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다낭 같은 국내 출장을 마치고 호찌민으로 돌아올때 공항 근처에서 가끔 창 밖을 내다볼때가 있습니다. 매일 올려다 보던 건물들이 성냥갑처럼, 마치 건축학과 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미니어쳐 모형처럼 보입니다. 생각보다 도로들은 반듯하고, 길과 길들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 저 강이 저렇게 컸구나’, ‘저 건물이 저기 있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어린아이처럼 창문에 이마를 붙이고 최대한 많은 광경을 눈속에 담습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내리는 짧은 순간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 부담스러운 맘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는데, 지루할 틈이 없이 책장이 넘어갔습니다. 이 책의 내용들이 학계의 입장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들이라고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2011년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유발 하라리’라는 저자는 그 내용들을 모으고 엮어서, 정말 새롭고 재밌는 책을 썼습니다. 학계에서는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일반 대중들은 새롭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그런 비판을 한 ‘학계’의 분들이 오히려 반성을 하셔야 할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사피엔스라는 책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유발하라리는 이후 ‘호모데우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책(‘인류 3부작’이라고 불립니다)을 연달아 히트 시키면서 80년대를 전후로 하여 ‘미래충격’, ‘제 3의 물결’, ‘부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 한때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로 여겨졌던 미래학자 ‘엘빈토플러’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유발 하라리가 구글 직원들 앞에서 강연하고,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대담을 나누고, IMF의 행사에서 IMF (전)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와 토론을 하는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라는 책의 성공으로 유발 하라리라는 무명의 역사학자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올라섰고, 과거라는 수정구슬을 갖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의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이 책은 ‘빅 히스토리’라는 장르에 속하는 책입니다. 보통의 역사책이 ‘삼국 시대’ ‘조선 왕조 500년’, 세계 4대문명 등 보통 5000년 ~100년 정도의 시간을 다루는데 반해 빅히스토리는 짧게는 7만년 (인류의 탄생)에서 길게는 135억년(우주의 탄생) 정도는 다뤄줘야 ‘빅’ 이라는 형용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책은 다행히 억단위는 아니고, 약 250만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시기 ) 전부터를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잡고 있으니, 빅히스토리 장르 중에서는 가벼운 편에 속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사피엔스’라는 높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인류의 풍경 몇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류가 지구를 지배한다는 말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동물원의 열쇄를 인간이 쥐고 있을때까지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작가는 ‘거대한 무리를 지을수 있는 능력’이 다양한 동물들 중에서 인간이 성공할 수 있던 1순위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는 ‘언어’를 통해 우리는 무리를 지을 수 있었고, 신화와 종교를 통해 무리를 묶어 국가를 만들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가장 비슷한 종인 침팬지가 이룰 수 있는 무리 구성원의 한계치가 150명인데 반해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인 중국과 인도의 인구가 각각 14억명에 이른다고 하니, 인류의 무리 짓기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남는 음식이 생겨남으로써 정치인, 군인, 예술가, 종교인 등 전문직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인구가 안정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고, 문화가 발달 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농업의 발달이 인류의 고통의 시작이라는 ‘신선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수렵 채집 시절과 비교해 행동 반경이 적어지고, 노동량이 증가했고,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줄어들어 영양 불균형을 겪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행복 지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은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유발 하라리의 이 주장에는 아직도 신선하다고 느끼면서도, 쉽게 동의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렵, 채집 시절에는 낭만과 함께 배고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고통도 함께 있었을 테니까요.
문자는 지식의 축적시켜 인류의 기술 진보와 과학 혁명을 낳는 기반이 되었고, 정말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돈’의 발명은 교역의 확대와 ‘부의 확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언어, 남는 음식, 문자, 돈을 통해 계속하여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에서는 유전공학, 생명공학 등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의 선택에 따라 유토피아가 될수도 반대로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환기시켜 줍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7만년이라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600페이지짜리 작은 책에 담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려다보면 올려다볼때와 옆에서 볼때와는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다 보면, 익숙했던 것이 낯설게 보이고, 떨어져 있던 것들간의 연결점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언어, 문자, 돈, 농사와 가축 사육이 어떻게 현재 우리의 삶을 결정 지었는지 살펴보고, 또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좋건 싫건간에 유발 하라리는 이미 세계의 리더들과 수많은 대중에게 영감을 주는 ‘미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피엔스’라는 책은 읽을 가치가 있는데, 게다가 재밌기까지 합니다. 다가오는 연휴에 사피엔스를 한번 읽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장연
(전)남양유업 대표 사무소장
(현) 금강공업 영업팀장
베트남 거주 17년차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