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세옹지마 (塞翁之馬)

세월이 쌓이며 깨닫는 것이 중에 하나가 있는데, 인생의 길흉화복은 한쪽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좋은 일 궂은일이 많기는 하지만 그 역시 한 세월을 지내고 돌아보면 그 일이 그때 당시 생각하듯이 좋기만 했던 것도 아니고, 나쁘기만 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웅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옛날 중국 북쪽 변방에 사는 노인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 낙심하였는데, 얼마 뒤에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더 데리고 돌아와 노인이 오히려 좋아하게 되었고, 이후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어 다시 그 돌아온 말을 원망하고 낙담하지만, 그 일 때문에 아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목숨을 구하게 되어 노인이 다시 기뻐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정말 세상 일은 한쪽으로 편향된 결과를 가져오는 법은 없다. 자연에 음양의 조화가 있듯이 늘 양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좋은 일이라도 마냥 기뻐하지 않을 것이고, 나쁜 일이라도 실망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노화가 일찍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릎에 심각한 고장을 겪고 있다. 그것도 골프를 치는데 가장 큰 버팀 목이 되어야 할 왼쪽 무릎이 고장이 났으니 유일하게 즐기는 운동인 골프를 못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의사의 유일한 조언은 체중을 줄여 무릎에 무리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체중 감량에 돌입하며 음식량을 급격히 줄였다. 또한 시간이 되는대로 다리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하며 재활에 힘을 쏟고 있다. 장년이 되어 이런 사고를 당하면 회복을 위한 노력의 무게는 젊은 시절에 비해 비할 바가 아니다. 다이어트도 장년의 나이에는 기본적으로 기초 대사량이 적어 식사량을 줄여도 쉽게 체중계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 운동 역시 기본 기력이 딸리니 운동량을 증가 시키는 일이 쉽지 않은 과제가 된다. 지지부진한 진행이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다. 그러자 참새의 눈에 방앗간이 보이는 것처럼 필드가 그리워진다.   

지난 주 걷기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필드에 나섰다. 왼쪽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릎 보호대를 차고 오른 발을 축으로 사용하여 체중이동 없이 팔로만 친다는 기분으로 스윙을 하며 라운드를 돌았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진다.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낯선 자세에 믿음이 없는 스윙이긴 하지만 기이하게도 공은 똑바로 다닌다. 스윙에 들어가는 힘은 반 정도 쓴 것 같은데 거리도 크게 줄어든 느낌이 안들고 방향은 오히려 좋아진 듯하다. 스코어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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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마침 그날 골프 잡지사에서 프로모션으로 스윙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어 판매를 하는데, 임의로 찍은 내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보고 액자 값을 지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완벽한 스윙 자세가 나온 것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아무 욕심 안 부리고 그저 한 라운드 무사히 돌기만 하자며 가벼운 스윙을 한 것 뿐인데 사진으로 드러난 자세는 거의 완벽한 임팩트 순간을 보여준다. (참고로 사진을 올린다) 


예전에는 긴 거리를 보내기위해 지나치게 힘을 주고 스윙을 하느라 중심이 흔들렸는데, 몸을 잡아두고 외다리 스윙을 한다는 기분으로 해드를 던지니 이제야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온 것이다. 무릎이 고장나고서야 제대로 된 스윙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느낌이다.

달라진 것은 스윙 만이 아니다. 부가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빨리 걸을 수 없으니 천천히 걸으며 생각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가장 좋은 점은 의도대로 맞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핑계가 있다는 것이다. 무릎이 성치 않으니 안 맞아도 위로가 된다. 덕분에 라운드 도중 공이 안 맞는다고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늘 즐거운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듯하여 오히려 뿌듯한 마음이다.

무릎고장으로 앰브란스에 실려 갈 당시만 해도 혹시 앞으로 계속 휠체어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닌가 싶고, 아예 골프를 못칠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는데, 의외로 스윙에 대한 또 다른 일깨움을 던져 주는 듯하여 일부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역시 세상사는 양면이 있다. 나쁜 일이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좋은 일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니, 이 또한 삶의 경험이려니 하며 받아 들이는 것이 한세상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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