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14,Thursday

가을 타령

시월은 유난히도 빨리 지나갑니다.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 등 공휴일이 많이 몰려 있는 탓인가도 싶습니다. 아무튼 시작한 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마지막 날입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이용의 노래가 귓가에 맴돕니다. 아마도 이용씨는 시월이 되면 기억나는 가수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시월이 유난히 짧은 것은 시월에 걸쳐 있는 가을이 짧은 탓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4 계절 중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가을만큼이나 시간은 그렇게 후딱 지나가 버립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소식에는 화려한 단풍을 배경으로 하는 가을의 풍경이 묻어옵니다. 언제 보아도 한국의 가을은 일품입니다.

베트남에 살면서 무슨 가을 타령인가 싶지만 사실 베트남에 살기 때문에 더욱 한국의 가을이 그립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 우이동에 있는 조부 묘지에 성묘를 위해 온 집안이 점심을 꾸리고 3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 종점에서 내려 작은 시내를 건너 산에 오르곤 했는데,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는 밤나무가 무성했지요. 쌍둥이 밤을 찾아 형과 하나씩 나누어 먹는 맛은 특별했고요, 바닥이 다 보이는 시냇가에서 송사리를 잡다가 물에 빠져 오돌오돌 떨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한국의 가을입니다.

가을, 참 이쁘고 계절에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말은 참으로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운율을 만들어냅니다. 봄도 그렇고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모두 듣기만 해도 계절의 정서와 잘 어우러지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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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김에 그 이름의 어원을 찾아봅니다.

먼저 ‘봄’은 ‘~을 보다’ 라는 말이 어원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보라’는 의미에서 봄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대지가 따스한 봄볕에 마음을 살포시 열고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어린 새싹을 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여름’은 각종 열매가 열린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그럴 듯합니다.

그리고 가을은 끊어내다의 고어인 ‘갓(끊)다’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수확의 시기에 열매를 끊어 낸다는 뜻으로 사용된 ‘갓다’ 라는 말은 남부지방의 방언인데요. 추수하다 라는 말을 남부지방에서는 가실하다 라고 말하는데, 이 가실하다 라는 말에서 가슬이 되어 가을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으로 봅니다. 오곡백과를 거두어 드린다는 추수하다의 의미인 가을, 생각만해도 풍요로워지는 계절 가을과 딱 어울리는 말인 듯합니다.

겨울은 봄, 여름동안 자란 열매들을 가을에 모두 추수한 후 추운 날씨에 모든 생물들이 잠깐 쉬어가는 계절이지요. 그래서 겨울이라는 말은 ‘겻(머물다)다’라는 말이 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겨는 계집의 어원인 겨집(집에 있는 여자), 즉 집안에 머무르는 일이 많은 겨울철을 표현한 말이라고 합니다. 추운 겨울, 추위를 피해 집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떠올리니 겨울이라는 단어와 너무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사계절의 이름에도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가 담겨있으니 우리 조상님의 혜안을 참으로 가름할 길이 없습니다.

어느덧 가을을 상징하는 시월도 세월의 고개를 넘어갑니다. 익숙한 십진법의 마지막 달을 보내며 한해가 꺾여가는 것을 실감합니다. 이제 고작 두 달의 우수리만 남아있으니 한해의 매듭을 위한 뒤정리를 해야 할 듯합니다. 서양에는 그런 말이 있지요 사랑과 연설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훌륭하게 매듭짓는 사람은 드물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습니다. 시작은 누구나 다 하지요. 다이어트도 누구나 언제든지 시작하지만 성과를 걷는 사람은 드물지요. 사업도 그렇지요. 수많은 회사나 업소가 하루에도 수없이 생겨나지만 또 그 수만큼이나 문을 닫습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간판을 만드는 광고쟁이들입니다. 하물며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은 우렁차게 시작했는데 끝까지 분명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우물거리며 자신 없는 말꼬리를 숨기면 그 말에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그만큼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이제 그 중요한 한해의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가을에는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마무리를 해야 할 듯한데 우연히 책에서 만나 법정스님은 짐짓 미소만 던집니다.

벽을 바라보고 좌선을 할 것인가, 먼지 묻어 퀴퀴한 경전을 펼칠 것인가. 그런 짓은 아무래도 궁상스럽다. 그리고 그것은 이토록 맑고 푸르른 가을 날씨에 대한 결례가 될 것이다. 그저 서성거리기만 해도 내 안에서 살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 밖에 무엇을 더 받아들인단 말인가. (법정 스님 “무소유”에서)

결국 스님은 가을에는 그저 가을을 즐기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아, 그러고보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이 가을에는 시집(詩集)이라도 한권 읽으며 베트남에는 없지만 책에서는 쉽게 묻어나는 가을을 찾아 떠나는 독서 여행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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