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천천히 살기

그동안 유튜브에 한 달에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광고가 안 나오는 프리미엄 회원으로 유튜브 시청을 즐겨왔는데, 얼마 전 구글 계정이 문제가 생겨서 자동 결제가 막히는 바람에 프리미엄 회원자격이 박탈당하고 유튜브 시청 시 어쩔 수 없이 광고를 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이게 말입니다, 결코 나쁜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전과 달리 영상이 시작되면 광고가 자동으로 뜨면서 5초 경과 후에 <광고건너뛰기>를 누르고 난 후 시청을 하는 것이 영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것도 좀 지내다 보니 나름대로 이점이 있더라고요.

먼저, 영상 시작이나 중간에 광고가 뜰 때마다 고개를 들고 잠시 기다리는 것이 뇌에 여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즉, 예전에는 너무 몰아치며 영상을 시청하느라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광고가 뜨는 시간이 되면 영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중간에 뜨는 광고가 나름대로 세상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광고도 생활 정보가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중간중간에 뜨는 광고를 보며 요즘은 이런 새로운 제품들과 기발한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흐름을 광고를 통해 느끼게 됩니다.

결국 너무 영상만 죽어라 들여다보는 것 보다, 중간 중간에 광고도 보면서 머리를 돌리기도 하고, 광고에 흥미가 없으면 그 시간 머리를 식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훨씬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며 느끼는 것이 생겼습니다.
우리 한국인이 지향하는 생활 철학, 항상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한 가지 일에 여유 없이 장시간 몰입에 빠지는 것이 결코 우리 삶에, 적어도 정신적인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의 특징은 빨리빨리 입니다.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런 빨리빨리 성향이 국가 발전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개인의 삶에 행복을 심어주는 데에는 과연 보탬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특히 우리처럼 이국의 땅에서 생활하는 교민들에게는 한국에서 삶의 신조처럼 신봉하던 빨리빨리 철학이 이곳 생활에는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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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남들보다 앞서서 재빨리 행동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왕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좋다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한 늦게 맞는게 낫다 입니다. 끝까지 버티다 보면 아예 매를 안 맞는 수도 생기니까요.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이미 2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베트남에서 골프장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을 무렵입니다. VGCC라는 18홀 골프 코스가 생기고 회원 분양을 20,000달러에 했습니다. 그리고 수년후에 18홀을 더 늘여서 기존 맴버들에게 새로운 18홀을 16,000 달러에 분양을 했습니다. 저도 그때 먼저 만든 18홀을 구입한 터라 새로운 18홀을 16,000달러를 더 내고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한 6개월이 지난 후 새로운 구장 구입비가 16,000달러에서 9,000 달러로 낮아졌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일단 가격이 낮아졌으니 당연히 앞에서 16,000 달러에 구입한 사람에게는 차액을 돌려줄 것을 기대했는데 웬걸, 골프장에서 나 몰라라 합니다. 항의를 했더니 결국 한 1000불 상당의 바우처를 주고 입을 닦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어쩝니까? 이곳은 한국이 아닌데 말입니다. 생각 없이 서두른 탓에 무려 7,000 달러를 강탈당하고도 아무 조치도 못취하고 손해를 보고 말았습니다. 참 개떡 같은 일이 한국인 특유의 빠른 조치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그때 느낀 일입니다.
베트남과 같이 이국생활에서는 좀 더디게 움직이며 상황을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비싼 돈을 치르며 배웠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곳에서는 빠르게 판단하고 급하게 움직인다는 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그런 상황은 이국 생활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범하는 실수의 대부분의 원인을 돌아보면, 너무 서두른 탓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너무 늦은 탓에 일어나는 실수는 별로 흔하지 않은 듯합니다.
음식을 하다가 그릇을 깨거나, 소금을 설탕인 줄 알고 넣거나 하는 실수, 국그릇을 들고 가다 엎어버리는 실수, 모두 서두른 탓에 일어납니다. 우리 삶에서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교통사고 역시 99%가 서두른 탓에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못된 계약의 대부분도 역시 빠른 생각에 이은 섣부른 행동으로 생겨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분노 역시 바로 표현하지 않고 잠시만 돌아보면 극단적인 결과는 막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늦게 반응했다면, 하는 후회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경우는 없는가요?

요즘 세상이 하도 빨리 돌아가니 조금만 한눈 팔다 보면 놓치고 만다는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치명적인 실수와는 거리가 먼 듯합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라면 한번 놓친다고 영원히 기회가 사라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 까 싶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듣고, 천천히 행동한다면 우리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후회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침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올해부터는 서두르지 않는 삶, 이것을 올해의 행동양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천천히 사고하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걸으며, 천천히 행동하며, 여유롭게 사는 것을 한번 실천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천성적으로 엄청 급한 성격의 인간이 이런 말을 하니 우리 집 고양이가 웃을 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천히 사는 삶의 방식이 급한 것보다는 좋은 면이 훨씬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급한 성격의 한국인들, 한번 되 씹어 볼 만한 생각이 아닌가요? 올해는 천천히 여유를 갖는 삶을 살아 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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