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있어서 가장 기피 플레이어는 누구일까요?
골프를 너무 잘 치는 잘난 싱글 골퍼, 혹은 너무 못 치는 비기너?
어떤 여론기관이 조사를 하도 항상 기피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플레이어는 늦장 플레이어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골퍼의 공적이 되는 셈입니다.
예전에 PGA골프에서 활약하던 <개빈 나>라는 한국계 선수는 어드레스 후 웨글을 무려 20여회나 하는 바람에 세상에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먹은 적이 있는데 그 욕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요즘은 오히려 빠른 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LPGA에서 활약하는 스페인의 <시간다>라는 선수가 있지요. 우승 기록 2회를 가진 중견 베테랑 선수인데 이름처럼 맨날 어디서 쉬어 가며 시간을 끄는지 플레이가 늦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결국 어느 대회에서 무려 4000 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상금왕을 차지하였던 신지애 선수 역시 일본에서 대표적인 슬로우 플레이어로 지목되어 비난을 받았습니다.
골프장에서 만나는 곤욕스러운 장면이 몇가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곤욕스럽고 운이 나쁜 날로 치부되는 것은 퉁명스럽고 성의 없는 캐디를 만나는 날입니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날 연인과 헤어졌는지 세상 슬픈 얼굴로 먼 하늘만 바라보거나 틈만 나면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다가 마지 못한 표정으로 클럽 몇 개 들고 오는데 하필이면 필요한 채는 꼭 빼놓고 오는 캐디 말입니다. 다른 채를 가져오라 하면 차마 거부는 하지 못하고 80대 노친내 걸음으로 카트까지 왕복 40리 길을 다녀오는 캐디를 보면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그날은 운이 좋지 않은 날입니다.
역시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줍니다.
두번째 운이 나쁜 날을 확인하는 사건은 앞 팀에 플레이가 느린 팀을 만나는 경우입니다.
서양 속담에 골프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팀이 뒷조를 이루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팀이 앞조를 이루고 하는 운동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처럼 필드에서 만나는 앞팀은 늘 느리게 간다고 생각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늦장 플레이 팀이란 이런 일반적인 관념 말고 진짜 그런 경우를 의미합니다. 공을 잘치고 못치고의 문제가 아니라 플레이 자체에 긴장이 흐르고, 양보 없는 골프룰 대로 엄격하게 진행하는 팀이 앞에 있으면 그날은 진짜 길고 긴 날이 됩니다. 공이 사라지면 그걸 찾느라 한참을 기다리게 만들더니 원칙대로 한다고 다시 티박스로 돌아오는 플레이어를 보면 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게 어찌 어찌 10여분은 족히 기다린 끝에 앞팀이 그린에 올라간 것을 보았는데, 그린에서 하세월을 보냅니다. 특히 마지막 퍼팅을 하는 인간이 몇 차례 어드레스를 풀고 다시 자세를 잡는 것을 보면 슬그머니 살의가 피어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퍼팅이 미스가 나고 다시 공을 놓고 라인을 살피고 어드레스를 몇 번 하는 것을 보면 스며든 살의가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주 원인이 늦장 플레이로 인함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실제로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사건의 거의 모든 원인은 늦장 플레이로 인합니다.
조사에 의하면 82%의 골퍼들이 느린 플레이가 게임의 즐거움을 앗아 갔다고 응답했고 또한, 52%의 골퍼가 늦장 플레이어를 ‘예의가 부족한 골퍼’로 지목했습니다. 2024년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8%가 느린 플레이 때문에 라운드를 중단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다툼이 안 생기겠습니까?
늦장 플레이어를 예의가 부족한 골퍼로 규정한 이유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모자라다는 의미인 듯합니다. 결국 슬로우 플레이는 트러블 메이커에 기본 교육 부재자로 치부됩니다.
골프로 생업을 이어가는 프로 골퍼들은 그렇다 해도, 즐겁자고 치는 동우인 골퍼들은 내 플레이가 동반자에게 그리고 다른 팀에게 지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문제는 슬로우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자신이 늦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고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 성향을 알 수 있는 것은 슬로우 플레이를 아무리 지적해도 결코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슬로우 플레이어가 늦는 이유는 게으름이 주 원인인듯합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치는 것을 다 구경한 이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그때서야 캐디에게 몇 야드 남았는지 묻고 직접 거리 측정기를 들어 확인합니다.
그리고 장갑을 다시 챙기고 한가한 점심 메뉴를 고르듯이 클럽 선택에 고민합니다. 클럽을 잡은 후 그립을 정검하고 연습스윙을 3차례 이상 하고 다시 뒤로 물러나 방향을 보고 대망의 스윙을 합니다. 그걸 보고 있는 동반자의 숨은 이미 넘어갔습니다.
어떤 친구가 말합니다. 자신은 자신의 팀에 슬로우 플레이어가 있으면 절대로 마지막 퍼팅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단 퍼팅을 하고 오케이 거리가 아니라 해도 순서를 넘기지 않고 바로 홀아웃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실수를 하면 손해를 보지 않겠는가의 질문에 좀 손해를 봐도 뒷팀이 기다리는데 맨 나중에 퍼팅을 하며 슬로우 플레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보다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플레이 속도는 진짜 성격문제인 듯합니다. 제가 만난 플레이어 중에 가장 급한 플레이어는 개인적으로 엄청 좋아하는 유명가수 최백호 씨였는데, 그가 20여년전쯤 베트남에 와서 라운딩을 함께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정말 놀랐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그가 스윙을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가 클럽을 들고 공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나도 움직이는데 내가 공 근처에 가서 돌아보며 그는 어느새 공을 치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와우 대단했습니다. 뭐 흠을 잡자는 하는 얘기가 아니니 실명을 거론한다고 명예훼손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렇게 골프를 30년 이상 하면서 많은 부류의 골퍼를 만나고 나면 이제는 타인의 성향으로 인해 자신의 플레이가 지장 받는 일은 적어집니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고 사람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지나치지 않기만을 바래 봅니다. 너무 늦은 플레이, 너무 빠른 플레이 모두 권장 사항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중에 더 권장하고 싶지 않은 플레이는 늦장 플레이입니다.
적어도 남의 눈총을 받지는 않을 정도면 좋겠습니다. 남의 눈총을 받을 정도로 이름을 날리게 되면 필드에서는 암암리에 기피 인물이 됩니다.
세상은 다 아는데 자신만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지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