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전쟁… 아시아의 향방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표류하는 아시아 경제의 미래

지난 1월 재취임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예고한대로 관세를 통해 세계 무역 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에 대한 10% 관세, 자동차·철강·알루미늄·반도체·의약품·목재에 대한 25% 이상의 광범위한 수입세, 그리고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라는 새로운 무기까지 등장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트럼프의 경제 분노가 집중되는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중국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아시아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지형도가 그려지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의 경제적 표적, 왜 아시아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무역 불균형의 척도로 삼는 대미 무역 흑자국 상위 7개국이 모두 아시아에 위치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의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인 1.2조 달러를 기록했다. 이 중 대부분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발생했다.
더불어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공언한 품목들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의 주요 생산국도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중국 상품과 투자의 주요 목적지가 되어 중국이 미국 시장으로 우회 진입하는 ‘뒷문’을 제공한다는 트럼프의 비난도 향후 무역 정책의 방향을 예고한다.
무디스(Moody’s)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의 경제 성장률은 2024년 4%에서 2025년 3.7%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 반도체, 에너지 및 의약품에 대해 발표된 관세는 아시아 총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분야여서 타격이 불가피 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북아시아 vs 동남아시아: 상이한 충격과 대응

아시아 내에서도 지역별, 국가별로 트럼프의 관세에 노출된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GDP 성장에서 외부 수요 의존도가 높을수록 직접적인 관세 영향뿐 아니라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으로 인한 간접 영향도 증폭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은 반도체, AI, 신에너지 관련 첨단 기술 제품의 주요 수출국으로, 트럼프의 ‘첨단 기술 국산화’ 정책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한국 반도체 산업은 단기적으로는 2025년 주문이 이미 마감되어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는 트럼프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인도와 필리핀은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와 미국과 직접 경쟁하는 제조업 비중이 낮아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다. 그러나 아웃소싱 및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같은 서비스 무역이 트럼프의 표적이 된다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인도는 이미 예방적 조치로 버번 위스키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등 미국과의 무역 마찰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는 중간 지대에 위치한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각각 반도체와 자동차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최근 공급망 이동으로 인한 혜택도 누리고 있어 관세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상쇄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미국과의 무역 흑자가 작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인센티브 철회로 인해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소와 배터리 공장에 대한 미국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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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1’ 전략의 양면성: 기회와 위협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트럼프의 관세라는 직접적 위협 외에도, 미국 시장에서 쫓겨난 중국 상품의 유입이라는 간접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이미 아세안 총수입의 26%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국으로, 10년 전 16%에서 급격히 증가했다. 중국의 영향력 증대는 지역 제조업 생태계에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싱가포르 컨설팅 기업 아시아 디코디드의 창업자 프리얀카 키쇼어는 “이제 우리는 최대 경쟁자가 바로 뒷마당에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보복 조치까지 걱정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태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수천 개의 현지 공장과 기업들이 중국 경쟁자들에 의해 폐업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중국 상품의 덤핑을 막기 위해 관세 조치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추가적인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센테니얼 그룹의 마누 바스카란 파트너는 “저렴한 중국 부품과 원자재는 현지 제조업체의 비용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더 복잡한 현실을 지적했다. 중국 공장들이 공급망을 구축하고 현지 직원을 고용하며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현지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태국의 전기차 산업처럼 특정 산업이 중국 기업에 완전히 장악될 위험도 있다.
“중국 생산자가 베트남 창고로 상품을 들여와 라벨만 바꾸는 것은 명백한 무역 규칙 우회”라고 바스카란은 말했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열고 현지 부품을 대량 구매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관세 우회’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승자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 내 새로운 경제 블록 형성과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에 최근 설립된 경제 무역 지대는 관세로 인해 더 이상 중국에서 제조할 수 없는 미국과 중국 기업 모두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미국 기업들의 아시아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아세안 지역으로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입에서 미국의 비중은 2019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23년에는 아세안 순 FDI 유입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인텔, 카길, 보잉, 애플과 같은 미국 기업들은 베트남에 광범위한 투자를 했고, HP와 델은 말레이시아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생산하며, 구글과 같은 테크 기업들은 태국에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팀을 재배치하여 다양한 관세 시나리오를 실행하고, 수치를 도출하며, 미래 리스크를 정량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 경제학자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금융 당국자들이 워싱턴의 금융 구제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밤새 내리던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와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트럼프 관세, 베트남이 받을 수 있는 영향은?

베트남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관리국(ITA)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은 베트남의 중국 다음 두 번째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수출 대상국이었다. 양국 간 교역액은 1,496억 달러로 2023년 대비 20.4% 증가했다. 베트남은 미국의 8대 교역국이며, 6대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가 2023년 대비 189억 달러 늘어난 1,235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은 전기기계(417억 달러), 원자로·보일러·기계(288억 달러), 가구·침구류(132억 달러), 신발류(88억 달러), 의류·액세서리(82억 달러) 등이다.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의 경우, 베트남은 2024년 미국의 5대 철강 수입국으로 부상했으며, 전년 대비 143.4% 급증한 120만 톤(금액 기준 11.3억 달러)을 미국에 수출했다. 다만 베트남의 철강·알루미늄 수출은 이미 트럼프 1기 때부터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철강 관세는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되어 추가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캐나다, 멕시코 등 기존에 면제받던 국가들도 이제 25% 관세를 부담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좋아질 수도 있다.

반면 알루미늄 관세는 10%에서 25%로 인상되어 베트남 알루미늄 수출업체에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2024년 베트남의 대미 알루미늄 수출은 약 3만 5,593톤(1억 4,290만 달러)으로 이미 전년 대비 1.7% 감소한 상태다.
그러나 가장 큰 위협은 트럼프가 발표한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 계획이다. 이 계획은 미국과 교역국 간 관세율 차이, 부가가치세(VAT)와 같은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세금’, 비관세 장벽, 환율 조작 등을 모두 고려해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베트남의 무역가중평균 최혜국 관세율은 5.1%로 미국의 2.2%보다 높아 추가 관세 부담이 예상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1기 때 베트남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던 전력이다. 2021년 1월 15일 미 무역대표부(USTR)는 베트남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환율을 저평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이 지정이 철회되었지만, 트럼프 2기에서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베트남이 중국의 대미 수출 우회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2021년 기준 베트남의 대미 수출품 중 약 16%가 사실상 중국산 재수출품으로 추정된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서명한 ‘아메리카 퍼스트 무역정책’ 행정명령에서 “특히 산업 공급망과 제3국을 통한 우회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베트남의 생존 전략: 미국과의 양자 무역협상 가능성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베트남은 미국과의 양자 무역협상을 통해 관세 충격을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2025년 2월 14일, 마크 내퍼 주베트남 미국 대사와 응우옌 홍 디엔 베트남 무역부 장관 간 회담에서 크내퍼 대사는 “미국의 무역 정책이 특별히 베트남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응우옌 장관이 “베트남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수입, 특히 농산물 수입을 늘릴 의향이 있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크내퍼 대사 역시 베트남에 “에너지, 반도체, 인공지능, 항공 등 새로운 분야에서 미국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법적 프레임워크를 가속화할 것”을 권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베트남이 트럼프 행정부와 적극적인 양자 무역협상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베트남이 미국산 제품 구매를 확대하고 미국 기업의 베트남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등의 양보를 한다면, 트럼프의 관세 공세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트럼프의 복귀로 지역 무역협정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은 양당의 반대로 어려웠지만, 바이든은 2022년 5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며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를 발전시키려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전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성향을 고려할 때, IPEF 협상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반도체와 첨단 기술 제품의 주요 수출국인 한국, 일본, 대만이 트럼프의 ‘첨단 기술 국산화’ 정책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단기적으로는 2025년 주문이 이미 마감되어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는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인도와 필리핀은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와 미국과 직접 경쟁하는 제조업 비중이 낮아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다. 그러나 아웃소싱 및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같은 서비스 무역이 트럼프의 표적이 된다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인도는 이미 예방적 조치로 버번 위스키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등 미국과의 무역 마찰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새로운 아시아 경제 질서의 태동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이 가져올 가장 역설적인 결과는 아시아 무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일 수 있다. IMD 비즈니스 스쿨의 시몬 에브넷 교수는 “미국이 자신의 레버리지를 과시하다가 실수할 위험이 있다”며 “미국 시장은 여전히 세계 최대지만, 20년 전에 비해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극단적 보호무역주의가 다른 국가들의 내부 지향적 무역 정책과 보복 관세를 유발할 경우, 아시아 내 공급망은 더욱 지역화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앨버트 파크는 “아시아에서는 공급망이 더욱 지역화되고 있다”며 “지역 내 국가들이 서로 간의 무역과 투자에 개방적으로 유지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디지털 무역에서는 트럼프가 첫 임기 때 일본과 디지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사례가 있어, 아세안과의 유사한 FTA 과정이 미국과의 논의를 위한 긍정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지역 에너지 무역 허브로서의 중요성은 에너지 지배를 목표로 하는 트럼프의 야망과 일치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역설적인 결과도 가능한 미래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아시아 경제에 단기적 충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아시아 내 경제 통합을 가속화하고, 역내 무역을 강화하며, 결과적으로 아시아 무역에서 미국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역 전문가들은 아시아 국가들이 이미 새로운 무역 질서에 대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베트남은 미국산 대두 및 기타 농산물 수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고, 인도는 버번 위스키에 대한 관세를 선제적으로 낮췄으며, 한국은 관세 영향을 받는 수출업체 지원을 위한 대규모 금융 패키지를 준비했다.

미국 시장이 여전히 세계 최대이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오히려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도쿄에서 특파원 리버 아키라 데이비스의 보고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내에서는 이미 “포스트 미국 시장” 전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의도치 않게 새로운 아시아 중심의 무역 질서를 탄생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 전망이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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