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인터스텔라

스탠리 큐브릭이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발표한 해가 1968년이었다. SF영화 역사상 한 편의 시금석이 된 이 걸작은, 그러나 당시 관객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줄거리와 어떤 해석도 맞거나 틀릴 수밖에 없는 모호함으로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인터스텔라’의 크리스토퍼 놀란은 근 50년 전 스탠리 큐브릭이 해냈던 어떤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최신 물리학 지식을 지독할 정도로 탐구하고, 가급적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현장 촬영과 아날로그 방식 촬영을 고집하면서도,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전인미답의 우주를 장대한 시각적 스펙터클로 표현했다. 여기에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보다 더 강력하고 더 독하게 꼬인 줄거리마저 집어넣었다.

‘인터스텔라’의 상영 시간은 3시간에 달한다. 이 영화는 어쩌면 놀란이 말한 대로 전작 ‘인셉션’의 거울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인셉션’이 인간 내부로 파고든 무의식과 더 깊은 무의식 간의 상대성에 매달렸다면, ‘인터스텔라’는 이를 우주 외부로 확장해 별과 별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시간과 기억의 상대성에 천착한다. 미래 지구는 지독한 황사와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전직 우주비행사 출신 쿠퍼는 어느 날 미지의 신호를 받고, 이제는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는 NASA로 향한다. 거기서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 종말을 해소하기 위해 인류가 생존 가능한 또 다른 행성 후보 세 군데를 탐색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후 영화는 별과 별 사이의 여행, 성간 여행을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구현한다. 별 사이의 중력과 서로 다른 물질성으로 인해 별들은 각자 독특한 물리적 환경과 시간성을 갖게 되고,그곳에 도착한 우주인들에게는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놀란은 이 장대한 우주 대서사극에, 사랑의 문제를 집어넣는다.

아무리 멀고 오래 걸려도,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결국 돌아가려는 욕망을 지녔다는 것. 모든 대의와 정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개인적 추동력이며 지극히 감정적인 결을 지녔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이를 위해 지구에서 우주선까지의 메시지 전송이나, 우주와 지구 간의 교차편집, 그리고 블랙홀 안에서의 영화적 상상력 등 그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인터스텔라’는 무수한 물리학적 주석을 동반한 하드 SF의 이성적 외관에 따스한 내러티브의 심장을 장착한다. 그러나 또한 뒤집어 보면 그렇기에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이없이 단순하고, 플롯의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그 단점을 덮고 있는 듯도 보인다.

분명한 것은 놀란이 인류에게 아직도 거대한 미지의 영역인 우주탐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 세 번이나 등장하는 시, 웨일스의 시인 딜런 토머스(Dylan Thomas, 1914~1953년)의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는 이런 놀란의 생각을 집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주저 말고 이 놀라운 우주여행에 탑승하시라.

쿠퍼의 딸 머피는 머피의 법칙으로 놀림을 받는데, 쿠퍼는 딸에게 ‘머피의 법칙이란 재수 없는 일의 연속적 발생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라 설명해 준다. 어쩌면 당신이 더 큰 스크린 화면에서 ‘인터스텔라’를 보는 것은 당신 인생에서 반드시 일어날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멋진 필름 경험을 원한다면 더욱더.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매튜 맥커너히, 앤 헤서웨이, 마이클 케인
작성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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