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간에서 각종 사기와 불법 도박 등을 일삼는 범죄 조직이 수십만명의 동남아시아인들을 부당하게 끌어들여 범행에 동원하고 있다는 유엔의 보고서가 나왔다고 연합뉴스가 31일 보도했다.
30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국제 온라인 범죄에 동남아시아인 수십만명이 강제로 연루돼 있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범죄 행위를 강요당한 이들은 범죄자가 아니며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는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인터넷·모바일 수단을 통해 피싱 등 사이버 사기나 암호화폐 사기, 불법 도박 개장 등으로 거액의 범죄 수익을 만들어내는 조직은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범죄에 동원할 인력을 끌어모은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현지의 ‘신뢰할 만한’ 소식통을 인용해 동원 규모를 설명했다.
미얀마 전역에서 최소 12만명, 캄보디아에서는 10만명이 범죄 조직의 강요로 범행에 동원됐으며 라오스와 필리핀, 태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 사례가 수만명씩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범죄 조직은 고임금 등을 미끼로 일종의 취업 사기를 벌여 이들을 범죄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미얀마에서 인도네시아인 20여명이 외교당국의 도움으로 현지에서 빠져나온 일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이들은 태국 내 고임금 일자리를 알선한다는 직업소개소의 말을 믿고 조직원들을 따라갔다가 미얀마의 한 숙소에 감금된 채 하루 최대 19시간씩 사이버 사기 업무를 돕는 일을 했으며 인도네시아 대사관과 미얀마 정부의 협력 속에 구출됐다.
이들은 숙소에 갇혀 지낼 당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를 당하는 등 가혹 행위에 시달리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온라인 범죄 조직에 대해 “1∼2년 전 코로나19로 인해 카지노가 폐쇄되는 등 사업 기회를 잃게 된 범죄 조직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면서도 수익성이 점점 커지는 온라인 공간으로 불법적인 사업을 늘려나갔다”고 설명했다.
또 “범죄 조직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국경을 폐쇄한 국가의 실직한 이주민 등을 주된 표적으로 삼아 범죄 조직에 동원했다”고 부연했다.
동원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 내지 대학원을 나왔고, 컴퓨터 사용 능력이 있으며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OHCHR은 이들이 범죄에 동원된 과정을 “인신매매”라고 규정했다. 유엔은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경우뿐 아니라 취업 등을 구실로 데려와 취약한 지위를 악용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까지 인신매매로 규정한다.
투르크 최고대표는 “인신매매를 비롯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인 이들은 이주민 범죄자로 오인돼 재판에 넘겨지거나 처벌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각국은 범죄를 척결하기 위한 강력한 사법적 대응만큼이나 범죄에 강제로 동원된 이들에 대한 인권 보호를 강화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202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