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그림을 너무 못 그리는 것 같아요.” 수업 중에 갑자기 한 학생이 고개를 떨구며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 합니다. 저는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 학생이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이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조용하던 화실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부모님께 그림에 대한 꾸중을 들어서, 학교에서 선생님께 그림에 대한 부정적인 지적을 받아서 혹은 또래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서 날아가버린 자신감을 다시 듬뿍 채워주기 위해서 좀 바쁘게 움직이게 됩니다. “보리야. 보리는 색을 참 잘 쓰는 구나. 보리는 이 동물도 그렸구나. 선생님은 이 동물을 이렇게 그린 친구를 아직 본 적이 없어. 정말 대단한데!” 하고 그 아이의 그림에서 보이는 좋은 장점을 칭찬을 해줘야 합니다.
또 다른 학생이 묻습니다. “선생님, 하늘을 주황색으로 칠해도 될까요?” “너가 원한다면 물론 되지, 왜 안되겠어” “하지만 그러면 엄마가 이상하다고 혼낼텐데 …” “걱정하지마, 선생님이 엄마에게 잘 설명할께” “에이 그래도 하늘은 역시 파랑색이 맞지요?” ”그래? 그럼 나가서 확인해 볼까?” 아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서 노을 지는 하늘을 봅니다. “아! 하늘이 빨개요!” 그러고 나면 아이는 자신의 하늘에 자신있게 주황색을 칠하곤 합니다.
또한 학생들 중에는 어린 나이이지만 어디서 배운 그림, 어른의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학습된 기억으로만 정형화된 그림을 그리고는 칭찬을 바라는 눈으로 ‘나 그림 참 잘 그리지요?’ 하고 묻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잘 그려져 보이기 위해 기술적으로만 배웠기에 그 주제나 그 대상이 나오면 늘 한가지 방법으로만 그립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그려야 돼!” 하고 강요했던 사람들처럼 그 아이들에게 “이렇게 그리면 안돼!” 하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 때의 해결책은 화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냥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서 나무도 보고, 나뭇잎도 따서 손에 쥐어보고, 바람도 느껴보고, 하늘도 한번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화실에 돌아오면 그 아이만의 느낌이 담겨 있는 멋진 나무와 멋진 그림이 탄생합니다.
어린 자녀를 두고 계신 어머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7살 밖에 안된 아이를 데리고 오셔선 “아이가 실제와 똑같이 그릴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중고등학생들 중 입시를 하는 학생들도 사람을 실제처럼 그리는 것을 힘겨워 합니다. 인체의 골격도 이해해야 하고 해부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공부를 많이 해야 가능한데 너무도 쉽게 요구를 하는 학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이 참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또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우리 아이는 그림을 너무 만화처럼 그려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아름다운 것을 그리길 원합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가장 즐겨 보는 것은 만화이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가 인정을 받고 좋아하기 때문에 만화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미술관을 가거나 집에서 엄마와 같이 다른 그림들을 많이 본다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이고, 억지로 “이렇게 그리면 안돼! 그건 만화잖아!” 하시면 아이의 그림 세계가 갇히게 되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만화처럼 그리면 어때서요. 이것 또한 커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보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저희 화실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교양과 취미를 위한 성인반,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노력하는 입시반, 전공할 것은 아니지만 미술이 좋아서 배우는 취미 학생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모두 갖춘 초등 학생반 등등.
이런 다양한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과정으로 수업을 합니다. 수업 그림과 예술 그림.수업 그림은 학생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는 그림입니다. 수업 그림에는 연필을 잡는 법, 여러 재료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 색 쓰는 법을 포함해서 기술적으로 지켜야할 원근법, 명암, 형태잡기, 소묘, 크로키, 인체 수업 등등이 포함되고 예술 그림은 이름 그대로 학생들 본연의 창작 작품을 그리거나 만듭니다.
저는 수업 그림에는 그림의 기초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여기가 틀렸다, 다시 그려라, 등등’의 지적과 가르침을 마구마구 하지만 예술 그림에는 조언만 할 뿐 손을 대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예술 그림은 학생 본연의 창작물이기 때문에 저만의 잣대로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그림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도 이렇게 어린 예술가들에게 감히 평가를 안 하고 아끼는데 주위의 어른들 특히 부모님들은 너무도 용감하게 그림에 대한 평가를 거리낌없이 하십니다.
이상하게도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림을 존중하지도 않고 마구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자녀에게는 무척 잔인하게 평가합니다.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틀릴거라고, 잘 못 그릴거라 생각합니다. 미술을 전공 하거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에는 비판을 하지 못하다가도 자신의 아이들 그림에는 어른들만의 잣대로 마구마구 비평을 합니다.
‘여기가 틀렸다. 여기는 이렇게 그리면 안돼, 왜 여기다 이런 색을 쓴거니’ 등등
무심히 하는 한 마디의 말이, 좀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맘으로 건넨 비판적인 한 마디의 말이 아이들의 가슴에는 비수처럼 꽂혀서 상처를 냅니다. 그 상처들이 쌓여서 틀에 갇히게 되고 작품이 발전하지 않기도 합니다. 작품에 있어서 그것을 그린 아이들은 비록 서투르고 어리지만 작품의 원작자인 예술가입니다. 우리는 미술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이 나에게 ‘좋다, 싫다, 감동이 와닿는다, 혹은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감상를 하지 작품이 ‘틀렸다, 잘못 됐다, 왜 이렇게 그리지’ 이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그림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이렇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다음 칼럼의 주인공 클레가 너무도 공감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이 쓸데없이 간섭하지 않으면 오히려 멋진 그림을 그리게 된다.”
올해에는 어린 아이들의 그림 앞에선 하나의 예술가로서의 존중과 격려를, 전시회에 가서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과 대화하며 당당히 그림 감상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