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고정관념 깨기. 폴 고갱

화실에서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선생님, 우리 애가 고2인데 지금 미술을 시작하기에는 늦지 않았을까요?” 딱 잘라서 대답하기가 참 어렵고도 애매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학생의 재능에 따라 다르고 기준(대학입학만을 원하는 경우와 평생 예술작업을 원하는 경우)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아이가 미술에 흥미도 없고 재능도 없는데 공부하기 싫어 도망치듯이 미술을 시작하는 거라면 늦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미술을 하지 않으면 삶의 의욕이 없고 미쳐버릴 것 같아서 하는 거라면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후자인 경우 재능과 노력까지 뒷받침 된다면 더 가속도가 붙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대 입시 기간이 1년 6개월 정도(특례 입시의 경우) 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면 짧고 부족하다 여겨질 수도 있지만 평생을 80년으로 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걸로 보면 18, 19세는 결코 늦은 나이라고는 생각되기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 시간, 돈, 사람 등등에 치이고 치이면서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밀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돈 벌 면 이거 해야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거 해야지’ 하면서도 그 나중은 오지 않고 자꾸 미뤄지기만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입니다.” 라는 이 뻔하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문장을 과감히 실천한 화가가 있습니다. 보통 화가들보다 늦은 나이인 30살 중반에 미술을 시작했지만 세계적인 화가가 된, 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고갱’ 입니다.

생들에게 ‘고갱은 어떤 화가일까요?’ 하고 물으면 늘 나오는 대답이 ‘고흐랑 싸운 화가요, 그래서 고흐가 귀를 잘랐어요.’ 입니다. 고흐에 대해서 물어도 ‘귀 자른 화가’ 더니 고갱도 만만치 않군요. 고갱처럼 고흐 역시 그림을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갱 보다는 조금 빨리, 그리고 피카소나 쉴레보다는 한참 늦은 27세에 화가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림을 늦게 시작한 두 화가가 자꾸 싸우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견해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싸움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있을 수 없었겠지요. 고흐는 현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추구한 반면에 고갱은 현실적으로도 그리되, 생각과 상상도 함께 그리는 것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고흐 그림에는 그 때의 빛, 그 때의 사람들이 사진보다도 더 생생히 살아있고, 고갱의 그림에는 고갱이 꿈꾸던 것, 고갱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다면 이 고집 강한 두 아저씨들의 싸움을 말려주고 싶습니다. 둘 다 옳으니 제발 이제 그만 싸우고 귀도 얌전히 냅두라고. 그러다가 나중에 하나는 귀 자른 화가로 다른 하나는 그 귀를 자르게 한 화가로 영영 기억될 지도 모른다고 ….

취미로 일요일마다 화실을 다니며 미술을 시작했던 고갱은 처음엔 인상파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고갱의 스승은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부르던 ‘피사로’ 였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아 그는 ‘인상주의’ 전시에도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며 아마추어 화가로 활동합니다. 그런데 증권거래소에서 빠르게 승진하며 일하던 고갱은 1882년 주식 시장의 붕괴로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이때 고갱은 어린 자녀를 둔 가장의 결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런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가 되기로요. 초반에는 가족과 함께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결국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도 없고 자주 만날 수도 없게 되어 고독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돈도 용기도 모두 바닥이 난 상태입니다. 다락방에 가서 목이라도 매달아야 하는 건 아닌지 매일 생각합니다. 그나마 나를 붙잡아주는 건 바로 그림입니다. -1885년 고갱이 피사로에게 쓴 편지 중

그 후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복잡한 도시에 질린 그는 브르타뉴 퐁타방으로 떠납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온화한 기후 덕분에 야외에서 작업하기가 쉽고, 특이한 전통 의상을 입은 그 지역 사람들이 모델을 잘 해줘서 이미 많은 화가와 미대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물가가 파리보다 낮아서 생활비가 적게 든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나는 브르타뉴가 좋다. 이곳에서는 원시와 야생을 느낄 수 있다. 나막신이 화강암 바닥에 부딪히며 달그락거릴 때면 둔탁하고 무딘, 그러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그림에서 찾아 헤매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이 곳과 다른 여러 마을들을 거친 후 고갱은 마침내 도시와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하고 야성미 넘치는 땅, 남태평양의 타히티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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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요함을 찾아, 그리고 문명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나는 단순한 예술을 하고 싶다. 이를 위해 나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원주민들을 만나고 원주민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원시 예술을 통해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나의 생각을 오로지 순수한 것과 진실된 것으로만 채워야 한다.

저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현실(돈)과 예술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예술을 포기할 수도 없어서 그 적정점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현실에 좌절하고 때로는 예술이 주는 희열에 몸을 맡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늦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아가고 현실보다는 예술을 선택한 고갱이 부럽습니다. 자신의 선택에서 주는 어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가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이런 마음이 더욱 더 듭니다. 일이 뜻대로 안 풀리거나,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가 많을 때 가끔 고갱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오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모든 분들에게도 바빴던 2014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낯선 외국에서 생활하시느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거나 반대로 그 속에 즐거움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 갤러리에서 2014년을 마무리하며 갤러리 앞마당에 한 해가 가기 전에 딱 하루만 야외 라이브 카페를 준비했습니다. 베트남 가수의 노래도 듣고 음료수도 마시고 행운권 추첨도 하니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갤러리 퐁당으로 오세요. 공연 오프닝으로 갤러리 퐁당의 주요 작품들과 새 작품들로 이뤄진 특별전도 같이 열립니다. 누구든지 오셔서 즐겁게 즐기다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Change of Season 2014 – Live café Pongdang
오프닝 전시 : 2014년 12월 29일(월) 4:30 ~ 6:30pm
라이브 카페 : 2014년 12월 29일(월) 7:00 ~ 9: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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