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으로 대표되는 자연 다큐멘터리는 의외로 많은 팬을 갖고 있습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대자연의 신비와 기이한 동물들의 행태를 알게 되는 즐거움과 함께, 동물 다큐멘터리 속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동물 다큐멘터리에 끌립니다. 서열 1위 원숭이의 눈을 피해 바나나를 낚아챌 찬스를 노리고 있는 서열 4위 원숭이의 모습, 젊은 숫사자의 도전을 받고 치열한 싸움 끝에 무리에서 쓸쓸히 떠나는 늙은 사자의 뒷모습, 순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누군가가 자기 영역에 들어오기만 하면 커다란 입을 벌려 깨물고 흔들며 강력히 응징하는 하마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리 인간도 동물이다’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다윈은 종의 기원(1859년)이란 책을 통해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에 대한 이론을 펼쳤고, 결국 우리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실을 이야기해서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적 인간관과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죠. 인간은 생존 경쟁 속에서 자연 선택에 의해 하나의 종으로 자리 잡은 원숭이의 변종이라는 것을 당시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중세가 끝나갈 무렵, 갈릴레이가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라는 책으로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을때 당시 주류층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분 나빠했고, 종교 재판을 통해 갈릴레오에게 지동설을 부정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과학의 역사를 보면, 큰 발견은 기존의 고정관념과 큰 갈등을 겪고, 많은 논란을 거치며 ‘사실’로 자리 잡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기적 유전자’란 책은 1976년 출판된 이후 아직도 그 내용에 대해 끊이지 않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진화생물학의 대표적인 책입니다. 과학책으로서는 1980년에 출판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함께 가장 유명한 책으로 꼽히는 현대의 고전으로 인정되는 책입니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살아가고 존재한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을 증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심지어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이 타인이나 다른 생물을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행동 또한 자신의 종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라 말함으로써, 휴머니즘적 사고를 가진 많은 독자를 충격적으로 만들고 ‘기분 나쁘게’ 만든 책입니다. 마치 다윈의 ‘종의 기원’과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라는 책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했듯이 말입니다.
이 책이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는 생존의 기본단위를 한 명, 두 명, 한 마리, 두 마리 셀 수 있는 각각의 ‘개체’가 아니라, 그 개체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발상의 전환입니다. 우리 신체는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생존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행동은 유전자가 생존하여 복제를 통해 후세에 전달되기 위한 이기적인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기분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물론 많은 부모님이 자식을 키우며 행복을 느끼고, 때로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에 대해 희생을 하면서도,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숭고한 행복을 느끼는데, 그게 다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에 따른 행동이라고 해석된다면 기분이 좀 나쁩니다. 가끔 부모의 입장에서 ‘밥하는 기계’, ‘ATM 머신’ 이 된 기분 때문에 기분 나쁜 것 하곤 또 다른 의미의 기분 나쁨입니다. 나의 숭고한 희생이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명령에 따른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매우 찝찝합니다. 그게 이 책이 출판 후 40년이 지난 세월 동안 끊이지 않는 논쟁을 끌고 다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런 논란 속에서도 이 책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충격적인 주장을 증명하는 사례들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理性)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많은 무의식적 행동들이 실은 이성(異性)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란 점,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들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과 희생, 무의식의 존재, 강하고 매력적인 이성에게 나도 모르게 끌리는 것 등등 어떨 때는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을 ‘ 유전자를 복제하고 복제한 유전자의 생존을 목표로 하는 유전자의 명령을 받는 순간’으로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맞아떨어집니다. 이 책은 인간은 물론 사자, 개미, 꿀벌, 뻐꾸기까지 다양한 생물들의 사례를 통해 이 책의 주장을 증명합니다. 그 증명들이 설득력이 있는지, 억지스러운지 판단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의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계속 증명하는 구조를 가진 책입니다. 황당한 듯이 들리는 주장에 대한 저자의 확신에 찬 발언과 그 증명의 과정은 1장에서 12장에 이르는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유기적으로 잘 짜여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저자의 글솜씨와 논리 전개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과 같은 진화생물학과 관련된 책을 보면 우리 인간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되며 자신의 사고 구조 및 생리학적 판단의 무의식적이고 생물학적인 배경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잠시 틈을 내어, 이 책을 통해 나의 진정한 주인인 ‘유전자’를 만나보는 시간을 갖고, 그의 명령을 계속 따를지, 그의 명령에서 벗어날지를 결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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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 금강공업 영업팀장 / (전) 남양유업 대표사무소장 / 베트남 거주 17년차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