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사랑한 100년 전통의 살아있는 역사
중부 고원도시 달랏에 자리한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Dalat Palace Golf Club)이 골프 마니아들 사이에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성지’로 불리고 있다. 1922년 개장한 이 골프장은 베트남 최초의 골프장이자,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직접 건설을 추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명코스다.
해발 1500m 고원에 위치한 이 골프장은 동남아시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벤트그라스 그린과 100년 가까운 세월이 키운 거대한 소나무들, 그리고 쑤언흐엉 호수를 조망하는 절경으로 세계 골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황제의 골프장, 100년 역사를 품다
베트남 최후의 황제, 바오다이의 꿈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의 역사는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응웬왕조 제13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保大, 1913-1997)가 1913년 후에의 황궁에서 태어나 13세의 나이에 즉위했지만, 그의 재위 기간(1926-1945)은 프랑스 식민지배라는 격동의 시대였다.
교육을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바오다이는 노르망디와 파리 근교 상틸리에서 골프를 배웠다. 1930년대 초 베트남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여름 별장이 있는 달랏에 6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을 추진했다. 당시 프랑스 건축가 E. 에브라르가 설계한 달랏 도시계획에는 이미 쑤언흐엉 호수 건너편에 골프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오다이에게 달랏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닌 이상향이었다. 그는 달랏에 3개의 별장을 두고 자주 머물렀으며, 이곳에서 골프를 즐기며 잠시나마 정치적 현실을 잊고자 했다. 1922년 완공된 골프장은 프랑스 식민정부의 베트남 유화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전쟁과 부활을 거듭한 운명의 코스
격동의 20세기를 관통한 골프장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은 베트남 현대사의 격변을 고스란히 견뎌냈다. 1945년 바오다이 황제가 호찌민의 베트민에 퇴위한 후 골프장은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독립운동의 열기 속에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 골프장은 방치됐고, 울창한 초목이 페어웨이와 그린을 덮었다.
1959년 다오 후이 하크 박사가 이 골프장을 재발견했다. 하노이 출신의 의사였던 그는 후원자들을 모집해 ‘한 후원자당 한 홀’ 방식으로 골프장을 복원했다. 8명의 후원자를 찾은 덕분에 8홀 코스가 만들어졌고, 1965년 9홀 전체가 완성됐다.
1960년대에는 미군들과 각국 외교관들이 이곳을 찾았다. 1966년에는 PGA 투어의 전설적인 골퍼 빌리 캐스퍼가 미군 위문차 방문했다. 당시 골프장에는 약 40명의 멤버가 있었으며, 대부분이 각국 대사관 직원들이었다.
DHL 창업자의 부활 프로젝트
래리 힐블룸, 억만장자의 꿈
1993년,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에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DHL 공동창업자 래리 힐블룸(Larry Hillblom, 1943-1995)이 이 유서 깊은 골프장을 발견한 것이다.
래리 힐블룸은 1943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UC 버클리 법학대학원 재학 중이던 1969년, 애드리언 댈시, 로버트 린과 함께 DHL을 공동창업했다. 회사명은 세 창업자의 성 첫 글자를 딴 것이다.
DHL의 시작은 소박했다. 힐블룸이 학업과 병행하며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호놀룰루 간 서류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1970년대 DHL이 급성장하면서 힐블룸은 억만장자가 됐고, 1980년대 사업 운영에서 손을 떼고 태평양 서부의 사이판으로 이주했다.
베트남에 대한 힐블룸의 투자는 당시 미국의 대베트남 경제제재를 피해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이뤄졌다. 그는 달랏에만 4천만 달러를 투자해 달랏 팰리스 호텔과 골프장을 복원했다.
18홀 챔피언십 코스의 탄생
힐블룸은 1994년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을 완전히 재건했다. 세계적인 골프 코스 설계사 IMG의 재설계를 통해 기존 6홀에 12홀을 추가해 정규 18홀 챔피언십 코스로 확장했다. 현재의 파 72, 전장 7009야드 코스가 이때 완성됐다.
힐블룸은 1995년 달랏 팰리스 호텔 개장을 보지 못하고 사이판에서 자신이 조종하던 수상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골프장은 베트남 골프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유일의 벤트그라스 그린
기후가 만든 기적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의 가장 큰 자랑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한 벤트그라스 그린과 페어웨이다. 벤트그라스는 골프계에서 최고급 잔디로 인정받지만, 서늘한 기후를 요구해 열대 지역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발 1500m 고도의 달랏은 다르다. 연평균 기온 18도의 쾌적한 기후 덕분에 벤트그라스가 1년 내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벤트그라스 그린은 볼의 구름이 정확하고 퍼팅 표면이 부드러워 세계 최고 수준의 플레이 환경을 제공한다.
100년 소나무들이 만든 자연 미술관
골프장 곳곳에 서 있는 거대한 소나무들은 달랏 팰리스만의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 소나무들은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라나 현재는 높이 30m가 넘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닌 코스 설계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세계가 인정한 명코스의 품격
국제적 수상 경력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은 그 품질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왔다. 주요 수상 경력을 살펴보면:
● 2015년: 베트남 골프 매거진 선정 ‘베트남 최고 경관 골프장’
● 2009-2011년: 아시아 골프 먼슬리 선정 ‘베트남 최고 골프장’
● 2004-2008년: 골프 다이제스트(미국) 선정 ‘베트남 1위 골프장’ (5년 연속)
● 2007년: 아시아 골프 먼슬리 선정 ‘아시아 10대 골프장’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은 런던 기반의 권위 있는 **’파이니스트 골프 클럽 오브 더 월드’**의 정식 멤버로, 전 세계에서 선별된 최고급 골프장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특별한 클럽이다.
베트남 골퍼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성지
달랏 팰리스 골프클럽은 단순한 골프장을 넘어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베트남 최초의 골프장이라는 상징성, 마지막 황제의 흔적, DHL 창업자의 재건 스토리, 동남아 유일의 벤트그라스, 그리고 세계가 인정한 코스 품질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달랏 팰리스에서의 라운딩은 평생 잊지 못할 골프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100년 전 황제가 꿈꾸었던 골프의 낙원이 바로 여기, 달랏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