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탱크, 즉 기갑부대의 이야기는 그리 많이 다뤄진 소재가 아니다. ‘패튼’이나 ‘발지 대전투’ 같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탱크 내부나 탱크 자체의 완력에 대해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소재의 전쟁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남근 모양의 총신이 발기하듯 길게 붙어 있는 이 무기는 발아래의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전진한다는 점에서 남성성의 극치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 탱크에 ‘워대디’라고 불리는 백전노장의 콜리어 하사. 항상 성경 구절을 입에 달고 사는 기술상병 바이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조종 하나는 기찬 고르도, 그리고 괄괄한 다혈질인 탄약수 쿤 애스, 마지막으로 퓨리에 새로 배치받은 신병 노먼이 타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퓨리라 이름 붙여진 연합군 측의 셔먼 탱크다. 북아프리카와 벨기에, 독일까지 2차 세계대전의 모든 전장을 누볐던 이 탱크는, 그러나 영화에서도 그려지듯 독일군의 막강한 화력과 기술력이 집약된 티거 탱크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한다.
영화는 스케일 큰 전투신 대신,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탱크 안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병사들의 내면에 집중한 채 그들 간의 전우애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어찌 보면 탱크는 이들에게 집과 마찬가지인 공간이다. 그리고 콜리어는 대디라는 이름답게 이 ‘탱크 집’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다.
영화는 부하를 지켜내기 위한 워대디의 희생, 절도, 용기, 분노 같은 모든 측면을 다룬다. 브래드 피트가 피곤하고 좌절스러운 기색을 숨긴 백전노장의 역할을 너무나도 멋있게 해내고 있어서, 그 외에 다른 누가 생각날 수 없을 정도다.
로건 레먼이 분한 노먼은 워대디의 상징적인 아들로 섬세하고 수줍은 배우의 인상과 온전히 일치한다.
그는 처음에는 도저히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탱크 안에서 벌벌 떨며 총격을 거부한다. 그의 손에 억지로 총을 쥐여 주고 워대디가 방아쇠를 당겨 독일군을 처형하는 정신적 침입을 당하기도 한다. 그때 노먼을 일깨우기 위해 워대디가 노먼에게 던진 대사는 이 영화의 모든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지.'”
전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참 노먼과 관객의 입장은 동일한 백지상태로 출발한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노먼의 시선으로 전쟁의 맨 얼굴을 가감 없이 목격하게 하고, 관객들을 서서히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거기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는 또 다른 이미지들이 널려 있다.
‘퓨리’는 2차 세계대전을 그린 무수한 전쟁 영화의 결정판은 아니다. 그러나 스펙터클한 전투신이라는 ‘겉’에 파묻혀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한 그 모든 안쪽, 탱크란 공간의 ‘내부’를 통해 병사들의 ‘내면’과 전쟁의 ‘내상’을 사유하게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 실제 쓰였던 티거 탱크와 셔먼 탱크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것이다.
임무를 마치고 수많은 총구멍이 생겨난 퓨리 탱크와 그 주변에 널려 있는 병사들의 시체를 잡는 라스트신의 부감 샷은 그래서 잊기 힘든 잔상을 남긴다.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관객은 이 육중한 쇳덩이와 멀어지는 것에 애잔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탱크 안에 봉인된 수많은 넋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느낄 것이다. 전쟁을 통해 죽어간 모든 이들의 영혼을 부여잡고, ‘퓨리’가 소리 없이 통곡하고 있을 것임을.
감 독 : 데이비드 에이어
출 연 :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작성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