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9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출근길, 차창 밖으로 슝슝 지나가는 오토바이 행렬을 봅니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각양각색입니다. 매일 보는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흥미롭습니다. 같은 일터의 파트너인 듯, 앞 사람은 오토바이를 몰고 뒷사람은 공구가 든 바케스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갑니다. 절묘한 자리 배치로 네 명의 식구가 편안하게 올라탄 오토바이, 짧은 치마를 오토바이용 보자기로 감싼 예쁜 아가씨, 한치의 햇살도 허용하지 않으려 팔 토시와 긴 장갑에 귀까지 덮이는 마스크를 한 사람, 회사의 로고가 크게 박힌 빛 바랜 티를 입고 달리는 아저씨. 각자 자기 나름의 장소로 자기만의 속도를 내며 달립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문득, 이 장면을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가상의 드론을 띄워봅니다. 각각의 특별한 사람들이 올라탄 오토바이는 긴 오토바이 행렬이 되네요. 그 행렬 속에 엉킨 차들도 거대한 오토바이 무리에 빨려 듭니다. 빠르게 달리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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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4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삶의 가치는 그것의 불모성에 의해 측정된다. 쓸모를 위해 살아있는 생명력을 소진하지만, 자신을 밥벌이에 번제하며 스스로 태운 땔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쓰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조지오 망가넬리(Georgio Manganelli)의 말처럼 ‘우리는 무익한 것에서 생명을 얻고 유익한 일을 하면서 탈진한다.’ 쓸모를 위해 삶을 태우지만 그럴수록 삶의 가치는 서서히 쪼그라들고, 졸아든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쓸모를 향해 돌진하는 역설의 맥놀이는 우리 모두가 빠져든 세상의 부비트랩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꼬리를 물어 삼키는 뱀의 아가리, 고대 신화의 우로보로스Ouroboros적 자기모순을 안고 무한으로 순환하는 세계의 비유처럼, 난감한 것이다. 반대되고 상반되는 것들이 서로를 집어삼키며 암약하는 모순은, 늘 어거지로 살아서 너덜해진 우리 삶을 정확하게 겨냥해 조롱하는 것 같다. 이상은 무용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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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0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성인식은 열 두어 살이 되는 해,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정글 속에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모두가 떠나버린다. 밤이 오면, 아이는 하얗게 질리고 공포는 극에 달한다. 날이 희부옇게 밝아질 때 즈음, 아이가 맨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아버지의 얼굴이다. 밤새 떨고 있는 아이 곁을 아빠는 한시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산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계시처럼 받아든 얘기다. 세상의 두려움에 떨어진 나를 멀리서 아버지의 눈으로 응시하며 지켜보다가 피투성이가 된 내가 맨 처음 안기는 곳이 산이었다. 산은 늘, 왜 이제야 왔냐며 안아주었는데 어린 아이는 그렇게 산에서 통과제의를 거치며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산에 가면 성인식의 그 산과 다를 것인가. 나는 내가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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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3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좋은 울음터다, 한바탕 울만 하구나’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호곡장론好哭場論을 말했으니 광활한 요동벌을 처음 마주쳤을 때였다. 베트남 Huu Lung 암벽을 맞닥뜨린 순간, 카르스트 지형의 노다지 암벽을 보고 세상 가장 행복한 클라이머가 되어 무릎 치며 말하게 된다. 좋은 놀이터다, 한바탕 놀만 하구나. 그곳은 여전히 개척의 손길을 기다리는 바위들이 여기저기 지천에 널려 손짓하는, ‘바위 하는’ 사람들의 천국이었다. 한 폭의 진경산수화 안으로 들어가 화선지에 없던 클라이머의 화룡점정, 번지는 먹이 되어 나타날 참이다. 지금의 정신으로 들어선 베트남 후룽Huu Lung 암벽 새벽 3시에 일어나 06:10 호치민발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고 08:30에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차로 두 시간을 달려 랑손Lang son 지역(우리나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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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0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꿈 같이 흘렀다. 시골길, 푸짐한 소똥 가득한 길이 5D 로 떠오른다. 아, 그곳이 천국이었나 싶은 것이다. 후룽의 바위들을 보는 순간, 내 몸에 각인된 산이 되살아났다. 그렇다, 나는 산으로 각인된 몸이었고 나를 보는 후룽의 암벽들도 내 몸이 새겨진 산이 되었다. 히말라야 눈발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어깻죽지로 30여분을 버텨 올라온 뒤 산을 증오했었다. 길 아닌 길에 들어서서 길을 내며 걷는 일을 천역으로 여겼다. 그 또한 오래된 일이 되어버렸다. 아 언제였던가, 산에서의 증오와 환희와 절망과 황홀은 내 삶에서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코리안 루트를 내던 그날, 바위 크랙에 스토퍼를 찌르며 추락에 저항하고 만유인력에 반항하며 오르던 때 그 모든 게 되살아났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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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6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아주 긴 게으름을 피우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첫 문장의 시작이 여간 어렵지 않다. 첫 문장을 어렵다는 말로 시작했으니 이제 술술 쓰여질 것인가. 어줍잖은 칼럼을 끄적이며 쓰기가 힘드니 마니 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이리 징징대는 것도 잘 쓰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문득 그 희망이 가엾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쓰지 않고 영감을 바라는 시인처럼, 불상을 봤다고 그날 밤 꿈에서 몽중가피를 바라는 순진한 거사 같은 가여운 희망이다. 물경 읽지도 않고서 말이다. 이를 두고 헛물 켠다 하지 않던가. 말이 나온 김에 그저 잇는다. 주제 없이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연상에 따라 써내려 가는 글은 틀림없이 중언부언 할 테지만, 글의 전개를 이처럼 뜬금 없는 우연에 내맡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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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1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아침, 빵 두 조각을 데워 먹는다. 마른 빵은 목구멍을 넘어가길 힘들어하고 마찬가지로 매일 반복하는 일상은 힘겹다. 생활이라는 말을 간혹 입에 담지만, 그 말이 얼마나 징글징글한 말인지를 깨닫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산다, 는 말이 대체 뭘까를 묻는 사이 해는 저물고 어느덧 우기가 끝났다. 야속하다. 누가 야속한지 무엇이 야속한지도 모르는데도 무시로 달려드는 ‘생활’에 대한 책임회피는 속수무책의 불안 때문일 게다. 그 새 가을이 왔다. 고개를 숙였는데 숙였던 고개를 드니 가을인 것이다. 이 황망함, 세월은 문 틈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간 찰나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내면을 남에게 내보이고 또 전달하는 일이다. 정신적 나체를 드러내는 것이니,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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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7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알피니즘 역사를 살펴보면 등반은 자유의 한 형태였다. 신체적 자유이자 철학적 자유. 그 자유를 궁극적으로 경험하려면 단독으로 등반해야 했다. 제약도, 속박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알피니스트 & 역사학자, 버나뎃 맥도널드- 등산이 근대 이후에 출현한 인간 활동의 한 형태라면, 등산은 역사적 근대 ‘개인’의 발견과 관계 깊다. 자유로운 개인이 행하는 자유 경험으로써의 등반이 알피니즘의 역사이자 현재이므로. 이 문장의 이해를 위해 조금, 많이 애둘러본다. 미리 주의컨대, 오로지 개인적인 생각을, 개인적으로 감동받은 철학 위주로, 산과 자유를 매개하기 위해 정리하는 차원이니 이제부터 울려 퍼질 헛소리에 유의하라. 존재는 불안하다. 인류가 철학하는 순간부터 존재에 대한 인식의 발로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유에서 무로 스러져가는, 태어난 것들의 숙명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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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3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주말에 넷플릭스, 그 사이사이 유튜브를 들여다보았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의 SNS를 생각없이 보는 듯 안 보는 듯 훑어내렸다. 그러다 내심 가책이 들어 더는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지 말고, 하며 겨우겨우 책을 펼쳤다. 책에는 무언가 긴 것들이 있는데 긴 그것들을 마주할 용기와 시간이 도대체 생기지 않았다. 허전하고 헛헛하고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유난히 커 보였던 주말, 세 사람의 소식이 전해졌다. 로저 페더러, 2003년부터 투어 우승을 차지하며 총 20번의 국제오픈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 테니스 장인이 은퇴한다는 소식. 아쉽다. 나는 그의 백핸드를 사랑했다. 완전히 꼬인 몸이 풀려나가는 힘으로 온 몸이 좍 펴지며 상대의 홍심을 정확하게 노리는 원핸드 백핸드를 구사한다. 현존하는 테니스 선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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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9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제임스웹이라는 우주 망원경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 안착한 뒤 보내왔다는 사진들을 꽤 관심을 두고 살폈다. 천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운하들의 이름을 꿰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진으로 보는 별들은 감동이다. 그들의 탄생과 절멸의 순간들이 한 프레임에 고스란히 담겨 몇 십억 년을 빛으로 날아와 내 눈에 안착했다는 사실은 숨막히는 일이어서, 우주에서 무작위로 날아오는 미세한 중력파를 감지한다는 천문대 하나가 세상 가장 작은 형태로 내 눈 속에 세워져 있는 느낌이다. 무한의 경이를, 미물의 눈이, 감각으로 보는 일을 어째서 신은 허락하는가 싶은 지경이다. 그래선지도 모른다. 별에 비하면 찰나의 시간도 되지 않는 인간의 삶이 경이로운 무한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경험은 외려 단명한 유한의 삶을 뼈저리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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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6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고국의 내 산우山友들이 일주일간 설악엘 들어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설악으로 가는 떨리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나는 분했다. 분함은 설악을 향한 내 마음이 그리움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일 테다. 그것은 오랫동안 가지 못한 미안함도 아니고, 부드러운 바위를 한없이 어루만지고 싶은 애틋함도 아니고, 산과 몸 섞고 싶은 희한한 욕망도 아니다. 그 마음의 기원은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고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다는 속수무책의 무참함인 듯싶다. 아, 나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 한 주간의 겹치고 쌓인 抑鬱억울의 상태에서 한때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던 그들의 밝은 표정을 사진으로 보는 일은 잔인한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설악에 있지 않은가, 당장 비행기로 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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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2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오랜만에 그대들과 함께 했던 한국으로의 나들이는 아름다웠다. 특히나 그밤, 침낭을 덮으니 별과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던 충격적인 아름다움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 되겠지. 한 여름 밤의 별들과, 바위와 그리고 겹겹의 산들은 마치 수만년을 기다린 끝에 그밤의 우리를 위해 존재해온 것처럼 따뜻했다. 그곳에 처음 왔지만 언젠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함께 다녀갔던 장소처럼 낯설지가 않아서, 갑자기 지구가 세워 올린 무대장치 같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밤, 까마귀가 울던 산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째서 이제야 왔느냐며 우리를 끌어안는 산을 말이다. 이제는 제법 목소리가 굵어진 첫째는, 별똥별을 보며 제임스웹 이야기를 했었고, 아이 티를 채 벗지 못한 둘째는, 아무도 없는 산 중에서 들려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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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2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문 워크를 혼자 마스터했다. 걸음을 역행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중심을 잃고 몇 번을 자빠지면서도 즐겁게 따라 해본다. 잗다란 유행보다 40여 년 전 음악과 율동에 마음을 빼앗기는 내가, 비로소 먹어대는 나이를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모양이다. 춤에 매료되는 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며 방구석에 구부러지면서도 연습을 해대는 건 또 뭔가 싶다. 덕분에 빌리 진(Billie Jean) 가사와 노래의 유래를 알게 된 건 덤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참 아까운 뮤지션이다. 느닷없이 그 춤에 꽂혀 밤새 연습했다. 멋진 춤이다. 문 워크를 배우면 시도 때도 없이, 어디서나 문 워크를 구사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매대 옆으로 숨어 보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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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0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저녁에, 쌀국수를 아내와 나눠 먹었다. 동네에 사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말없이 덩그러니 놓고 가셨단다. 어린 시절, 집 앞 현관에 누가 놓고 갔는지도 모를 대파 더미, 감자 봉다리를 무시로 봤더랬다. 철마다 나는 야채며 갖가지 음식들이 현관 손잡이에 대롱대롱 걸려있거나,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늘 목격했었다. 어머니는 대번에 누가 놓고 가셨는지 아셨고 ‘아이고, 이 아지매가여’ 혼잣말을 하시며 받은 것보다 더 큰 다른 야채 뭉치들을 내게 주시며 아무개 집 앞에 놓고 오라 하시곤 했다. 쌀국수를 먹으며 왜 그때 생각이 났는지 모른다. 말없이 놓고 갔다는 사실에 추억이 소환된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릴 적 인간미 넘쳤던 시절과 지금 먹는 쌀국수가 기묘하게 오버랩 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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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7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여기,무더운 나라에서 우리는 지난 겨울을 보냈다. 벚꽃 피던 올해 봄도 여름이었고 여름에 접어드는 지금도 여름이다. 올 가을도 이곳은 여름일 테고 거리에 캐럴과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반짝거릴 올 겨울도 여름일 테다. 철이 없을 것 같던 이곳에서 지난 여름, 나는 내 앞에 등불 같이 나타난 반딧불이를 보며 이곳에 철 있음을 알게 됐다. 바이러스와 함께 지난한 여름이 계속되던 지난해 사이공에서 바이러스에는 아랑곳없이 그것들은 스스로 터져 나오는 빛으로 반짝거렸다. 오로지 별만이 스스로 빛을 내는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스스로 타는 것이 별이기 때문이다. 별은 결코 남의 행성에서 세어 나오는 빛으로 반짝이지 않는다. 별은 자신을 태워 나오는 빛으로만 반짝인다. 그리곤 제 명을 다할 때까지 태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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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3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아테네에 들어와 살기 전에 그는 시노페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는 바다에서 나포되어 아테네로 끌려와 노예로 팔려졌다. 노예 시장의 경매대에 올려졌을 때 그는 군중 속에서 세니아데스라는 사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자 그는 세니아데스를 가리키며, ‘나를 저 사람에게 팔아라. 저 사람은 스승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는 노예 판매상에게 말했다. 이야기가 되려 했는지 세니아데스는 감히 주인을 선택한 이 이상한 사람을 그의 노예로 샀다. 노예로 살면서 그는 세니아데스의 아들들을 가르쳤고,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받았다. 그의 말 대로 주인의 스승이 된 노예가 된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경멸했으나 또한 존경했다. 아무도 그의 웅변을 당할 자가 없었다. 그의 이름은 디오게네스다. 정확히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다.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방귀를 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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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5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간밤, 쏟아지는 비에 지구가 촉촉하게 젖은 자신의 몸을 부르르 떨쳐내는듯 사이공에 우기가 시작됐음을 알린다. 매일 한 번씩 내리는 장대비에 속수무책 당할 때가 많지만, 시원하게 내리고 나면 대기는 상쾌하고 무더위는 한풀 꺾인다.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비구름이 다가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장관이다. 회색 구름이 파란 하늘 한중간을 떠돌며 비 내리는 곳과 비 내리지 않는 곳을 극명하게 가른다. 경이로운 광경이다. 거대한 비구름을 만들고, 지각을 비틀고 육지와 바다를 관제하는 지구가 자신의 주요 업무를 보고 하는 것 같다. 주말 한가한 오후, 장대비가 창을 두드린다. 빗소리를 들으러 마당 구석으로 나가 자리를 잡는다. 쏟아지는 비에 붉은 개미들은 혼비백산이다. 푸른 도마뱀이 길목을 지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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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5일
베트남 월급쟁이의 일상의 황홀, 컬럼
이제 예전처럼 다시 하늘 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실로 얼마만인지요. 어제 그리고 오늘, 한국에 계시는 지인 분들이 격리 기간이 사라지는 상황을 물어옵니다. 그 덕에 오랜만에 나의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출근 길, 차 안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봤는데 파란 바탕에 태극 문양의 비행기가 새초롬하게 지나 갑니다. 이내 무심하게 보던 책을 다시 들여다봤지만,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팬데믹 전후의 삶을 비교한 보고서를 우연히 읽었습니다. 특정 기간에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수많은 도표로 설명해 놓았는데 복잡한 인간의 삶을 도표와 수치로 설명하려 애쓰는 그들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인내를 갖고 끝까지 읽어 내렸습니다. 보고서 설명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우울감은 높아지고 행복도와 삶의 만족도는 낮아졌다는 것이 주요 골자더군요. 사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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