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lumn – 책으로 가는 문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그가 최고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런 사람을 거장이라 부릅니다. 영화계에선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사람이 거장이라 불릴 수 있을 것 같고, 문학계에선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K 롤링’, 미술계에선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같은 분을 거장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거장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의 토토로>, <천공의 섬 라퓨타> 등등 그의 많은 작품들은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발표 당시 수많은 아이들이 좋아했고, 그 아이가 자라 다시 그의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열광했고, 대학생때 한번 더 봤고, 40대가 되어서도 한번 더 봤던 <미래소년 코난>이란 완성도 높은 작품이 1978년에 발표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것이 정말 충격적입니다. 핵전쟁으로 멸망한 미래 어느시대에 외딴섬에 살고 있던 소년 ‘코난’이 군인들에게 쫓기던 소녀 ‘라나’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나쁜 군인들에게 납치된 소녀를 우연히 만난 동료(포비라고 불리는 들창코 소년)와 함께 구해내는 이야기입니다. 군인들이 소녀를 납치했던 이유는 천재 과학자인 소녀의 할아버지가 개발한 ‘무한 에너지’의 비밀을 빼앗고 그것을 독점하여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소녀를 구한 소년의 행동은 결국 인류를 구한 영웅적 행동이 됩니다.

<미래소년 코난>이란 만화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고 미소가 지어지네요. 마지막회에서 인류를 구하고 ‘하하하하’ 웃으며 양손을 마주잡고 빙빙빙빙 돌던 코난과 라나가 이후에 이떻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명문대에 들어간 라나와 대학에 가지 못한 코난이 서로를 할퀴며 서로에게 지쳐갔는지, 코난이 군대에 간사이 라나가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났는지, 회사에 들어간 코난이 회사에서도 지치고, 가정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하는 위기의 중년이 되었는지, 공부는 못했지만 사업으로 성공한 친구 포비와 술을 마시며 자신의 과거 선택을 후회했는지 우리는 알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호감을 느낀 가여운 소녀를 구하기 위해 평화로운 섬을 떠나, 친구와 함께 악당들과 싸우고, 날아다니는 비행선 위를 두려움없이 뛰어다니고 높은 빌딩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리던 정의로운 소년 코난을 기억할 뿐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끔 코난이 생각날때마다 그것을 보며 열광했던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을 얻습니다.

한국에 들를때마다 방문하는 중고서점 ‘알라딘’에서 아주 우연히 만난책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에 끌려 책을 열어 보았는데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작은 분량에 내용도 책표지를 표함한 삽화가 반, 글자가 반에 여백도 너무 많아 ‘거장의 이름을 팔아 출판사가 너무 날로 먹으려고 만든 기획 도서’가 아닌가 의심이 먼저 갔습니다. 그나마 얼마 안되는 글도 ‘아동 도서’들을 언급하며 영양가 없는 ‘추억팔기’를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마침 독서 흥미가 ‘경제, 경영, 재테크’ 쪽으로 꽂히던 때였던지라, 이 책을 살까말까 고민을 하다 책을 내려 놓았습니다. 돈 안되는 책에 돈을 쓸 나이는 지난 중년의 현명한 선택이었죠. 결국 다른책들 다 결제하고, 서점을 나가는 길에 다시 돌아와 이 책을 집어들고 결제를 했습니다. 뭔가 알수 없는 끌림이 있는 책이었는데, 결국 이책을 읽는 도중에 그 끌림의 의미를 깨닫고,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다가 혼자 멍하니 각성의 경험을 받아들였네요. 이 성의 없어 보이는 얇은 책이 이렇게 큰 감동을 줄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건 인정해야 하는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2011년도에 출판된 이 책은 70세(1941년생입니다)가 된, 그리고 아직도 애니메이션을 계속 제작하는 현역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작품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소년 문고중 50개를 엄선하여 소개한 1부와 소년 문고 및 ‘책’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와 나눈 방송 대담 및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가 소개한 <이와나미 소년 문고>는 물론 그가 소년이었던 일본에서 발간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추천이 한국 소년들에게 그대로 적용될수는 없지만, <어린왕자>, <삼총사>, <바보이반>, <톰소여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 <소공자>, <서유기> 등의 대부분의 추천서들은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수 있는 책들이라 그의 취지를 이해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것 같습니다. 책한권마다 3문단 정도로 자신이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정과 그에게 끼친 영향, 그 책에 대한 생각을 담담히 적었는데 이미 스스로의 작품들과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거장이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의 과거와 내 아이의 현재를 오버랩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만하고 오만한 말투로 자신을 한껏 포장하며 얘기해도 사람들이 충분히 귀기울여 들어줄 거장이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고 솔직하고 겸손하게 얘기해도 이렇게 힘이 있는 글이 나올수 있다는 생각에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게 진짜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옛날 옛적에’으로 시작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수많은 동화를 읽고 있습니다. 심심한 아이들이 ‘세계문학선집’, ‘한국문학선집’을 읽고 각자 저마다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각자의 미래를 만들어갈것입니다. 억지로 읽히고 억지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르게 태어났고 다르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똑같이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 순간을 만나게 되지만 결국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아동 도서의 특징은 ‘꿈과 희망’입니다. 제가 이책에 끌렸던 이유, 그리고 이책이 가진 힘은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 깊은곳에서 꺼져 있는 ‘꿈과 희망’의 스위치를 켜주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꼭 이 책을 사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있는 어느 주말, 어렸을때 읽었던 책, 또는 재밌게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한번 보면서 그 때의 당신을 만나보길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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