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질척거리며 내린다.
소리 없는 가을비가 이제 막 붉어지는 낙엽에 촉촉한 방울꽃을 떨구며 맑은 빛을 섞는다.
낙엽에 물든 거리의 빗물에 홀로 걷는 여인의 갈색 우산이 색을 보탠다.
그 한가한 길을 노오란 택시가 아무렇지 않게 물길을 만들며 지나친다.
푸른 빛이 가시지 않은 나뭇잎 사이를 작은 새들이 분주하게 뭔가를 찾아 다닌다.
아직 몸을 감추지 못한 벌레를 찾는지, 한여름 내내 방치해 둔 채, 존재를 잃어버린 자신의 둥지를 찾아 헤매는지.
그렇게 가을이 깊어간다.
왜 가을비는 소리가 없을까?
밤새 비가 계속 내렸는데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아침이 돼서야 비를 봤다.
시골 과수원의 찬 공기가 벌써 겨울을 맞은 듯 이불을 끌어당기게 만든 탓인가 보다.
그래, 가을비 한번에 주름 한 줄이라더니, 이제 겨울이 오는 거야,
아주 진짜, 추운 겨울이.
아침 조간신문, 온통 나라가 망조가 든 듯 요란하다.
매일 새로운 모습의 사고가 일어나며 시민들의 마음에 불안을 조성하고,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은 서로 상대를 부인하며 울부짖는 아귀다툼이 여전하다.
어떤 국회의원 나리가 아주 귀한 말씀을 했다.
국감에 나온 78세의 한국관광공사 감사에게 나이 든 노인네가 왜 쉬지 않고 일하려 하느냐고 엄하게 꾸짖었다. 나라에서 정년을 정한 이유가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정한 것이니 이미 정년을 넘어선지 오래되었으니 그만 쉬는 것이 도리라고 어르신에게 조언을 하신 모양이다.
백만 번 찬성이다. 특히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정년을 지켜야 한다.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고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그 대상 순위 1번이다.
그런데 이 발언을 한 설모 의원, 이 친구는 지난 2002년인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20만불을 최규선씨에게서 받았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다가 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징역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 국민의 선택을 받기에 부적절한 인간이라며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전력이 있다. 당시에는 아직 나이도 정년에 들지 않은 50대 초반 일터인데 어쩌다가 법원으로부터 정식으로 헛소리로 한 인간이라는 공식적인 판결을 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 친구는 정년도 되기 전에 판단력이 흐려지는 증상을 보인 환자 아닌가? 그야말로 이 친구,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바라보는 아전인수적 행보를 보인 것이다.
물론 연세가 들면 병환도 생기고 신체적으로 약해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항이지만 그렇다고 정신적 판단력마저 흐려진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예로, 설 의원의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씨는 80이 다 돼서 (김대중씨의 확실한 진짜 나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79세에 반공포로 석방을 감행하여 한반도를 떠나려는 미군의 발목을 잡아 두었다. 또한 한국 전쟁의 전세를 바꾼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 장군의 나이가 당시 72세였다.
이렇게 한국의 역사를 바꾼 어마어마한 일들을 결정한 사람들은 모두 지혜와 경륜을 갖춘 어른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감히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망발을 쏟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긴 그런 것을 알고 기억하는 친구가 그런 발언을 하겠는가?
이 친구가 속한 정당, 하도 자주 이름을 바꿔서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뭔 연합이라던가 하는 정당, 10년 전에는 어느 아나운서 출신 의원이 노인들은 투표 안 해도 된다 하는 발언으로 불효정당의 딱지가 붙더니만 이제는 한술 더 떠서 패륜 정당이라는 오명을 자처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점점 유권자의 나이가 많아지는데, 그 정당 참, 고민이 많겠다.
요즘 서유석이라는 늙다리 가수가 부른 “너 늙어봤냐”라는 노래가 인기란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하는가? 마누라도 말리고 자식들이 말려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도 배우고 인터넷도 할거야, 서양 말도 배우고 중국 말도 배우고 아랍 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 볼 거야.
넌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비록 세월은 얼굴을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이 살아있는 한 그 영혼은 청춘이다. 냉소와 비관으로 채워진 영혼은 20살이라도 늙은이고, 기개와 긍정의 정신이 살아있는 한 100세가 되어도 청춘이다.
가을비가 여전히 소리 없이 마른 땅을 적신다.
날씨를 빼고 소리를 더하면 영락없는 여름 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다가올 겨울을 가을비가 마구 불러내는 듯하다.그래 젊은 너는 겨울을 불러라.
늙은 나는 여전히 봄을 노래 할 테다.
작성자 : 한 영 민
이진성님 ..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에디터 컬럼을 작성하시는 한영민 님께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대중씨가 아니라 김대중대통령입니다.
김대중씨로 호칭하려면, 이승만대통령이 아니라, 이승만씨라고 호칭하셨어야지요.
쓰신글을 보아하니, 연세도 많이 드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찌 그리 한쪽만에 치우친 편협한 사고방식을 고수하시는지요? 라면 받침대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으시려면, 글쓰신분의 편협하신 자세부터 고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동의하진 않으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