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느닷없이 과다한 숙제가 날아오는 통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휴일을 보냈지만 월요일은 늦지 말아야지 하며 서둘러 가방을 챙겨 나섰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출 퇴근용으로 이용하는 오토바이를 지난 주말 사무실에 두고 승용차를 타고 온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승용차를 부를까 하다, 이미 문을 나섰는데 또 승용차를 부르고 기다리는 것이 시간낭비인 것 같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10여분 거리의 사무실 근방에서 내렸다.
사무실이 큰 길에서 10여미터 골목으로 들어가 있는 관계로 조금 귀찮지만 큰 길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던 중이다.
베트남에는 어디나 마찬가지로 커피를 파는 길거리 카페가 있다. 내가 그 옆을 지나는데 마침 우리회사 승용차 운전기사가 커피를 사려는지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를 발견하고 ‘이 친구 한가하네, 부를 걸 그랬나’ 하며 어깨를 툭 치고 미소를 보이고 지나가는데 잠시 후 그가 나를 부른다. “미스터 한, 커피 한 잔 하세요” 하는 것이다. 손을 저어 사양을 하고 땡큐를 보낸 후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뭔가 생소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거의 30년을 사장 노릇을 하며 지냈지만 운전기사나 하다못해 사무실 일반 직원들도 출근시간에 임박해서 출근하는 사장에게 한가하게 커피 권유는 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지 않은가?
한국의 고루한 문화를 전수받은 유전자의 탓인지 몰라도 그런 친절한 운전기사의 권유는 베트남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과연 베트남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짚어보게 만들었다.
베트남은 한국과 같이 유교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그래서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중심으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운명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나라, 대화를 안 해도 대충 이해가 되는 국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가끔 오늘 아침처럼 한국인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이들의 민낯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한가한 오후 시간에 그 동안 베트남에 살면서 마주하던 이질적인 상황들을 떠올려봤다. 오늘은 그 얘기를 쓰려고 한다.
아마도 이 얘기는 다음 호에도 계속 될지 모른다.
내가 생각한 그들의 민낯이 예상보다 많은 탓이다.
운전기사가 출근 시간에 임박하여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출근하는 사장에게 커피를 권유하는 데에는 아무런 사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상급의 호의를 보여준 것이다. 결코 그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우리와 다른 그런 관습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서 다시 떠올린 것뿐이다.
1945년 9월 2일, 당시 북부 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 옹은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군이 물러가자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며 베트남이 독립 국가임을 선언한다. 그 첫 문구가 이렇게 되어있다.
with certain inalienable Right, among ther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모든 인민은 동등하게 태어났다.
그들은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빼앗길 수 없는 권리가 있다.
그것은 삶,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다.
이렇게 베트남은 독립을 하면서 맨 처음 국민에게 그대들은 모두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채택하여 그것을 실천한다. 사실 이런 비슷한 문구는 미국이나 다른 신생 국가들의 독립선언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만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 는 1789년에 프랑스 혁명 때 프랑스의 제헌국민회의가 공포한 선언문을 인용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베트남의 독립 선언문에도 그런 문구가 있다고 해서 별다를 것도 없고 또 그것 때문에 평등의 사회가 된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프랑스 혁명에서 내세운 구호 < 자유, 평등, 박애> 중에 < 평등>이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신 앞에 평등에 앞서 먼저 < 법 앞에 평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더욱 절실함이 있기에 생겨난 것이다.
또한 그때 주창한 < 자유>라는 것 역시 신체의 자유가 아니라 < 사유재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중에 평등에 관점을 두고 창조된 것이 사회주의고 자유에 관점을 맞춰 태어난 것이 자본주의다. 즉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내세워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창조한 것이다.그러니 베트남의 평등 사상은 단지 독립선언문 문구의 영향은 아니고 그 당시 새로운 사회,정치 형태가 생겨나 기존의 체계와 충돌하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는 생존 전략으로 채택한 사회주의 시스템을 독립 후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운영해 온 탓에 베트남인들의 뇌리에 사회주의 DNA가 심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한 번은 꽤 규모가 큰 베트남 회사의 사장을 만나서 긴한 얘기를 해보려고 저녁을 초대했는데 사장이 20대의 어린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사장 대 사장으로 둘 만이 결정할 수 있는 주요 상담 건을 두고 진지한 상담을 하려던 차인데, 비서도 아닌 일반 직원을 데리고 나와, 마침 이 근방에 살기에 같이 태우고 왔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생각도 난다.
그런데 이런 낯선 모습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장끼리의 주요한 상담 도중에 자꾸 여직원이 말 참견을 한다.
거참, 한국에서는 상상을 못하던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 여직원은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어서 확인해보니 진짜 사장과 아무런 개인적 관계가 없는 평범한 여직원 일뿐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진짜 베트남은 남녀평등 그리고 사회적 계급평등이 이루어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가끔 베트남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참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역사나 기록에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없는 듯 보인다. 너무나 뻔한 베트남의 근대사조차 잘 모르는 베트남 젊은이에게 “왜 이렇게 되었는가? 어떻게 자네는 자네의 부모나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자네와 이 나라가 생겨났는지 관심이 없을 수 있냐” 고 힐난조로 물으니 나는 이 시대를 살고 그들은 지난 과거를 살았을 뿐인데, 그 과거의 스토리를 안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역사보다 더욱 실생활에 유용한 영어를 배워 너와 대화를 하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서구에서 발달된 지극히 개인주의 사상이 베트남의 젊은이들에게도 깊숙이 스며든 것을 발견한다.
그의 대답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익한 대화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맘대로 엿 자르는 가위를 들고 스스로 재단을 하고 결론을 내린다.
베트남에는 세가지 시스템이 한꺼번에 돌아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시스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 그리고 개인에게는 넘치는 개인주의가 근간을 이루며 이 나라를 이끌고 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베트남의 기본적인 사회 환경의 민낯이 아닌가 싶다.
월요일 오후, 한가한 사념을 즐겨봤다.
작성자 : 한 영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