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이끈 티하우스 창업 열풍
호찌민시1군 응우옌후에 거리. 오후 3시가 되자 20대 직장인들이 하나둘 ‘마차 바이브(Matcha Vibe)’ 매장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170ml 한 잔에 12만 동 하는 말차 라떼를 마시기 위해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생소했던 일본의 전통 녹차 ‘말차’가 이제는 커피를 위협하는 새로운 음료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레이츠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말차 시장은 2024년 1,060조 동에서 2033년 1,970조 동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690조 동으로 전체 시장의 35%를 차지하며,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건강+비주얼+소셜미디어”
삼박자가 만든 완벽한 조합
베트남에서 말차 티하우스 열풍이 일어난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Z세대의 건강 의식 확산이다. 베트남 시장조사기관 IPOS.vn의 2024년 F&B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F&B 업체의 29.6%가 말차를 가장 주목할 만한 트렌드로 선택했다. 말차에 풍부한 항산화제 카테킨과 스트레스 완화 성분인 L-테아닌이 건강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관심을 끌었다.
둘째, ‘인스타그래머블’한 시각적 어필이다. 말차의 선명한 녹색은 소셜미디어에서 강력한 시각적 임팩트를 제공한다. 특히 2024년 하반기부터 베트남에서 유행한 ‘말차 x 코코넛 주스’는 흰색과 녹색의 대비가 인상적이어서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셋째, 커피 대안재로서의 포지션이다. 베트남 소비자 중 39.6%가 커피를 선호하지만, 말차는 카페인 함량이 커피보다 낮으면서도 지속적인 각성 효과를 제공해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했다.
“베트남 젊은이들은 말차 라떼의 ‘예쁜’ 색깔 때문에 선택한다”고 23세 직장인 홍빈(가명) 씨는 말했다. “아름다운 음료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작은 취미가 됐다”고 덧붙였다.
프랜차이즈부터 이동식 카페까지…
창업 진입장벽 ‘제로’
말차 인기와 함께 관련 창업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수십만 동 투자로 이동식 말차 카페를 시작하는 젊은이들부터, 수십억 동을 투자해 프리미엄 말차 전문점을 여는 사업가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창업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성공 사례는 ‘마차 바이브’다. 15년간 F&B 업계에서 활동한 트란 홍 트랑 대표가 2022년 설립한 이 브랜드는 현재 전국 38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트랑 대표는 “매월 새로운 메뉴를 출시하며, 말차뿐만 아니라 콤부차, 샨설 밀크티 등 건강 음료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 최초의 일본 말차 플래그십 스토어인 ‘나고차(NAGOCHA)’도 주목받고 있다. 교토 우지, 시즈오카, 후쿠오카 등지에서 직접 수입한 ceremonial-grade 말차를 사용해 하노이 웨스트레이크와 호치민 랜드마크81에서 프리미엄 말차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태국 프랜차이즈 시장에서는 밀크티 가게 창업비용이 수만 바트부터 시작돼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구조다. 태국 최대 F&B 전시회인 푸드엑스 2024에서도 말차 관련 부스가 전체의 15% 이상을 차지했다.
공급 부족 vs 과당 경쟁…양날의 검
시장 확대와 함께 새로운 문제들도 부상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고품질 말차의 공급 부족이다. 2024년 가을부터 일본의 대표적 말차 브랜드인 입포도(Ippodo)와 마루큐 고야마엔(Marukyu Koyamaen)이 처음으로 구매 수량 제한을 도입했다.
일본 교토 소재 야마산(Yamasan) 국제사업부 시오리 유엔 이사는 “지난 3년간 아프리카와 중동 등 새로운 지역에서 대량 주문이 급증했다”며 “UAE가 주요 소비 시장 중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창업 시장에서는 과당경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베트남 밀크티 시장 전문가들은 “2025년에는 브랜드들이 제품 다양화와 온라인 채널 최적화에 집중하면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보일 것”이라며 “민첩하고 창의적이며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브랜드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베트남 상위 5개 커피 체인의 시장점유율이 42%에 달하는 등 대형 브랜드로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이랜드 커피(11.6%), 풀롱 커피&티 하우스(4.38%), 스타벅스(3.79%) 등이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잡았으며, 이들 중 일부는 말차 메뉴를 추가하며 시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말차 혁명의 진원지로 부상한 베트남
베트남 말차 시장의 선구자는 단연 나고차(NAGOCHA)다. 2024년 7월 호찌민 랜드마크81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본격적인 확장에 나선 나고차는 베트남 최초의 일본 말차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나고차의 전신인 차코코로(Chakokoro)는 나짱시 중심가에서 첫 출발했다. 교토 우지, 시즈오카, 후쿠오카 등 일본 전통 차 산지에서 직수입한 ceremonial-grade(의식용 등급) 말차만을 취급하며 현지에서 독보적 지위를 확립했다.
나고차 관계자는 “교토 와즈카(Wazuka) 소도시에서 직접 들여온 단일 품종 말차를 전문 말차 실무자들이 정성스럽게 우려내고 있다”며 “하노이 웨스트레이크와 호찌민 시내 확장을 통해 베트남 전역의 말차 애호가들을 만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화 전략의 성공 사례
베트남에서 말차 열풍이 확산되는 배경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있다. 2024년 하반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말차 x 코코넛 주스’ 조합이 대표적이다. 일본 전통 말차의 진한 녹색과 베트남산 코코넛의 하얀색이 만나 시각적 임팩트를 극대화했다.
베트남 시장조사기관 iPOS.vn의 2024년 F&B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F&B 업체의 29.6%가 말차를 가장 주목할 만한 트렌드로 선택했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인스타그래머블’한 음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말차 라떼 한 잔에 15만동(약 8000원)을 기꺼이 지불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태국, 전통차와 말차의 조화로 새 시장 창출에 성공
태국에서는 현지 차 유통업체들이 말차 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코요 티(Koyo Tea)는 일본산 말차를 블렌딩한 제품으로 현지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차가운 라떼 형태로 제조할 때의 크리미한 맛이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콘깬(Khon Kaen) 지역의 미도리 하야테(Midori Hayate)는 티하우스와 유통을 겸하는 종합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이 업체의 주력 제품인 ‘사이쇼(Saisho)’는 교토 우지와 후쿠오카 야메 지역에서 나온 오쿠미도리를 블렌딩한 제품으로, 스모키한 맛과 다크 초콜릿 향, 강렬한 맛에 온화한 우마미, 쓴맛이나 떫은맛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치앙라이 지역의 쿄바시(Kyobashi)는 차 생산업체로서 밀크티 제조에 특화된 말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우롱차 분말 형태의 제품도 함께 취급하며 현지 기호에 맞는 다양한 차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시장 성장세와 소비 트렌드
태국 차 시장은 2023년 기준 21억7400만 바트(약 830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6.8% 성장했다. 2025년까지 국내 소비량이 10만8000톤으로 2.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Z세대가 태국 차 소비자의 29%를 차지하며 건강, 지속가능성, 디지털 참여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시 소비자들 사이에서 말차 맛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며 프리미엄 차 경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말차 허브로 급부상한 싱가포르
싱가포르 말차 시장의 대표주자는 화랄라(Hvala)다. 크로아티아어로 ‘감사합니다’를 뜻하는 이 브랜드는 교토에서 직접 조달한 말차와 호지차 파우더를 자체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화랄라가 최근 111 서머셋 매장에 도입한 ‘밥(Bob)’이라는 로봇 팔은 싱가포르 최초의 말차 제조 로봇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 말차 제조법과 첨단 기술의 만남이라는 콘셉트로 현지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화랄라는 가격대별로 세분화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츠키(Tsuki) 말차 No.4가 30g에 21.80달러(약 3만원), 유키(Yuki) 말차 No.3이 같은 용량에 21.80달러로 책정돼 있다. 최고급 제품인 쿠모(Kumo) 말차 라떼는 12.50달러(약 1만7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전문 브랜드들의 치열한 경쟁
싱가포르 말차 시장에서는 화랄라 외에도 다양한 전문 브랜드들이 경쟁하고 있다. 나오키(Naoki)는 ‘슈페리어 블렌드(Superior Blend)’ 제품으로 초보자도 접근하기 쉬운 균형 잡힌 맛을 추구하고 있다. 30g 용량에 19.99달러로 화랄라와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스트레이츠 서플라이(Straits Supply)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그램당 0.516달러로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 대비 절반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며 일반 소비자층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더 말차 프로젝트(The Matcha Project)는 교토 우지에서 직수입한 여름 수확 말차로 말차 라떼(핫 5.50달러, 아이스 6달러)를 제공하며 CBD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창업자들에게 던지는 4가지 메시지
동남아시아 말차 티하우스의 열풍은 한국 창업자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타이밍이 핵심이다. 글로벌 말차 시장이 연평균 7.12% 성장하고 있지만, 동남아시아는 이미 로컬 브랜드들이 선점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려면 늦어도 2025년 내에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둘째, 현지화가 생존 전략이다. 베트남에서는 말차와 코코넛 주스의 조합이, 태국에서는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현지 입맛에 맞춘 제품이 성공했다. 일본 전통 방식 고수보다는 현지 취향 반영이 중요하다.
셋째, 소셜미디어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베트남 Z세대의 76.2%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며, 이들에게 시각적 어필은 맛만큼 중요하다. 제품 개발 단계부터 ‘인스타그래머블’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넷째, 차별화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낮은 진입장벽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만큼, 독특한 맛 조합이나 프리미엄 포지셔닝 등 명확한 차별화 전략이 필수다.
“골든타임은 지금, 망설이면 기회 놓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의 분석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말차 시장은 2025-2032년 연평균 7.1%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33%)에 이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주요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창업자들의 기회가 아직 열려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늦어도 2025년 내에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동남아시아 말차 열풍이 단순한 유행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 패러다임인지는 향후 2-3년이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지금이 기회의 창이 활짝 열린 ‘골든타임’이라는 점이다.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말차 시장에 진출하려면 K-뷰티나 K-푸드 트렌드와 결합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업계 전문가는 “일본 전통 말차의 정통성에 도전하기보다는 한국만의 색깔을 입힌 새로운 카테고리 창출이 현실적”이라며 “늦어도 2025년 말까지는 시장 진입을 결정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