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빠르고 인터넷 속도도 무척 빠른 한국에서는 시간도 빠르게 흘러갑니다. 반대로 베트남은 모든 일이 느릿느릿 흘러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도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계절이 바뀌는 나라에서 살다가 1년 내내 더운 나라에 오니 날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1년 전이 어제 같고, 10년 전도 어제 같습니다. 날씨가 춥지 않으니 크리스마스도 크리스마스 같지 않고, 설날도 설날 같지 않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지 계절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베트남에 온 후로 해가 바뀌지 않고 아주 긴 1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국을 떠나보니 한국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좋거나 즐거울 때에는 “베트남도 좀 살만하네.” 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기분 나쁜 일을 마주칠 때면 ‘아! 한국 가고 싶어’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쌍꺼풀이 없는 제 눈은 너무도 한국적으로 생겼는지 마스크와 헬멧으로 현지인 코스프레를 이렇게 저렇게 다 해봐도 제 눈을 본 상인들은 한번에 알아차립니다. “한국 사람이지?” 하구요. 그런 날은 사려는 물건 가격이 마구 치솟습니다. 바가지 쓸까 봐 전전긍긍하고 상인들을 의심하는 제 모습에 지치기도 합니다.
식당에 갔다가 조금만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도 단골로 나오는 말이 “한국에선 안 이러는데.” “한국에선 다 해주는데” “여긴 베트남, 역시 어쩔 수 없어” 입니다. 문화가 다른 두 나라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 애국자도 아니면서 자꾸 “한국” “한국” 하고 한국을 찾습니다. 외국이기에 더 비싸겠지만 한국에서 저렴히 살 수 있고, 저렴히 먹을 수 있는 많은 물건과 많은 음식들이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립고 그리운 한국에서의 기억 중에 그리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한 겨울의 ‘눈(snow)’ 입니다. 여름에만 한국을 방문해서 그런지 10년 째 눈을 못보고 있습니다. 날씨가 춥지 않은 베트남이지만 여기도 ‘겨울’하면 ‘눈’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길거리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스티로폼으로 만든 가짜 눈과 눈사람이 있습니다.
눈을 아직 실제로 못 본 베트남 친구들은 눈을 무척이나 궁금해해서 눈에 대해 물어보기도 합니다. “음~ 아름답고 예뻐 그리고 온 세상이 깨끗해 지는 느낌이야.”라는 낭만적인 대답과 “낮에 녹았다가 다시 얼면 미끄러워서 엉덩방아 찧기도 하고 위험하고 차도 엄청 막혀. 학교에 지각할 수도 있어.” 하는 눈에 대한 환상을 깨는 현실적인 얘기도 함께 곁들어서 대답해주곤 합니다.
제가 한국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평생 자신의 나라를 그리워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 화가의 작품을 보면 저는 그냥 눈이 생각이 났습니다. 꿈 속에서 눈을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프랑스에 살면서 러시아를 그리워한 낭만적인 화가 ‘마르크 샤갈’ 입니다.
샤갈의 그림을 보면 눈이 내린 풍경이 보입니다. 눈이 오는 날은 겨울 날씨라도 포근한 날이 많은 것처럼 그림도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러시아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보다 더 춥겠지요? 그림을 감상할 때,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 의도를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상자가 그 그림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 지 입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배우거나 경험한 것이 다르기에 한 작품에서 모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득 눈을 본 적이 없거나 눈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샤갈의 작품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합니다.
샤갈은 초기 그림에 입체파의 영향이 조금 보이긴 하지만 그 시대의 너무나 입체적인 피카소나 너무나 야수 같은 마티스에 비해 가장 낭만적인 그림으로 인정받은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이 낭만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그림의 주를 이루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에게는 항상 그립고 행복했었던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국적을 가졌지만 러시아에서 태어난 샤갈은 비테프스크의 유대인 거주지에서 가난하지만 미술 공부를 하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후에 파리로 떠나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살았지만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항상 고향의 풍경과 바이올린, 첼로, 말, 소, 서커스 등의 어린 시절의 소재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의 독특한 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피카소가 “마티스와 더불어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색채 화가”라고 평했을 만큼 그의 그림 속에는 그의 뛰어난 환상적인 색채가 녹아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 표현된 것처럼 그의 삶이 항상 환상적이고 꿈만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 98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살면서 그의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전쟁과 학살이 난무하는 그 시대에 다른 화가들이 날카로운 신문 기사처럼 그 시대를 그렸다면 샤갈의 그림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무서운 시대를 감싸 안으며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림을 선택했다. 나에게 그림은 빵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그림은 창문이다. 나는 그것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간다.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스스럼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입밖에 낼 때,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기교이고 나의 종교이다.
어릴 적엔 첫 눈이 오는 날은 운동장에 나가서 눈 맞으며 친구들이랑 눈싸움하고, 집 앞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 만들었다가 밤이 되면 그 눈사람이 무서워서 지나가지도 못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나는 것을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진 못해도 야속한 시간은 어김 없이 흐르고 있나 봅니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는 것엔 누구도 예외는 없으니까요. 한 살 더 먹고 새해도 맞이하면서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이번 칼럼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