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고정관념 깨기. 어린이 그림을 높게 평가한 클레


3년 동안 얼굴도 똑같이 생긴 일란성 여자 쌍둥이 자매와 함께 미술 수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차근차근 모든 재료를 섭렵하더니 나중에는 둘이서 알아서 척척 아크릴로 창작을 할 만큼 재능이 많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둘을 수업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같은 장소와 시간에서 태어나 똑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자랐지만, 같은 주제와 재료가 주어져도 한번도 똑같이 그리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그 쌍둥이 중 한 아이는 깔끔한 선과 채색으로 예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다른 한 아이는 선은 투박하지만 특이한 색을 선택해서 개성 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자, 그럼 둘 중에 누가 더 그림을 잘 그렸을까요?
정답은 ‘둘 다’ 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두 아이의 그림을 동시에 놓고 많은 분들에게 물어봤다면 깔끔하고 예쁘게 그린 아이에게 많은 표가 몰렸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의 그림을 볼 때 그림 속에 있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보다는 얼마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렸는가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술에서는 기술은 중요하지만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마치 어떤 가수가 노래를 기술적으로 나무랄 데 없이 정말 잘하지만 자신만의 개성과 감정을 담지 않아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것처럼요.
지난 호 칼럼 마지막 부분에 등장했었던 이 문장 기억하시나요?
“어린이들은 어른이 쓸데없이 간섭하지 않으면 오히려 멋진 그림을 그리게 된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인 ‘클레’ 가 남긴 공감이 가는 멋진 문장입니다. 클레는 26세 때 그 자신을 가리켜서 일기에 ‘이 세계의 관찰자 혹은 우주 속의 한 어린이’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어린이를 높게 평가했던 ‘클레’ 답게 그의 그림은 어린이들의 그림과 쏙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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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세네치오’ 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 같이 보이지만 클레가 그린 그의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무대 예술 공연가였던 세네치오의 초상화라고도 합니다.)

실제 사람 같지 않게 얼굴은 동그랗고 큰 눈 속에는 빨간 눈동자가 있습니다. 얼굴의 칠해진 색도 어린 아이가 오일파스텔로 마음대로 원하는 색을 칠한 것 같습니다.
또한 클레는 ‘회화도 하나의 꿈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이 담긴 그의 그림을 보면 누군가의 꿈 속에서 남의 꿈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황금 물고기’를 보면 심해에서 스스로 밝게 빛을 내고 있는 물고기가 있고, 그의 다른 작품 ‘노란 새가 있는 풍경’을 보면 새가 거꾸로 매달려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림 속에는 마치 아이의 낙서처럼 그려진 실제와 하나도 똑같지 않은 새, 나무, 바닷속이 있지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꿈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니 신기합니다.

또 다른 클레의 그림들의 특징은 그림 속에서 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고, 시끌시끌하게 떠드는 소리도 들리고, 악기의 소리들도 담겨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클레’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진로를 결정할 때 둘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바이올린도 수준급으로 연주했다고 하니 그의 그림 속엔 그가 즐겨 연주하던 음과 리듬들이 잘 녹아있습니다.

‘클레’의 그림을 보고선 “이게 왜 유명하지? 이 정도는 나도 이건 그리겠다.” 라고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신 분들은 흰 도화지와 흰 캔버스를 준비해서 ‘클레’ 처럼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이 담긴 그림을 한 번 그려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막상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 도화지나 흰 캔버스가 주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기를 주저합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려야 잘 그리지?’, ‘뭘 그려야 하지’, ‘내가 너무 못 그리면 어떡하지?’ 등등. 자신이 만족하는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타인이 어떻게 봐주는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선뜻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또한 만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창작을 아이들은 거침없이 아주 쉽게 ‘잘’ 한답니다.

이번 주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벗어나서 이상하게 그려도 좋고 서툴러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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