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소수자’ 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그는 유럽 출신의 이민자들이 미국의 일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을 점령하고 있던 20세기 초, ‘미국 출생은 대형 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지휘자, 작곡가, 피아니스트, 작가, 해설자로서 장르의 경계없이 전방위적으로 활약한 만큼 그를 수식하는 표현이 다채롭다. 모던 재즈 뮤지컬로 브로드 웨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선구자. 정열적으로 춤추듯 지휘하는 자유로운 영혼. 청소년 음악회와 텔레비젼 진행자로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 섰던 방송인. 매일 담배를 100개비 이상 피웠던 골초 피아니스트. 그 무엇보다도, 유럽의 카라얀과 더불어 20 세기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미국 태생의 거장. 새로움과 다양성을 모색하며 언제나 ‘최초’의 길을 걸었던 열정의 아이콘 ‘레너드 번스타인’, …
Read More »‘조지 거쉰’ (George Gershwin)의 랩소디 – 두번째 이야기
20세기 초중반 무렵,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낸 클래식 음악가들은 대부분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유럽을 뛰쳐 나온 망명인들이었다. 본래 클래식 음악은 유럽에서 태동한 후 유럽이 몇 백년 동안 꽃 피워온 문화적 유산이다. 따라서 짧은 역사를 지닌 미국이 온전히 자국의 흙과 정신을 대변할 순수 토종 미국 클래식 음악가를 배출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시기에 등장한 조지 거쉰은 미국인들에게 정서적 단비같은 존재였다. <랩소디 인 블루>와 <피아노 협주곡 F장조>, 그리고 다수의 뮤지컬과 수많은 팝송 및 영화음악 등을 성공시키며 단기간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가 된 거쉰은 어느덧 유럽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국제적인 음악가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오래 묵은 마음의 숙제가 있었는데, 바로 유럽 정통 클래식 작곡기법을 …
Read More »‘조지 거쉰’의 랩소디 – 첫번째 이야기
클래식, 재즈, 뮤지컬, 팝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장르의 정형성을 뛰어 넘었던 작곡가 ‘조지 거쉰’. 그는 미국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클래식와 재즈를 완벽히 융합해 냈다. 가끔, 그를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지점에 머물러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던 애매한 장르의 주인공이라고 야박한 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조지 거쉰은 누가 뭐라 해도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기운을 받은, 미국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음악을 창조한 천재 음악가이다. 비록 짧지만 39년이라는 생애 동안 그 어느 작곡가보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500여곡 이상의 작품을 우리에게 남겨준 조지 거쉰. 그는 어떻게 미국 크로스오버 음악의 ‘파이오니아’가 되었을까? 그 첫번째 이야기이다. ‘크로스오버’의 태동 거쉰은 유태계 러시안 ‘모리스 게르쇼비츠’의 4남매 중 차남이다. 1890년대, 러시아 본국의 …
Read More »‘라흐마니노프’의 낭만 피아니즘
라흐마니노프의 큰 손은 유명하다. 가온 ‘도’에서 쫙 펼치면 다음 옥타브의 ‘라’까지 닿았다니 도저히 믿기 힘든 사이즈이다. 그렇다. 라흐마니노프는 2m에 가까운 장신이었고, 엄청나게 큰 손을 가진 거인 ‘피아니스트’ 였다. 여기서 그를 피아니스트라 국한한 이유는 그가 만든 대부분의 피아노곡을 직접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범접하기 힘든 괴물같은 기량으로… 큰 손과 완벽한 테크닉을 갖췼던 만큼 그가 창작한 피아노 작품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어려운 테크닉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는 비교적 손이 작은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 되어 왔다. 너무나 정복하고 싶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그의 피아노 음악들. 라흐마니노프는 우리 피아니스트들을 애끓게 만들었고, 고단하게 만들었으며, 수없이 좌절시켰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음악을 …
Read More »영국 클래식의 자존심, ‘에드워드 엘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릴 칼럼 주인공을 찾다 보니 이 분이 떠올랐다. 20세기 영국 클래식 음악의 부흥을 일으켰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신앙심이 투철했고, 아름다운 부부애로 주변에 모범이 되었으며, 평생을 성실한 음악가로 살았던 음악가. 엘가의 삶과 사랑, 음악 몇 편을 소개한다. 사랑의 인사 1888년 여름, 연인 앨리스는 자신이 쓴 시 ‘Love’s Grace’를 엘가에게 선물했다. 엘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수줍게 표현한 시였다. 이에 감동받은 엘가는 일종의 답가로 피아노곡을 작곡해 앨리스에게 선물했는데, 그 곡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랑의 인사(Love’s Greeting)’이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던 앨리스의 아버지는 무명 음악가였던 엘가를 영 탐탁치 않아 했다. 명문 가문에 육군 대장 출신이었던 …
Read More »‘에스파냐’ 의 인상을 그리다
알함브라 궁전, 투우, 고야, 피카소, 축구, 스무 고개에 닿기도 전에 ‘스페인’이 떠오른다. 그럼, 초점을 클래식 음악으로 돌려 알베니즈, 그라나도스, 파야를 아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당당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까?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분들에겐 생소한 이름들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16세기 경의 스페인은 정치와 문화의 번영에 힘입어 국제적 영향력이 있는 뛰어난 음악가들을 배출했던 ‘음악 강국’이었다. 하지만 기독교 세력에 의해 통일이 된 이후의 스페인은 수많은 전쟁과 페스트 발발, 식민지 개척의 실패 등을 이유로 졸지에 유럽의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예술’보다는 ‘빵’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 결과 17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의 스페인은 단 한 명의 명망있는 음악가도 배출하지 못한 …
Read More »미래에서 온 남자 ‘에릭 사티’
“예술가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여기 나의 매일 시간표가 있다. 아침 7시 18분에 일어나 10시 23분부터 11시 47분까지 영감을 받고, 12시 11분까지 점심을 먹은 뒤에 12시 14분에 책상을 떠난다. 건강을 위해 오후 1시 19분부터 2시 53분까지 내 땅을 말로 달린다. 오후 3시 12분부터 4시 7분까지 다시 한번 영감을 받고, 5시부터 6시 47분까지 펜싱, 회고, 부동자세 명상, 방문, 수영 등에 매진한다. 저녁은 7시 16분에 시작해 20분에 끝낸다. 밤 8시 9분부터 9시 59분까지 교향곡적 독서 (크게 책 읽기)를 한 후, 밤 10시 37분에는 취침하러 간다. 일주일에 한 번씩(화요일)은 새벽3시 14분에 깬다.” 정신병원 환자의 야심찬 낙서로 보이려나? 이것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
Read More »‘프로코피에프’의 슬픈 유산
제정 러시아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체제로 탈바꿈하던 1917년. 급변하는 정치적 기류에 불안했던 상류층 귀족들은 자제를 외국으로 도피시키거나 아예 온 가족이 망명길에 올랐다. 1891년생의 청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역시 잠시 고국을 떠나 이 혼란을 비껴가려고 했다. 그런데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그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수상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고국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지금 떠나려는 당신, 분명 후회할 날이 올 것이오. 혹 다시 들어온다 해도 당신은 냉대를 면치 못할 것이오.’ 프로코피에프는 이 메시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게 될런지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잠시’ 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긴 채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시작은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
Read More »시벨리우스 – 핀란드의 ‘혼’을 담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아픔이 많은 나라이다. 12세기 중엽 십자군 전쟁시 스웨덴의 공국(영지)이 된 이후 거의 17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장장 6세기동안이나 스웨덴의 지배하에 놓였던 핀란드는 1700년 경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또 한번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더니 1차 대전 후에는 독일제국의 제후국이 되어 버렸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야 드디어 완전한 독립국의 이름을 찾게 되었다. 정말로 길고 긴 식민역사가 아닐 수 있다. 그 암울했던 핀란드의 역사 속에서 91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조국을 소재로 한 걸작으로 전 국민의 마음을 결속시켰던 민족 음악가 ‘얀 시벨리우스’. 오늘은 영원한 핀란드의 자랑 ‘얀 시벨리우스’의 대표작들을 만나 본다. ·숨은 속내, ‘저항’ ·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인 교향시 <핀란디아 op.26>는 러시아의 …
Read More »파리를 사로잡은 이방인 ‘스트라빈스키’
그는 성공한 이방인이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독보적인 클래식 음악의 주류였던 파리를 매료시킨 최초의 러시안 ‘작곡가’였다. 당시 유럽에서 내로라하던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성을 파리의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세계 일류 예술가가 되는 지름길이라 여기며 프랑스로 몰려 들었고 서로 뜨겁게 경쟁했다. 그중에서도 스트라빈스키는 가장 미래지향적인 음악가들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일반적인 상식을 거부하는, 자유분방하고 까다로왔던 당시 프랑스 파리의 관객들은 그의 음악 어떤 면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스트라빈스키의 성공에 주역이 되었던 초기 3대 발레음악을 살펴보면 그 궁금증이 해소될 것 같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그리고 디아길레프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겠지만, 클래식 음악 역사 속에는 음악을 반대하는 부모와 이를 어기고 끝끝내 음악을 업으로 삼게 된 불굴의 음악가들이 많다. 스트라빈스키 …
Read More »라벨의 혁신적 인상주의 – 두번째
프랑스 근대 음악의 선구자 모리스 라벨. 그는 언제나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동경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주류들의 사고에서 벗어나 있으며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라벨의 혁신적인 인상주의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그의 인생 후반기에 탄생한 주요 대작들을 소개한다. 다시 태어난 <전람회의 그림> ‘전람회의 그림’은 러시아 음악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가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그가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친구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에서 감상했던 400여점의 작품(소묘, 수채화, 건축 양식 스케치) 중 10점을 발췌해 피아노곡으로 만든 것이다. 이 모음곡은 발표 당시엔 피아노 연주자들이 기피했던 곡이었다. 왜?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던 무소르그스키는 뛰어나고 개성있는 음악성을 지녔던 반면 피아노 연주에는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나 깨나 번뜩이는 악상을 떠올릴만큼 …
Read More »라벨의 혁신적 인상주의
첫번째 이야기… 소리에 빛을 입힘으로써 ‘음’에 ‘투명성’을 부여한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은 드뷔시로부터 시작된 이후 모리스 라벨에 의해 계승, 심화되었다. 더 나아가 라벨에 의해 펼쳐진 인상주의 음악은 드뷔시의 그것에 비해 좀 더 혁신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술 작업의 핵심은 인간의 예민한 감각과 감정이다.” 아주 짧지만 그의 심미관이 함축되어 있는 문장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음악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할까? 반드시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어야 할까? 나는 철학자로서 음을 생각하기보다는 음악 전문가로서 음을 다룰 뿐인데…” 라는 솔직한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이러한 고민은 일생을 통해 투쟁하고 성취한 그의 작품들을 통해 고스란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학교에서 쫓겨난 아들 1875년,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어촌 ‘시부르’에서 …
Read More »드뷔시의 인상주의, 기존 미학에 도전하다
“나는 음악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것을 숨막히게 하는 전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한다. 그 음악은 솟구쳐 오르는 자유를 위한 예술이며 하늘과 바다, 바람과 같이 무한한 것들에 대한 예술이다. 내가 진정 추구하는 음악은 영혼의 서정적 발로와 꿈의 환상에 충분히 순응할 수 있는 유연한 것이어야 한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창시한 ‘클로드 드뷔시’가 했던 말이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그가 일생을 걸고 지향했던 인상주의 음악관을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렇다면, 인상주의란 정확히 무엇이며,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은 어떠한 모양으로 ‘전통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걸까? 오늘의 테마,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 얘기 속으로 들어간다. 낙제생의 반전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파리 근교인 생 제르맹 앙레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
Read More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 카미유 생상
한국만큼 기획연주가 풍성한 나라가 있을까? 해마다 방학 시즌이 되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음악회가 전국의 주요 음악회장에서 열린다. 이런 음악회의 단골 레파토리에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이 ‘카미유 생상(1835~1921)’의 <동물의 사육제>인데, 비단 어린이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클래식 문외한들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까닭에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는 언제나 기획 프로그램 섭외 0순위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혹시 프랑스 작곡가 생상의 작품들 중 유일하게 알고 있는 곡이 <동물의 사육제>인 분들 계실까? 19세기 중,후반의 프랑스는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 변방에 있는 나라였다. 당시 서양음악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음악적 위세에 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고군분투했던 작곡가가 바로 ‘샤를 카미유 생상(Camille …
Read More »차이콥스키의 ‘비창’
흙냄새 농후한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과 서구 유럽의 낭만주의 음악을 융합해 독자적인 색채의 ‘러시안 센티멘탈리즘’을 확립한 천재 음악가. 19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을 개척, 세계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킨 국민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 그는 러시아의 자랑이요, 러시아 음악의 ‘별’이었다. 그런 그가 사망했다. 1893년 11월 6일. 그의 나이 53세였다. 왕성하게 활동중이던 차이콥스키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러시아의 수많은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의 장례식장은 전국 방방곳곳에서 몰려온 6천 여명의 추도객으로 인해 발디딜 틈 없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성당 앞 거리는 6만 여명에 육박하는 추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차이콥스키의 모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3일간 휴교령을 내려 고인을 추모하는 기간으로 삼았다. 러시아의 국보 차이콥스키는 그렇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마비시킨 …
Read More »슈베르트의 자화상, <겨울 나그네>
12월이다. 아침 저녁으로 손가락 톡을 나누는 한국의 가족들은 어느 새 겨울을 맞이한다고 한다. 하지만 연중무휴 뜨거운 자외선을 따돌리려 썬블럭과 동고동락하는 나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대해 무심해진지 꽤 된 것 같다. 뽀독뽀독 소리나는 눈길을 걸어나가 길 옆 모퉁이에 있는 오픈 마차에서 뜨끈한 우동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은 언제나 그리울 한국의 겨울낭만이다. 하지만 여기는 너무나도 따스한 호찌민. 아쉬운대로 호찌민 스타일의 12월을 즐겨보기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에 열을 올리고, 숙성된 좋은 와인을 준비한 다음, 거실 스피커가 습기라도 먹지 않았는지 점검해야겠다. 그리고나서, 겨울이면 생각나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들으며 분위기를 내 봐야지.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본격적인 …
Read More »‘강력한 소수’, 그 다섯 남자의 이야기
19세기 중반까지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은 지배 계층인 귀족들만이 즐길 수 있는 고급문화였다. 당시 클래식 음악을 즐기던 귀족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로부터 들어온 음악만을 진정한 음악이라고 인정하고, 자국의 음악은 아마추어들의 음악이라고 폄하했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고유의 색깔이 담긴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강력한 소수’라고 불렸던 ‘러시아 5인조’이다.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다섯 남자. 강력한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와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들은 특이하게도 모두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알코올을 사랑했던 ‘무소르그스키’ 루돌프 사슴코처럼 벌겋게 달아올라있는 콧등의 소유자.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치면 바로 찾을 수 있는, 누가봐도 심상치 않은 얼굴이다. 간질과 알코올 중독에 …
Read More »경건함을 선택한 낭만주의 영웅, ‘프란츠 리스트’
여섯 마리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전 유럽을 누비던 음악가. 현란한 테크닉으로 ‘피아노의 제왕’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던 음악가. 파란만장한 연애를 즐겨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던 바람둥이. 속세를 떠나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대중들을 의구심의 바다에 빠뜨려 버렸던 반전의 사나이. 바로 ‘프란츠 리스트’의 이야기이다. 소년 비르투오소 프란츠 리스트는 1811년 서부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아버지 아담은 아들이 음악영재인 것을 알아채자마자 당시 가장 명성있던 체르니 선생에게 데리고 간다. 오스트리아의 초일류 선생이던 체르니는 리스트의 천재성에 반해 레슨비를 일절 받지 않으며 지도하기 시작한다. 체르니의 스파르타식 교수법 덕분에 리스트의 피아노 테크닉은 단기간에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유명해진 소년 리스트는 제법 큰 돈을 벌어들이는 아이돌 스타가 된다. 아들이 신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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