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동안 베트남에서 사업을 한답시고 지내면서 많은 베트남 직원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직업관은 우리와 사뭇 달라보입니다.
한국인에게 직업이란 삶을 영위하고 그것을 통해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아주 중요한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사자 뿐만이 아니라 가족 역시 가장의 직업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가장에게 힘을 실어 줍니다. 덕분에 가장은 가끔 아내와의 약속을 어겨도 일 때문이라면 용서가 되고, 자녀 문제에서도 일이 바빠서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가장에게는 전 가족을 이끌어 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 책무를 가능하게 하는 직업에 전력을 다하길 원하며 대신 가정일에는 비교적 후한 양보와 배려를 받게 됩니다. 직업이 갖는 무게가 어떤 다른 가치보다 상위에 자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 베트남은 어떨까요?
제가 겪은 몇몇 케이스가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세상이 두번 변한다는 긴 세월동안 베트남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만난 베트남 직원들의 자세를 통해 인지된 베트남인의 직업관은 그들의 영혼에 영향을 줄만큼 가치가 높아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직장이란 단지 돈을 벌기위한 수단 이상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주변에 작은 일이 생겨도 제일 먼저 정리하는 것이 직장입니다. 하다못해 직장이나 집이 이사를 함으로 출근 거리가 멀어지면 당장 직장부터 때려치우거나 가까운 거리의 직장으로 옮길 생각부터 합니다. 전 직장에서의 커리어가 연결되는 것과 관계없이 출 퇴근이 용이하면 오케이 하고 넘어가는 거죠. 좀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가치관이 다른 경우 어떠한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단, 현재 직장에서 타 직장보다 더 많은 급료를 주는 경우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직원도 만난 적이 별로 없으니 물으나 마나입니다.
우리 회사에는 거의 모든 베트남 직원이 10년 이상의 커리어를 한 직장에서 쌓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날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근무한 15년 이상 된 직원에게 왜 이렇게 이 회사에 오래 있는가 물었더니 그 대답이 장관(가관의 비아냥) 입니다.
“15년 동안 급료 지급이 한번도 늦어진 적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려 정답이다” 역시 베트남인다운 대답인데 왜 이리 씁쓰름한 기분이 드는지. 이런 답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직업을 갖는 상당한 이유는 바로 경제적 문제의 해결이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애사심이나 주인의식 혹은 직업을 수행하며 느끼는 성취감을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자연히 귀찮고 어려운 일은 가능하면 맡을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일에 대한 책임 의식을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아마도 그들의 직업이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갖지 않는 까닭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런 베트남에서 비교적 상위 직업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비행 승무원에 대한 직업의식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지난 주에 하노이에 일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물론 베트남 항공을 타고 갔죠. 요즘 베트남의 항공료는 날로 올라가는 추세죠. 거리에 비해 결코 저렴하지 않은 비용을 내고 비행기를 타는데, 이들의 직업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안을 만납니다.
여름나라답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비행기에 올랐는데 출발하고 나니 비행기 안에 기온이 점차 떨어지며 한기를 느끼게 됩니다. 여승무원에게 담요 한 장을 달라고 했더니 담요는 승객의 10%에게만 공급되는데 이미 다 소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추위를 느껴 담요가 필요한 승객의 수는 항공사 임의로 10% 이하 라고 정하는 모양입니다. 앞좌석에 노출이 심한 옷에 담요 한장 걸치지 못하고 추위에 떠는 여 승객의 모습에 제가 다 안타까울 지경인데 자랑스런 직업을 가진 승무원들은 눈길하나 보내지 않습니다.
좌석 앞에 작은 모니터가 달려있습니다. 앞자리 승객의 모니터에서 비행 현황이 나오는 것을 보고 저도 모니터를 커고 싶어서 리모콘을 빼내어 이런 저런 버튼을 눌러보지만 작동이 안됩니다. 그러는 도중 어느 남자 승무원이 오더니 제 모니터를 빼앗듯이 내 손에서 잡아 채고는 제자리에 꽂으며 하는 말이 국내선에서는 모니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앞좌석에 있는 승객은 어떻게 모니터를 켜고 보고 있는가 물었더니 아, 저 좌석 모니터가 고장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저것 고장난 모니터, 즉 비행 현황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꽤 많이 보입니다. 아 모니터 고장이 심한 모양이군요. 하하하.
식사가 나옵니다. 사흘을 굶지 않고는 도저히 손이 가지 않을 빵에 디저트 용으로 보이는 단 죽 같은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대강 한입 물다가 덮어두고 커피을 달라고 하니 커피는 아침 저녁 비행기에만 나온다는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래 물이나 한 잔 더 달라고 해서 마시고 2시간의 비행을 마쳤는데, 제가 느낀 문제점은 이런 엉터리 서비스를 자랑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통고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이 끝났다는 태도를 보이는 승무원들의 직업의식도 문제지만 그런 차별적 서비스에 아무 말도 않고 수긍하는 승객들도 좀 이상해 보입니다.
앞으로 베트남 항공 국내선을 이용하려면 간이 담요를 필수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감기를 예방하는 일이고, 낮 비행기를 타면 커피 포트를 갖고 타야만 카페인 갈증을 면할 것이고, 절대로 모니터가 안나온다고 리모콘을 만지며 노력하는 헛고생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옆 좌석의 모니터가 작동되면 고장 났다고 보고하는 신고 정신을 발휘한다면 그들이 고장난 모니터를 고치는데 도움이 되겠죠.
세상에서 가장 고객 서비스에 신경을 많이 쓰는 비행기의 서비스 정신이 이 정도라니, 베트남을 사랑하는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국영 기업인 베트남 항공이라는 자랑스런 직업을 가진 분들의 고고한 자존심으로 인한 일이라고 덮어두고 넘어가면 좀 희망이 생길까요? 그런데 그들은 우리 같은 승객덕분에 자신의 그 고고한 직업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베트남인과 한국인의 직업에 대한 가치관에 대하여 일예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사고로는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이들의 직업관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런 다름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쓴 글입니다.
어차피 양자에 대한 비교나 차이를 따진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비대칭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생활해온 환경과 역사가 다른 두나라의 사람을 공정하게 비교하고 차이를 말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 시도는 어차피 한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결과를 낳거나 기껏해야 지엽적인 일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낳게 됩니다.
단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와 그들의 다름을 인지하고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자는 것이죠. 공존이란 다름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동포가 이곳에서 사업을 하며 베트남인들을 만나고 또 앞으로 더욱 많은 한국인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미리 이들의 관습이나 가치관을 알아두면 이곳에서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않을까 해서 중언부언 해봤습니다.
작성자 : 한 영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