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가까이해서는 안 될 인간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변 사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주변에 두고 있느냐 가 그 사람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파리가 들끓은 곳에서 지내면 파리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꽃 향기 그윽한 꽃밭에서 지내면 자신의 몸에도 꽃향기가 묻어나는 것은 어떨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내리도록 들어왔던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이 어린 나이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라도 일반적인 윤리나 사회의 공정한 상식을 외면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가?

공자는 見利思義(견리사의) 라는 말을 남겼다. 공자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을 쫓기 마련이다. 따라서 욕심을 가지는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무조건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욕망에 사로 잡힌 인욕이 된다. 반대로 義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올바른 것을 따른다면 천리를 따르는 일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정제되지 않은 욕심을 부리는 일을 경계했다.

맞다. 우리 같은 평범한 범부가 욕심이 없을 수는 없다. 설사 끝없는 욕심에 달아오르지 않는다 해도 세상을 살면서 생기는 끊임없는 유혹과 자극이 욕망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영웅이나 현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욕심이 들 때마다 이런 욕망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 한발 물러나 관조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걸음 물러난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잠시 분리하는 일이다. 즉 자신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처럼 그 일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과한 욕망에 휘둘릴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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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에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갈 수 있다. (知足不辱 知止不胎 可以長久: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라고 쓰여있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스스로의 환경과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안다는 것이고, 멈출 줄 안다는 것은 감정이나 욕망이 과잉이라고 판단되면 더 이상 휩쓸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추고 돌아설 줄 아는 용기를 의미한다.

세상을 살면서 진정으로 용기가 필요할 때가 바로 지나친 욕망으로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갈 때이다. 욕심에 매몰되지 않도록 한걸음 물러 설 줄 아는 용기, 그것이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가꾸어 준다. 한걸음 물러서면 자신을 욕망의 구더기로 인도하려는 그 일이 보인다. 그 일을 추구하는 자신의 행동이 바른 도리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따질 수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면 그 일에서 떠나야 한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다면 과감하게 계속해도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을 바라보는 관조의 시간에도 자신을 속이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즉 자기 정당화를 위한 핑계를 찾는 시간이라면 아직도 욕심에 헤어나지 못하는 괴물로 살고 있는 셈이다.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만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포용력을 발휘하는 인간을 우리는 괴물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런 괴물을 경계해야 한다. 세상이 다 과욕이라고 지탄함에도 멈출 줄 모르는 욕심에 함몰된 인간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욕심에 물든 사람을 옆에 두면 그 욕심은 자신마저 삼켜버린다.

주역에는 “세상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것들이 모이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서 나뉘어 산다. 길융이 그로 말미암아 생긴다.” 라고 말했다. 즉 유류상종이라는 말이다. 비슷한 것들이 모여 바른 일을 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풍조를 만들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반대로 좋은 무리가 각자의 맡은 바 일을 제대로 해 나간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변을 돌아보라. 어떤 성향의 무리가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지 살펴보라. 진정한 봉사를 지향하는 참된 인성인지 아니면, 봉사를 핑계로 사익을 챙기려는 간교한 인성의 집합체인지, 세상의 이치를 두려워하는 인물들인지, 그치지 않는 욕망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인성들이 모인 무리인지 말이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그대는 올바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얼른 그들과 손절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요즘 우리는 괴물로 변모한 인간들을 뉴스에서 흔히 만난다. 정치를 한다는 인간들은 둘째 치더라도, 공정함을 바탕으로 정정당당하게 기량을 겨루는 체육계에서 지도자 급 인사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이 대중의 혀를 차게 만든다. 세상이 다 아니다 해도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인 듯 뻔뻔하게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연연하고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경종에 귀를 닫고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는 세상이 원망한다. 마음이 삐뚤어진 탓이다. 마음이 삐뚤어지면 부끄러움이 사라진다. 부끄러움이 사라지면 더 이상 인간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그런 해프닝을 보며 혀를 차다가 문득 우리 교민사회를 돌아본다. 설마 우리 교민사회에서는 그런 인물이 없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바란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부당한 술수로 명예로운 자리를 오욕으로 물들게 한다면, 우리 교민들은 모두 그를 외면할 것이다. 그를 쳐다보지도, 그에 대한 일을 들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하는 일은 메아리 없는 아우성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권에 눈이 멀어 그와 함께 하는 무리 역시 같은 대접을 받으며 자기들만의 무대에서 홀로 덩실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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