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September 17,Tuesday

– 우물안의 개구리 –

 

우리는 항상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느라 바쁘고, 일을 하느라 바쁘고, 가족을 챙기느라 바쁘고, 친구를 만나느라 바쁩니다. 해야 할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번아웃 (*번아웃 신드롬: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극진한 탈진 상태) 상태에 빠져 삶의 고비를 만난 친구도 종종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혹시 나는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것 아닐까요? 혹시 너무 바빠서 정말 해야하는 중요한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있는건 아닐까요?

‘장자’ 라는 책이 있습니다. 삶이 목에 걸린 계란 노른자처럼 텁텁하고 푸석푸석하다고 느껴질때, 그 느낌을 싹 씻어주는 사이다 같은 책입니다. 한여름 대낮부터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3~4시간을 외근 다니다가 퇴근길에 사우나에 들러 찬물 샤워를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죠.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모르는 책입니다. 장자가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노장사상(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잇는 도가 철학)’의 주인공이며, 노장사상의 핵심이론은 ‘무위자연’ 이라고 암기하셨던 기억은 나실겁니다. 중요한것은 ‘무위자연’이란 말은 너무나 심오하고 알쏭달쏭하여 입에는 맴돌지만 머리속에는 들어오지 않는 개념이라 너무 멀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공자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임금님께 충성하라’고 하셨고,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부처님은 ‘욕심을 버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용이 심플하고 핵심을 찌르는 말씀인지라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그래서인지 노자나 장자는 그 거대하고 위대한 가르침과 실질적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4대성인의 반열에 이르지 못하고 비주류 사상으로 대접받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자의 가르침은 거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재미있고, 와닿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합니다. 장자의 사상은 ‘예의’와 ‘인(사람다움)’이라는 개념으로 사람과 사람을 엮어 안정된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공자’의 가르침의 반대편에 서있습니다. 장자는 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정신을 얻어 세상 밖(자연)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기며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순을 거침없이 폭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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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위나라의 초왕이 그를 재상으로 삼고자 했을때 ‘ 당신은 재물로 쓰여지는 소를 아십니까? 좋은 곳에서 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다가 결국 깨끗한 천에 쌓여져 태묘로 끌려갑니다. 그때 발버둥을 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중히 벼슬직을 사양한 일화를 갖고 있습니다. 무슨 패배자 같은 생각인가 하실수도 있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구독자 백만명을 가진 유튜버가 대기업 대표이사직을 거절한 사례라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가장 고마웠던 선생님을 꼽으라는 질문에 교감 선생님이나,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지적질 하시던 학생주임 선생님을 떠올리는 분은 별로 없을겁니다.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해야 한다라고 얘기해주시던 선생님 보다는, 오히려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덮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시거나, 학생들의 입장에서 답답했던 숨통을 열어주시는 얘기를 해주시던 선생님들이 ‘고마운’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장에서, 하루는 출세와 승진을 목표로 오직 한길을 걷는 선배와 함께 회식을 하고, 다음날은 사표를 품고 다니며 언제라도 그만둘 각오로 일하는 선배와 회식을 함께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회식이 더 유익하고 어떤 회식이 더 재밌었을지는 여러분 각자의 상상에 맞기도록 하겠습니다.

 

장자의 가름침은 ‘변화’와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장자>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화한 등길이가 몇천리인지 알수 없고 한번 날면 6개월동안 구만리를 날고 땅에 내려와 쉬는 ‘붕’이라는 새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를 보고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우리는 한껏 날아보아야 겨우 느릅나무나 다목나무에 이를뿐이고, 어떤때는 거기에도 못 미쳐 땅에 내려앉고 마는데, 구만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다니’하며 비웃습니다. 장자는 우리안에 모두 ‘붕’이 될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붕이 날기위해서는 그 거대한 몸을 띄울수 있는 ‘바람’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큰 존재로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과 날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너무 바쁜것의 문제점은 자신이 ‘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 여유와 노력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장자>를 읽다보면 ‘혹시 우리가 너무 바쁜 나머지 우리의 삶의 한계를 바쁜 매미와 성실한 비둘기로 한정 짓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갖게 됩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우물안의 개구리’는 <장자>가 출처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 이야기를 할수 없지요. 한 곳에 갖혀 살기 때문이오. 여름벌레에게는 얼음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오. 마음이 굽은 선비에게 ‘도’를 얘기할 수 없지요. 한가지 가르침에 얽매여 살기 때문이요’ 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전에 친한 친구가 화난 얼굴로 ‘무심코 던진 돌에 우물안의 개구리는 죽어’라고 저에게 너무 진지하게 얘기해서, 상황에 안맞게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저도 <장자>를 읽으며 ‘우물안의 개구리’의 의미를 좀더 명확히 알수 있었습니다.

오강남 선생이 해설을 덧붙여준 <장자>는 생각보다 쉽고, 또한 재미있습니다. 동서고금의 종교, 철학들과 비교하며 장자를 이해할 수 있고, 현대적 의미도 설명해주어 ‘장자는 심오하고 어렵다’라는 편견을 확실히 깨줍니다. 장자를 읽고 세상 모든 사람이 ‘자연인’이 되서도 안되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장자가 <장자>를 쓰게 된것은 세상 사는 방식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였습니다. 공자의 ‘유교’와 노자,장자의 ‘도교’는 동양 사상의 양대축으로서 서로를 보완하며 각자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삶에 끌려다닐것인가니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을 잊게 됩니다. 기왕 살거면 자신이 삶을 끌고나가는 인생이 보다 행복할것입니다. <장자>를 읽고 오랜만에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험을 해보실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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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 금강공업 영업팀장 / (전) 남양유업 대표사무소장 / 베트남 거주 17년차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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