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는 휴식이 없습니다.
세상의 시간이 멈추지 않는한 우리의 생은 지속됩니다. 생이 지속되고 숨 쉬고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삶의 흐름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는데 자신은 그 세상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홀로 멈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마치 강제로 독방에 갇혀 세상과 유리된 채 일정시간을 보내는 것과 유사한 경험입니다.
세상과 유리된 채 지낸다는 게 결코 권장할 만한 유익한 경험은 아니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이 역시 살아가며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음양의 양면이 존재하며 나름대로 위로가 될만한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남정내들은 이렇게 세상과 격리된 세월을 의무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군목부를 갖습니다. 아마도 누구나 경험하셨겠지만 그렇게 일정기간 세상의 흐름과는 달리 별개의 생활을 하고난 후 세상을 만나게 되면 정말 깜짝 놀랍니다. 이렇게 세상이 변할 수 있는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변화된 세상을 만납니다. 물리적인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인 격리 현상도 일어납니다.
마치 내가 타야할 버스를 놓치고 나중에 다른 버스를 타고 가보니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장기간 군목부를 마치고 세상에 발을 디디면 낯선세상에 어떻게 적응을 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하는 경험을 누구나 겪곤합니다.
그나마 이런 군생활로 인한 세상과의 격리는 한국에서는 너나없이 겪는 일이라 양해가 되어 어렵지 않게 회복이 됩니다. 수많은 경험치가 사회적으로 쌓여있는 탓입니다. 그런데 그런 공통적인 경험말고 자신만 겪는 과정이 있다면 그 느낌은 좀 색다른 과정을 겪게 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기억이 있습니다. 주로 사건 사고로 인한 육체적 질환이 원인이 되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일정기간 병원에서 보낸 시간들입니다. 어느날 불쑥 찾아온 환난으로 인한 상처를 보듬고 회복하기 위해 병원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는 경험은 그 시기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젊은 시절에 겪은 경험은 불안이 따릅니다. 열심히 일하는 시기에 이렇게 한가하게 누워있어도 되는가 하는 심리적 조바심으로 인한 불안입니다. 그러나 비교적 생활의 안정이 일어난 후 겪는 경험은 달콤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달콤한 휴식 같아 즐기는 마음이 절로 생겨납니다.
한달여 전에 탈장 증상이 보입니다. 군 생활을 할 때 한번 겪은 일이 있어서 간단한 수술로 치유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탓에 별다른 염려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집안 일로 한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기에 조금 일찍 한국행을 잡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예약하고 방문하니 역시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수술 일정을 잡아 줍니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전신 마취를 하고 한시간 정도 걸리는 수술을 거쳐야 합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입원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퇴원합니다. 그 후에는 수술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참아야 하는 인고의 회복 기간을 일주일 정도 보내야 합니다. 예전과는 달리 귀국 후 지인들과 연락도 없이 일주일을 고스란히 집에서 보냅니다. 죽마고우들과 전화로 간단한 대화만을 나누고 집에 밖혀서 보내면서 의외로 여유로운 마음이 생깁니다.
몸을 회복해야 한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한, 바쁜 세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인공지능 등장 이후 급변하는 세상을 놓치고 있다는 조바심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일단 침대에 누워 보내는 강제 휴식을 맞이하니 한시적으로나마 그런 조바심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조비심을 내봐야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알고 있는 탓입니다.
이제 이렇게 묶여 있는 두손이 풀리고 나면 그때 비로서 움직여 보는 거야 하며 자신을 도닥이고 나니 마음에 안정이 깃들고 평화가 찾아 옵니다. 포기하고 내려놓은 후 만날 수 있는 후련함입니다. 가끔 수술 후유증으로 이런 저런 사건이 일어나며 가벼운 파동을 겪기는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질 현상이란 것을 알고 있으니 두려움이나 불안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며칠동안 내버려둔 수염이 더부룩 합니다. 더부룩한 수염이 자유를 상징하는 듯 사랑스러워 보이기조차 합니다.
그동안 유튜브에만 머물던 눈길을 먼지가 쌓인 책장으로 돌려 책들을 펼쳐보며 오랜만에 지면 속에 인자들을 만나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별 의미없는 글을 쓰며 자유와 해방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가끔 일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의 무게가 너무 버거울 때 가끔 다 던져버리고 모르는 척 하며 며칠을 보내는 것도 삶의 무게를 이기는 한가지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날 때는 심리적 물리적 삶의 무게를 다 내려놓아야만 진정한 휴식을 통한 재충전이 된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너무 심각한 병환이 아니라면 가끔 그런 우환을 통해서라도 강제적으로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내려놓은 것 역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씬짜오베트남 독자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