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 기 아동의 외국어 습득의 비밀! 실제 사례를 통해 언어치료사와 함께 풀어봅시다.
(해당 내용은 사례에 기반하여 각색하였습니다)
저희 아이는 베트남에서 태어나서 현재 국제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어요. EAL 선생님께서 모국어 발달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그런데 한국어는 정말 문제없이 잘하고 주변에서도 말을 참 잘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어 언어평가가 필요한가요?
이곳에 비슷한 사연의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대략 5세 정도가 되면, 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집니다. 본인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상호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학령기가 되면, 이와 더불어 학습에 필요한 언어(academic language)를 익혀야 합니다. 이는 한국 교육기관이든, 국제학교든 마찬가지입니다.
학습언어를 익히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상위언어능력(metalinguistic ability)입니다. 상위언어 능력이란, 맥락에 맞게 내용을 조정하거나 숨어있는 의미를 추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속담과 관용어의 뜻을 알아차리고, 문법적인 오류를 찾고 수정하고, 단어를 소리(음소)로 나누는 등의 능력입니다. 영어를 읽기 위해 파닉스(phonics)를 배우는 것도 이에 해당됩니다. 이걸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핵심내용을 파악하는 것, 저자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 비유적인 표현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위의 아이는 이중언어 아동(bilingual child)입니다. 이중언어 아동이란, ‘두 언어를 사용해야만 행복하고 건강한 일상을 살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아동’으로 언어의 필요성(needs and function based)에 따라 결정됩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국인 가정의 아이들은 이중언어 아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중언어 아동들은 학령기가 되면서 언어전환(language shift)이 이루어지는데,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영어가 익숙해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적인 언어는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가 모두 필요합니다.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화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베트남은 영어권 국가가 아니므로 우리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시점부터 국제학교를 준비하며 영어를 가르칩니다. 영유아 시기 한국에서만 자란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모국어접촉이 부족했는데, 우선 학교를 보내야 하니 영어가 더 급합니다. 어쩌면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채로 한글 이야기책에 몰두했을 시점 우리는 영어 숙제에 좀 더 집중했을지도 모릅니다.
언어전환이 일어나는 일정 기간 동안 아이들은 모국어 능력을 끌어 다 써야 영어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국어의 기초가 있는 아이들은 효율적으로 영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언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을 통해 언어간 전이(language transfer)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가 영어가 늘지 않는 경우, 어쩌면 모국어 발달에서 빠진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AL 선생님께서 모국어 언어평가를 의뢰하는 경우에는 영어 노출만으로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어 영어를 배우는 것과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은 한국어도, 영어도 필수적으로 발달해야 하는 시기에 있습니다. 이중언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언어 뿐 아니라 다른 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7세가 된 올해부터 국제학교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2년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니까 한국말을 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는데, 방학 때 한국에 가서 또래 아이들이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심지어 영어도 더 잘하는 것 같았어요. 저희 아이는 의사표현을 하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용이 어설프고 영어단어와 섞어서 하기도 하거든요. 그렇다고 영어가 아주 유창한 것도 아닌데, 이러다가 한국어도 영어도 못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더 걱정이 됩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들도 비슷하게 겪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침묵시기(silent period) 입니다. 모국어의 의사소통 기능은 가능한데 외국어로 말을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침묵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동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완벽주의 성향이거나 내향적인 성격일수록 침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오히려 화용적인 발달이 뛰어나 미묘한 상황을 구분하는 아이일수록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 침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중재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언어전환(code-switching)으로 두 언어가 혼재되는 현상입니다. 영어와 한국어 단어가 섞여서 나오는 것으로 예를 들어 “snack 먹을 거 있어?” 같은 경우입니다. 학습적인 용어를 영어로는 알지만, 한국어로는 잘 알지 못해서 이를 설명할 때 영어단어를 쓰는 경우도 이에 해당됩니다.
세 번째는 전이(transfer)입니다. 모국어의 지식을 활용해서 외국어를 익히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단어의 뜻을 이해하거나, 품사를 이해하는 등의 언어 지식을 외국어에 적용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간혹 과잉문법을 적용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한국어에 있는 존댓말을 영어에 적용하여 선생님께 “Hi요”라고 인사하는 경우 또는 한국어 조사를 붙어 “Mommy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어식 표현을 한국어에 적용하여 “이 자동차s는 다 mine” 이런 식으로 단어의 복수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전보식 발화(telegraphic speech)입니다. 이는 내용어만 말하는 것으로 “There’s no toilet paper in the bathroom.”을 “Bathroom no paper”라고 단어 수준으로 짧게 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현상이 언어지연이 있는 아이들이 보이는 발화 특징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간혹 언어지연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중언어 아동이므로 이러한 현상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생각하여 언어지연을 조기에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중언어 아동의 언어능력은 모국어와 할 줄 아는 모든 외국어 능력을 합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영어에 노출되어 있었고 교육기관에서 또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단일언어환경에서의 언어발달을 평가하는 공식검사 도구를 사용하여 아동의 언어발달을 파악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K-BNT-C」는 아동의 어휘발달을 평가하는 도구로 60개의 그림을 보여주고 단어를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곳에서 제가 만나는 아이들은 ‘모자’ 그림을 보고, “모자” 또는 “hat” 또는 “nó”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모든 답변을 정반응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중요하게 파악되어야 할 부분은 아동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논리적인 흐름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의 앞뒤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지,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지 등입니다. 더 어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는 아이가 언어를 초월하여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범언어적(translingual) 개념입니다. 향후 학령기가 되는 아이의 언어능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로 모국어 발달과 더불어 외국어 습득에도 중요합니다.
이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여러 언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장점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이중언어 아동에게 모국어만 강조하는 것도, 사회적 언어인 영어만 강조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언어는 필요에 따라 갈아입을 수 있는 옷과 같은 개념입니다.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여 세상의 많은 일들을 배우고 경험하며, 상호작용합니다.
베트남에서 이중언어 아이들이 언어라는 날개를 달고 행복하고 건강한 일상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