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형 로봇이 이제 우리 일상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활약하던 로봇들이 이제는 가정용으로 진화하면서 ‘1가구 1휴머노이드’ 시대가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가정용 휴머노이드를 스마트폰처럼 인류의 삶을 바꿀 차세대 혁신 제품으로 보고 있으며, 시장 규모가 2050년까지 3조 달러(약 416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5년은 AI 가정용 로봇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24와 CES 2025에서 글로벌 주요 가전·로봇 업체들이 가정용 로봇의 판매 시기와 기술을 경쟁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발전이 로봇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기존 스마트 가전은 단문 형태의 지시만 가능해 활용도가 떨어졌지만, 자연어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생성형 AI 기술이 로봇과 결합하면서 가정용 로봇이 진정한 ‘집사’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가정용 로봇 경쟁 유럽 기업들의 약진
노르웨이의 1X테크놀로지스는 휴머노이드 ‘네오(Neo)’를 가정에 판매하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2017년 네오의 전신인 ‘이브’를 출시해 가정용 휴머노이드 시장을 개척한 1X는 지난 9월 네오 시제품을 공개하며 이 분야 선두 주자로 나섰다.

네오는 휴머노이드를 상업적 환경에서 소비자용으로 확장하는 최초의 로봇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무게는 경쟁 로봇보다 가벼운 25kg이며, 일반 로봇이 플라스틱이나 금속 외피를 가진 데 비해 네오는 쿠션이 내장된 수트로 덮여 있어 가정 환경에 더 적합하다.
독일의 노이라로보틱스는 집안일을 돕는 휴머노이드 ‘4NE1’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4NE1은 키 180cm, 무게 80kg인 성인 남성 체형의 로봇으로 15kg의 짐을 옮길 수 있다. 관절에 장착한 센서로 균형을 잡기 때문에 다림질, 요리 재료 손질 같은 집안일이 가능하다.
(1X테크놀로지사의 NEO로봇)
노이라 로보틱스는 2025년에 3세대 4NE1을 출시할 예정이다. 노이라 로보틱스는 작년 말 미국 사모펀드로부터 217억 원의 투자를 받았으며, 이 회사의 로봇은 움직이는 모든 관절에 센서를 장착해 균형을 잡고 힘 조절도 할 수 있어 섬세한 집안일도 가능하다.
(4NE1로봇)
미국 기업들의 도전
(테슬라 옵티머스의 모습)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옵티머스(Optimus) 휴머노이드 로봇이 2만 달러(약 2800만 원)에 출시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2025년 말까지 판매를 시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xAI가 개발한 그록-3(Grok-3) 기초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옵티머스가 몇 달 안에 배치되어 운영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옵티머스 젠2(Gen2)는 57kg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피큐어 01의 모습)
미국의 AI 로봇 회사 피규어AI(Figure AI)는 피규어01(Figure01)이 커피 타는 법을 터득했다며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피규어AI의 브렛 애드콕 CEO가 소셜 미디어에 공개한 영상에서는 한 남성이 커피를 만들어 달라고 하자 피규어01이 섬세하게 커피를 제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규어AI는 이미 피규어01에 대한 두 건의 상업적 계약을 체결했으며, 최근에는 헬릭스(Helix)라는 새로운 AI 모델을 발표했다.
(오른쪽에 위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모습)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최신 버전의 아틀라스(Atlas)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이전 모델에 비해 완전 전기식이며 더 강력하고 민첩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올해 현대자동차 시설에서 아틀라스 휴머노이드 로봇의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며, 곧 다른 산업에서도 복잡한 크기, 모양, 무게의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아 기업들의 움직임
(유니트리 G1로봇 모습)
중국의 유니트리는 G1 휴머노이드 로봇을 1만6000달러(약 2200만 원)에 판매할 예정이다. 또한 텐센트 산하 로보틱스X는 ‘샤오우’라는 이름의 가정용 휴머노이드를 공개했다. 샤오우는 택배를 가져오고 음료수를 담아 가져다주는 동작을 시연했으며, 휠체어를 미는 상황에선 장애물을 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이센스의 할리 AI봇)
중국의 하이센스는 ‘할리’라는 AI 로봇을 선보였다. 할리는 얼굴 인식을 통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이 정보를 냉장고로 전송하여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맞는 음식을 추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하이센스는 할리를 12개월 안에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삼성 AI봇 볼리)
(LG의 Q9 AI봇)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AI 로봇 ‘볼리’를 올해 연말, LG전자가 ‘Q9’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볼리는 작은 노란색 공 모양으로 두 바퀴가 달려 있어 민첩하게 움직인다. 집안 가전제품 제어뿐 아니라 사용자의 일정, 날씨 정보 등을 알려주는 비서 역할을 하며, 바닥이나 벽에 빔 프로젝터를 쏠 수 있다. LG전자의 Q9은 스크린에 표현되는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춤을 추며, 사용자의 생활 루틴에 맞게 실내 조명과 온도 등을 조절한다. 두 로봇 모두 수백만 원 대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진입
최근 빅테크 기업들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새로운 부서를 구성 중이다. 메타 최고기술책임자(CTO) 앤드루 보스워스는 “라마 플랫폼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소비자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타는 중국의 유니트리 로보틱스, 미국 피겨 AI 등과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로봇 개발업체 앱트로닉에 대규모 투자를 했으며, 앱트로닉은 아폴로라는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이다. 오픈AI는 지난달 제출한 상표 등록 신청서에 ‘로봇’ 분야를 포함시키며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의도를 명시했다. 오픈AI는 메타에서 증강현실(AR) 글라스 ‘오라이언’ 개발팀을 이끈 케이틀린 캘리노스키를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디자인 이사로 영입했다. 캘리노스키 이사는 오픈AI가 구상하는 휴머노이드의 가정 활동 강화 연구에 전념할 예정이다.
애플 역시 미래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을 위해 휴머노이드 및 비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전망 및 도입 시기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정용으로 본격 보급되는 시점을 2030년으로 예측했다. 이후 꾸준히 수요가 늘어 2040년 800만 대, 2050년 6300만 대가 보급될 것으로 내다봤다. 맥쿼리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시장이 2050년 3조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는 24억 3천만 달러로 평가되었으며, 2024년 32억 8천만 달러에서 2032년 660억 달러로 연평균 성장률(CAGR) 45.5%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트너는 2027년이면 시판되는 스마트 로봇의 10%가 차세대 휴머노이드 작업 로봇일 것으로 전망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량 보급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2년 안에 제조업체, 공급망 및 물류 기업, 소매업에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가정 1로봇 시대, 얼마나 가까워졌나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1가정 1로봇’ 시대가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몇 가지 장벽이 남아 있다. 그러나 AI, 로봇 공학, 센서 기술 등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러한 장벽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특히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출시될 가정용 로봇들은 생성형 AI를 탑재해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집안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초기에는 고가의 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이 낮아지고 성능이 향상되면서 점차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빨래를 개고, 커피를 내리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AI 살림꾼이 있는 ‘1가정 1로봇’ 시대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30년경에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할 것이며, 이는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을 바꾼 것처럼 우리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스마트폰 이후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받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이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