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에서 행복이란 주제로
강의한 것을 모아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행복에 관한 여러가지 생각을 적은 글인데,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꾸며져 있어 읽기가 편합니다.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되고 아무 곳이나 내키는 대로 펼치고 읽으면 됩니다. 오늘도 그렇게 펼친 책에는,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제목으로 쓴 글이 보입니다.
그 글 중에 재미있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고액권 지폐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이 다 당신을 좋아할 수는 없다”
그 말이 맞습니다. 내가 만약 고액권 지폐라면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원하겠죠. 그런데 인간은 다릅니다. 한가지 특성만 갖고 있는 지폐와는 다릅니다. 장점이 있는가 하면 그 못지않은 단점도 있습니다. 때로는 선한 성품을 보이다 가도 어떨 때는 쓰레기 같은 악취를 풍기기도 합니다. 성인이라고 다를까요? 그들도 급똥이 마려우면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을 부리고 일주일만 굶으면 구걸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이가 좋아하거나 만족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료뿐 아니라 상대 팀 선수도 좋아한다는 손흥민조차 안티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인간은 한가지 품성만을 보이며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사 자신을 좋아하던 사람도 때로는 증오의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족 형제 자매 간에도 그런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요. 그리고 한동안 교류도 없이 스스로를 외롭게 만듭니다. 그런 우매함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동의하고, 만족하기를 기대합니다. 언감생심 가당치 않은 욕심입니다. 열이 좋아하면 열이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부족하기에 만인을 만족시킬 수 없고, 만인 역시 완벽하지 않기에 늘 한가지 마음을 유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그냥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남이 좋아하던 아니던 상관없이 말입니다. 물론 정치인이나 깡패처럼 추한 본능을 감추지 않고 남에서 해를 끼치고 사회 규범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지요. 자신을 감추지 않고 마음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데, 한가지 조건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도움은 안되더라도 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오랜 교육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 상태를 적절히 표현한 것인 공자가 얘기한 ‘종심(‘從心)입니다.
종심이란 마음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나이 70을 이르러 ‘종심소욕(從心所欲) 불유구(不踰矩)’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축약어입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정도를 넘지 않는다.’는 말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사회법도를 거슬리지 않으니 거의 시선이 된 셈입니다.
이렇게 사는 분들은 남의 눈치를 안 봅니다. 오히려 타인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타인을 보며 인생을 공부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 부럽습니다. 세상을 떳떳하게 산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살아보면 압니다. 남의 시야가 부담스럽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자란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잘난 것도 별로 내세울 생각이 없고, 내 생긴 대로 살아간다는 자기 철학이 수립된 완성형의 인격입니다. 잘 보이려고 아등바등해 봐야 내 자신이 바뀌는 것이 없다는 자연의 순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 수준에 이르면 다른 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하며 노심초사할 때는 다른 이의 모습을 관찰할 수 없지만, 내 자신에 대한 믿음, 있는 그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남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자신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세상을 또 배웁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이 됩니다.
이 수준에 이르는 것은 말처럼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 자신이 그렇다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되고 싶을 뿐입니다.
이런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아볼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드러내기 부끄러운 컴플렉스를 누구나 한 둘은 갖고 있습니다. 너나 나나 다 같은 부족한 인간이니까요. 만약, 그런 단점이 아직도 눈에 밟히고 그것 때문에 맘이 불편하다면 아직 수준미달인 상태입니다. 자신이 무덤까지 감추고 싶은 단점을 세상에 드러내도, 그런 단점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이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은 상태가 되면 그제서야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공자가 말한대로, 세상을 제 맘대로 살아도 어긋남이 없는 종심從心의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수준이 되면 세상을 염려하며 나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꿈을 세우고 돌진하는 청소년이 아닌 이상, 위대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대로, 내 생긴 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될 일은 안 되고, 될 일은 된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이렇게 장년층을 상대로 쓰는 실버 칼럼이 내 얘기가 되는 나이가 되면, 세상 모든 일을 돌아가는 대로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을 과하게 포장하여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격언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리라 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더불어
너희 염려는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