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고정관념 깨기. 예술가는 가난하다?


저는 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도시 구석구석을 편안히 앉아서 둘러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편하게 택시타면 되는데, 그거 얼마나 한다고 뭐하러 힘들게 고생을 해?’ 하고 궁상맞다는 듯이 쳐다보는 분도 계십니다. 택시보다는 창문이 넓고, 버스 자체의 높이가 높아서 자연히 시선의 높이가 높아져 밖을 구경하기 한층 수월합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혼자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사이로 햇빛이 내리 쬐며 만드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러다보면 심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어느새 금방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혹시 깜박 잠이 들더라도 길을 잃어버릴 걱정도 없습니다. 내릴 곳을 지나치면 반대 방향 버스를 다시 타면 되고, 끝까지 가봐야 어차피 종점에서 멈추니까요.

갑자기 뜬금없이 버스 이야기로 칼럼을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화가의 그림을 본 순간 이 화가의 작품 속으로 버스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화가의 작품 속 풍경들이 보인다면 내리지 않고 종점을 지나서도 계속 가고 싶습니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인상파 화가인 ‘구스타브 카유보트’ 입니다.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19세기 파리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며 그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저 다리 구조물 크기가 엄청 커서 원근법이 더욱 더 확실해 보여.’
‘눈이 엄청 내렸나 봐. 길이 엄청 막히겠군.’
‘아깐 비가 안 내렸는데, 지금은 쏟아지네. 우산 없는데 어떡하지?.’
인상적인 그의 작품들이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방금 그와 수다를 떨면서 소개해드린 작품들은 프랑스의 근대 풍경들이 잘 녹아있는 ‘유럽의 다리’ , ‘눈 내린 지붕’ ‘파리, 비 오는 날’ 입니다.
세 작품 모두 각각 가장 앞에 위치한 철제 기둥, 지붕, 사람들에게 마치 사진기의 초점을 맞춰서 찍은 것처럼 조금은 과장되어 보이는 원근법이 나타나있습니다. 과감해 보이는 구도 덕분에 그림이 시원해 보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졸다가 내릴 곳을 놓칠 때도 있습니다.
창 밖에 보이는 저 남자도 모자로햇빛을 가린 채 편안히 풀밭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네요.
이 그림의 제목은 보이는 그대로 ‘낮잠’ 입니다. 보기만해도 나른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앞의 그림들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창 밖으로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도 펼쳐집니다. 그늘에 쎄옴(오토바이 택시) 아저씨가 오토바이 위에서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편안히 주무시고 있습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저 골목의 구멍 가게 할머니는 가게 문을 닫으십니다. 아마 3시간 뒤에나 할머니가 나오셔서 가게를 보시겠죠.

이제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버스에서 막 내렸습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그에게서 당당함이 느껴질 법도 한데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집니다. 그의 동료들이 그에게 다가옵니다.
‘고마워. 내 그림을 구입해줘서.’ ‘당신은 멋진 후원자 친구야‘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화판이 무색할 만큼 그들에겐 오로지 그가 동료 화가가 아닌 그냥 ‘후원자’로 보이나 봅니다. 멀리서 르누아르가 다가옵니다. ‘구스타브! 이거 새로 그린 스케치야? 완전 좋은데!’ 그제서야 ‘구스타브 카유보트’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활동도 하고, 인상주의 전시도 드가와 함께 공동기획을 할 만큼 재능도 많고 작품을 보는 안목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일반인들에게 다른 인상주의자들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전문 화가보다는 후원자의 꼬리표가 더 강하게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어떤 화가에게는 가난하고 고된 삶이 예술혼을 불태우는 전설적인 신화가 되어 후대에 강한 인상을 남기며 유명해졌다면 반대로
‘구스타브 카유보트’ 에겐 비교적 풍족했던 삶이 안타깝게도 뒤늦게 시작한 화가 인생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을 잡은 것 같습니다.
작품성이 뛰어난 화가임에도 이미 각인된 후원자의 이미지가 진정한 화가로서의 평가를 막은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예술을 하면 가난하다’ ‘진정한 예술은 배고픔에서 나온다’ 라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몇몇 작품이 잘 팔리거나 명성이 있는 작가들을 빼고는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전의 비해 좀 더 편안히 예술을 할 수 있는 시대에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더욱 더 자신을 가난으로 옭아매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작가를 향한 사적인 편견 없이 작품만으로 평해지기를 바라며 오늘의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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