두 세력은 같은 학문을 공부했으나 뚜렷한 이념적 차이를 보입니다. 현실 정치를 추구하던 훈구파는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되면서 180년 권력을 잃고 사라집니다. 반면 명분과 도덕성을 주장한 사림파는 국왕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획득 합니다. 이후 사림파는 300년간 조선사회를 지배합니다. 중세에 시작된 위민정치 온건개혁파 이색과 정몽주의 학문을 계승한 야은 길재는 고향 구미 금오산으로 내려가 30년간 많은 학자들을 양성했고, 길재 사후 길재의 제자들도 학자 양성을 계속 합니다. 성리학의 종주로 추앙 받는 김종직을 필두로 길재의 학풍을 이어 받은 걸출한 학자가 많이 배출 됩니다. 중종때 조광조 명종때 퇴계 이황, 조식, 기대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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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5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지난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개혁을 성공한 조선건국 세력들은 과전법 시행과 신분제도의 개혁으로 백성들의 경제적 안정 및 미래 희망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개혁 세력은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되고 부패화 됩니다. 그때 조선 건국세력의 부패에 도전하는 세력 “사림파”가 등장하여 조선 정치의 주류 세력이 변화 됩니다. 신진사대부에서 출발한 훈구파 조선건국 주도세력의 후예 훈구파와 100년 후 등장하는 사림파는 어떤 차이점을 가진 정치 집단 일까요? 고려말 성장한 신진 성리학자들은 위화도 회군으로 권문세족을 몰락 시킵니다. 공동의 정적 권문세족들을 제거한 신진사대부는 과전법 시행에 의견 차이를 보입니다. 권문세족이 소유했던 토지 중 백성들의 토지를 불법 강탈한 경우 전부 국가가 회수하여 본래 주인인 농민에게 반환을 주장하는 개혁파와 권문세족과 농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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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성군의 자질을 지녔던 조선 12대 군주 인종은 재위 8개월 후 의문의 죽음을 맞이 합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문정왕후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반대세력을 숙청합니다. 대표적인 을사사화는 조선건국 후 최대의 공작정치로 수백명의 희생자를 양산 했습니다. — 명종의 승하와 새로운 정치개혁 요구 문정왕후가 죽고 2년 후 명종도 승하 합니다. 명종시대가 끝나고 이어서 등장하는 선조시대 부터는 정치 주류 세력의 변화가 뚜렷하게 일어납니다. 문정왕후의 폭정에 따른 반발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를 바꾸려는 열망이 폭발하여 부패한 기득권 층 훈구파는 사라지고 사림파가 집권을 합니다. 현대 정치에서 자주 표현하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입니다. 축적된 변화의 욕구가 문정왕후의 폭정으로 분출된 것 같습니다. 위화도 회군 후 성리학은 급진 개혁파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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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8일
전종길의 역사 더하기, 컬럼
지난 이야기 세조 때 비롯된 지나친 공신권력은 견제 세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새로 등장한 사림파는 훈구파를 견제하다 결국은 정치생명을 건 당파 싸움으로 번집니다. 중종 치세에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권신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중종의 간접 정치의 영향 탓도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권력의 화신 문정왕후의 등장은 새로운 피바람을 예고 합니다 성군의 자질을 타고난 인종 조선 제12대 국왕 인종은 보기드문 성군의 자질을 타고난 국왕입니다. 조선 제5대 국왕 문종의 아바타 같은 임금이죠. 8개월 짧은 재위로 승하했으나 그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떠납니다. 인종은 조광조를 신원 하자고 청하는 사림파 요구에 “부왕께서 유독 조광조를 신원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니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 라고 답했다가 이듬해 자신의 병세가 위독 했을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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