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골프 역사상 최고의 단두대 매치 플레이 미국최강의 프로 대 최강 의 아마추어의 맞짱 승부.1926년, 월터 하겐 VS 바비존스

오늘은 미국 최고의 프로와 그 못지 않게 명성을 날린 아마추어 골퍼와의 맞짱 승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너무나 유명한 게임이라 이것을 소재로 쓴 영화가 있다.
‘베거번스의 전설” (The Legend of Bagger Vance) 이라는 이름의 골프 영화다.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의 영화로 너무나 유명한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을 맡고, 맷 데이먼, 월 스미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로 스티븐 프레스필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에서 유망한 골프 천재에서 전쟁을 거치며 몰락한 골프선수 맷 다이먼이 당시의 실존 인물인 월터 하겐과 바비존스의 대결에 카메오로 참가하며 다시 재기하는 스토리다. 이 영화는 픽션 스토리 답게 골프와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입었으며 흑백 투톤의 수제골프화를 신고 골프장에 나타나 거드름을 피우곤 했다. 사람들은 건방지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풍운아적인 기질이 있었다. 존스는 조지아의 부유한 변호사 집안 출신으로 조지아 공대와 하버드법대를 나와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한 금수저였다. 하지만 은퇴할 때까지 아마추어쉽을 고집했던 존스는 매너 있는 신사로 평가받으면서 ‘골프의 레전드’로 평가받았다.
두 사람은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도 두 사람의 대결을 원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맞대결을 희망했다. 존경받는 골퍼라는 수식어를 간절히 원했던 하겐은
“프로만이 진정한 골퍼”라며 전설로 평가받고 있는 존스를 물리치면 자신이 최고임을 입증할 수 있을 터였다. 존스 또한 점잖은 신사였지만 자신보다 위대한 골퍼는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마추어여서 상금을 탈 수도 없었던 그는 내기도 걸렸거니와 하겐을 이기면 자신의 이름이 더 알려져 수입 면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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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2월 28일 플로리다의 화이트필드골프장. 오전, 오후 36홀 매치플레이가 성사됐다. 세기의 대결이 열린 것이었다. 하겐은 늘 그렇듯이 기름을 바른 올백머리에 7부 스니커즈를 입고 나왔다. 존스 역시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스니커즈를 입었다. 수만의 갤러리들이 모인 가운데 경기가 시작됐다. 첫 홀부터 하겐의 드라이브가 흔들리면서 볼은 왼쪽 숲으로 날랐다. 반면 존스의 볼은 페어웨이에 사뿐하게 안착됐다. 하겐은 당황하지 않았다. 바위틈에 박힌 볼을 아이언으로 사뿐하게 쳐냈고 볼은 그린 주의의 프린지에 떨어졌다. 기회와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라 하던가, 버디 욕심이 났던 존스의 세컨샷이 너무 길어 그린 뒤로 넘어가고, 당황한 존스는 냉탕, 온탕을 오가며 보기를 범했다. 반면 하겐은 침착하게 3온 1퍼트로 파를 세이브한다. 이 게임의 전조가 보이는 듯했다. 기회의 첫 홀을 어이없이 헌납한 존스는 흔들린다. 하겐은 그 후 3개 홀에서 연거푸 버디를 잡으며 3up으로 리드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게임의 주인이었다. 드라이버, 아이언 할 것 없이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 골프를 쳤다. 티 샷을 2번 아이언으로 치고 드라이버를 친 존스보다 짧게 나가게 한 후, 먼저 세컨 샷을 핀에 붙여 존스에게 압박을 주었다. 그저 원칙대로 페어웨이 중앙 그리고 그린 중앙만을 노리는 아마추어 존스는 노련한 프로 하겐의 플레이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선천적으로 하겐은 대중의 호흡을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아는 프로다.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하는 존스는 게임이 진행될 수록 클럽이 무거워진다. 근처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람에서 패배의 내음이 묻어나온다. 결국 7홀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미 하겐의 8up으로 승부는 끝나버렸다. 이튿날 신문기사는 ‘하겐은 69타를 쳤는데 존스는 담배만 69개피를 피웠다’면서 존스의 패배를 대서특필했다.
대결은 한판이 아니었다. 애초 2전을 치르기로 합의한 대로 2번째 대결은 일주일 뒤인 3월6일 역시 같은 골프장에서 열렸다. 물론 존스는 칼을 갈고 출전했다. 2번 홀에서 존스가 파를 했을 때 하겐의 볼은 홀컵에서 15미터 밖에 떨어져 있었다. 3퍼트도 가능한 긴장된 상황에서 하겐은 여유롭게 갤러리 쪽의 한 아가씨에게 퍼터를 가르키면서 윙크를 했다. 버디를 하겠다는 신호였다. 퍼트를 떠난 볼은 단 한 번에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버디였다. 그렇게 하겐은 다시 존스를 끌고 다녔다.

파3홀에서 존스는 어렵게 버디를 했다. 하겐의 볼은 8미터에 있었다. 돌연 하겐이 존스 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내가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존스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당신이 넣는다면 버디로 비기는 홀이 되겠지” 존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겐은 퍼팅을 했고 주저 없이 볼은 홀컵으로 꽂혀버렸다. 존스와 갤러리들은 멍하니 말을 잊지 못했다. 후반 18홀에서 11홀이나 남아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하겐의 12up으로 더 이상의 진행은 의미가 없었다. 아마추어 존스는 승부사 프로 하겐에게 고개를 숙였다.

골프의 구성이라 불리던 바비존스가 아마추어의 한계를 드러내며 프로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한 게임이었다.

월터 하겐의 멋진 스윙품
하겐은 상금 1만 달러를 받으면서도 풍운아적인 기질을 발휘했다. 5000달러는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기금으로 기부를 했으며, 나머지 5000달러는 존스에게 선물을 사주었다. 대회 전 하겐이 공언한 대로 와이셔츠 소매의 금장 커프스 버튼을 사준 것이었다.
존스는 “내가 커프스 버튼을 찰 때마다 패배의 쓰라린 기억이 떠오를 것”이라며 “나를 두 번 죽이는 하겐의 숨은 뜻”이라며 씁쓸해 했다. 각자의 갈 길을 간 두 사람 중 존스는 4년 뒤 골프 역사상 유일한 그랜드슬램을 이룩하는 전설이 됐고, 하겐 역시 미국인 최초로 디오픈을 4번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1926년의 대결 그 후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어떤 경기에서도 마주치지 않았다.( 참조: SDG뉴스 이인세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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