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한주필 칼럼-“소년등과 小年登科”

중국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頥)는 인생에 ‘세 가지 불행(人生 三不幸)’이 있다고 했다.

먼저 소년등과 일불행(小年登科 一不幸)이다. 어린 나이에 이룬 성공이 오히려 불행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갑작스런 성공으로 교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세상이 제 손안에 있는 듯이 함부로 행동하다가 원성을 살 일이 많아지며 결국 패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있다. 이어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가 두번째 불행이다. 대단한 부모와 형제를 두고 태어난 것을 뜻한다. 요즘 세상에서 말하는 금수저처럼 재벌 집안이나 권세가에서 태어난 신분에 대한 경계다.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닌 부모, 형제의 부와 권세는 영원하지 않으며 자기 것도 아니다. 이 역시 노력없이 들어온 가치를 자기의 것인양 자만하지 말라는 얘기다. 끝으로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이다. 타고난 재주와 뛰어난 문장을 지닌 것 역시 경계의 대상이다. 타고난 재주를 믿고 노력을 게을리하게 되니 이 또한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말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보다 실질적인 3대 인생 악재가 등장한다. 소년등과(少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빈곤(老年貧困)이 그것인데 ‘소년등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등장한다. 중년에 부인을 잃고 홀아비가 되어 외롭게 사는 것이나, 노년에 돈이 없어 겪는 빈곤의 고통에 견줄만큼 큰 화근이 ‘소년등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년등과(少年登科) 부득호사(不得好死)”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어린 시절 성공에 빠져 오만함을 자행하면 부득호사, 즉 곱게 죽지 못한다는 무서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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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소년등과’의 대표적인 인물은 남이(南怡, 1441∼1468)와 이준(李浚, 1441∼1479)이다. 이 둘은 20대 나이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판서에 임명됐다. 모두 세조의 혈육으로 벼락출세를 했다. 남이는 이시애의 난 평정과 여진 정벌에 공을 세워 27세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28세에 역모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이준은 병조판서에 이어, 만 27세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이 됐다. 조선 역사에 20대 정승은 그가 유일하다. 그가 영의정이 됐을 때, 우의정 김질은 19세나 많았다. 이준이 당시 병마도총사에 임명됐을 때 “나이가 젊고 배우지 못하였는데, 하루아침에 중대한 일을 맡기니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사관은 기록했다. 영의정 이준도 남이가 죽고 석 달 뒤 부모상을 위해 물러 났으나 이듬해 역모에 휘말려 유배된 후 38세 나이로 사망했다. “소년등과 부득호사”의 전형이다. 

지난달 설 연휴를 앞두고 한국축구국가대표팀이 아시안 컵 4강에서 불의의 패배를 당하면서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축구경기는 실력과는 다르게 승부가 날 수 있다. 그것이 축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패배의 이면 스토리가 드러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물론 클린스만이라는 한량 사기꾼에게 넘어가 그의 사기 행각에 공범 노릇을 한 정몽규 축협회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정몽규 회장 역시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즉, 권세있는 부모 형제 밑에서 금수저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소년등과’ 못지 않은 찬사를 받으며 살아온 신분이라 그동안 겸손함을 잊고 오만한 행정을 자행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독단적 결정으로 야기된 사단에 대한 사과는 커녕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회의에도 일방적 불참을 통보하고 자취를 감췄다. 

이런 상황에 누군가가 이 패배의 원인이 선수간의 불화에 있었다는 듯이, 4강 경기가 있기 전날 일어난 선수들 간의 작은 다툼을 외국 황색 언론에 은근히 흘리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 그동안 클린스만이나 정회장의 거취가 어디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던 축협이 그 사건에 대한 질문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다. 결국 이런 뒷담화 수준의 다툼을 외국언론에 흘려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측과 그 의도가 드러난 셈이다. 그들은 우리 국민의 지능을 거의 반려견 수준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런 언풀로 말미암아 사건은 오히려 일파만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제 대한축구협회의 문제는 국제적 이슈로 등장했다. 어떻게 처리 될 것인지 세계 축구인이 주시하는 과중한 일이 된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사실 어린 선수들의 관계에서는 간혹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넘치는 혈기에 사회생활에 익숙치 않은 어린 선수들이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찬사를 받다보니 위 아래 구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할 수 있다. 이번 다툼의 주역으로 등장한 이강인 선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축구 신동이다. 하지만 그날 그가 팀의 주장이자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대 선배와 몸싸움을 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설사 황색 찌라시들이 주장하는 주먹다짐이나 멱살잡이는 없었다고 해도 손흥민 선수의 손가락이 탈구될 정도로 심한 다툼이 있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신동은 자칫 ‘소년등과’의 재앙에 빠질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구나 변호사를 선임하여 입장을 밝히는 나이답지 않은 맹랑한 처사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하다. 법정에 갈 일이 아니라면 변호사말고 마음과 대화를 해야한다. 진심이 담긴 사과와 통렬한 자기 반성을 통해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돌릴 수 있도록 그에게 현명한 지혜가 내려지기를 기도해 본다. 

손흥민 선수가 세계인에게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는 축구를 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평소에 부모로부터 받은 인성교육이 제대로 배어있는 행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재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기승전”인성”교육을 행한 손웅전 감독의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공보다 인성교육이 먼저다. 

한 마디만 더 하자. 이번 국대팀의 문제는 축협의 안일한 일처리와 무능, 무책임 그리고 정회장의 허영심을 이용한 클린스만이라는 국제 사기꾼이 벌인 대 국민 사기 행각이 원인이지, 어린 선수들 간의 작은 다툼이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얼팡한 언론플레이에 기름을 부어 사태를 악화시킨 대한축구협회와 15일 현재까지 비겁하게 꼬리를 감춘 정몽규는 이제라도 모든 과오를 뉘우치고 국민 앞에서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다. 

제발 위대한 정주영씨가 이룩한 정씨 가문에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부득호사(不得好死)”라는 불명예스러운 이정표를 세우지 않기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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