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스펙터클, 화려한 의상과 볼거리,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러.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할리우드의 장인 감독이다.
두 여성의 자아찾기 여행담 ‘델마와 루이스’에서조차 총 한 방으로 거대한 유조선을 날려버려 관객을 압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감독이니까. 이런 스펙터클에 대한 강박은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에서도 여전하다. 기둥 줄거리야 1956년에 만든 세실 B.데밀 감독의 ‘십계’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에서 익히 보아왔던 것들. 그러나 1500개의 CG와 2000억원이란 거금에 힘입어, 금빛 옷으로 치장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황량한 피라미드의 계곡이 아니라 치솟은 조각상과 장엄한 석조 건물 사이에서 숨 쉬며 돌아다닌다. 또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벌어진 이집트와 히타이트 간의 카데시 전투나 출애굽기에 나오는 야훼가 이집트에 내린 저주, 즉 피로 물든 나일강, 메뚜기 떼의 습격, 지독한 피부병 등 10가지 재앙이 생생한 질감으로 재현돼 있다.
물론 그 말미에는 우리가 다 아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의 스펙터클이 기다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으련만. 그러나 말년의 리들리 스콧은 갈수록 인간탐구에 대한 열정을 활활 불태운다. 크리스찬 베일이 분한 모세는 그 옛날 수염이 발끝까지 닿았던 배우 찰톤 헤스톤보다 훨씬 정체성 혼란에 흔들리는 인간적인 지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서에 기록되기로는 40년간 이집트 왕궁에서 생활하다 이후 40년간 양을 치는 목동으로, 다시 40년간 히브리인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살아갔다던 모세의 생은 영화에서 더 압축된다. 아내가 되는 십보라와의 로맨스도 옅어지고, 더 젊어진 모세는 대신 아이의 모습으로 현현한 야훼와 토론을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신에게 대들고, 어깃장을 놓고, 고뇌하는 등 감정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람세스와의 관계에서도 어릴 적 이집트에서 사촌으로 함께 자란 두 사내의 뿌리 깊은 애증이 도드라진다. 상대의 검을 바꿔 들고 전투에 나아가, 모세에게 목숨을 빚진 대가로 람세스는 모세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와 분노에 시달린다. 모세는 모세대로 청년 시절엔 이집트인과 히브리인, 두 민족적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리들리 스콧이 예술가로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부여하는 재해석의 관점이 블록버스터가 가진 스펙터클 전략과 끊임없이 충돌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지 두 갈래 야심은 구약 텍스트를 더욱 산만하게 흩어 놓는다. 똑같이 기가 막힌 블록버스터를 만들지만 섬세한 인문학의 세공력을 더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과 비교해 보면 더욱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단점이다. 누군가에게 제발 이 난폭하고 일방적이고 잔혹한 신, 이해 불가한 구약의 신을 좀 말려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신이 내린 십계명을 일일이 돌판에 새기는 모세의 인간적인 정성도 가상하지만, 람세스와 한판 붙는 라스트신의 화끈함이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기대가 더할 뿐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2012년에 자살한 동생 토니 스콧에게 바치고 있다. 영화라는 같은 매체로 경쟁했으나, 리들리 스콧이라는 거인을 뒤로하고 세상을 등진 동생. 형이 동생에게 보내는 애도가 왠지 모세와 람세스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묘한 여운을 마지막까지 남긴다.
감 독: 리들리 스콧
출 연: 크리스찬 베일, 조엘 에저튼
작성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