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 원망만 안 사도 덕이다

어느 날 후배와 카톡을 나누다가 후배가 지난번 빌린 돈을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엥? 그런 돈이 있었어? 제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일인데 돌려주겠다고 하니 정말 고맙더라고요. 하긴 빌린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갚아야 할 돈을 돌려주었을 뿐이지만, 돌려받은 사람은 잊고 있었던 돈이라 마치 공돈이 생긴 듯 반갑고, 잊지 않고 돌려준 후배가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가면 좋겠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 일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정반대의 사례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후배와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사업을 운영하여 제법 많은 재력을 쌓던 친구인데, 베트남에서 만난 선배에게 큰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돈을 돌려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입장과, 돈을 빌려간 사람의 돌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분들께서 이런 경험을 하셨을 테니 구체적 표현을 생략해도 충분히 공감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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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돈을 빌려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듭니다.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의도하지 않게 그 사람을 내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돈도 못 받고, 사람도 잃고, 호의는 사라지고 적의만 남습니다.

하긴, 없는데 어떻게 주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현실적 상황이 아니라, 입장이 달라진 후에 변하는 태도입니다. 빌려달라고 할 때도 과연 그렇게 당당했었나요? 약속한 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구차스러운 변명조차 생략하고 시쳇말로 배 째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금전을 빌려주며 호의를 보여준 사람은 본의 아니게 적의를 감수해야 할 지긋지긋한 빚쟁이가 됩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선의는 사라졌습니다. 선의로 맺어져 돈 거래까지 이어졌는데, 그 돈 거래로 관계가 절단되었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현상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호의를 보여준 사람에게 감사할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호의를 받은 사람을 만나고 생각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져 피하게 되고, 그런 감정이 지속되면 사람 자체가 미워지기 시작한다는 게 인간의 본성이란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 연구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스토리 하나를 들려줍니다.

A씨는 유럽의 대기업 간부로 부인과 사이에 결혼 적령기의 딸 하나를 둔 중년의 가장입니다.  어느 겨울 휴가기간 중에 딸과 딸의 친구인자 신랑 후보가 될 젊은 청년 두 명과 함께 스위스로 가족 스키 여행을 떠납니다. 신랑 후보 두 명, 케리와 준은 모두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집안도 훌륭한 나무랄 데 없는 젊은이들입니다.

하루는 케리와 스키를 타다가 눈사태를 만나 A씨가 낭떠러지 벼랑 끝에 작은 나뭇가지를 잡고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곧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A의 팔에 힘이 빠지면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위험천만한 상황에 케리가 번개처럼 나타나 A씨를 잡아 구해 줍니다. 아찔한 순간 케리의 재빠른 조치로 간신히 목숨을 살린 것입니다. 당연히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케리를 사윗감으로 삼을 마음이 커집니다. 그러던 며칠 후, 이번에는 호수에서 요트를 타다가 준이 호수에 빠지면서 요트 난간에 부딪쳐 정신을 잃습니다. 잘못하다가 요트 수쿠르에 빨려 들어갈 위험한 상황입니다.  A씨는 재빠르게 요트 모터를 끄고 정신을 잃고 가라앉는 준을 구하기 위해 차디찬 호숫물에 들어가 존을 무사히 구해냅니다.

한번은 케리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살렸고, 한번은 자신이 준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과연 누가 A씨에 의해 사위로 지목 되었을까요?

한동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케리에게 고마워하던 A씨가 준의 일이 생겨난 후 말이 좀 바뀝니다. 그때 케리가 없어도 자신은 충분히 버티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는데 마침 케리가 와서 좀 쉽게 빠져 나온 것이라며 케리의 도움을 평가절하합니다. 그리고 준에 대하여는, 자신이 없었다면 준은 이미 차디찬 호수에 가라앉아 큰일을 치렀을 것이라며 자신의 활약을 자화자찬합니다.

A씨의 인격적 양식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모든 인간의 본성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빚을 졌다고 생각되는 상대는 피하고 싶고, 자신의 호의가 드러나는 상대는 자꾸 만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란 얘기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호의를 입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고마움과 함께, 큰 빚을 졌다는 부담감이 일어나며 자존심에는 내밀한 상처가 생깁니다. 얼마 지나게 되면, 그렇게 자존심에 상처를 만드는 그 일에 대한 은근한 평가절하가 시작되고 또 동시에 그 인물에 대한 폄하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정당화해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니까요.

이런 상황은 타인과의 돈 거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전적 빚을 지고 나면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기가 죽고 자존심은 상해가는데, 기억하기도 싫은 일을 상기시키고,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금전의 반환까지 요구 받는 상황이 되면 상대에 대한 원망이 일어납니다. 결국 초기의 고마움은 사라지고 그 인물은 자신에게 부담감을 던져주는 몹쓸 인간이 됩니다. 다른 곳에 가서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마음이 드러나며 호의 제공자의 모든 것을 깎아 내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남의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는 당연한 순리조차 잊어버립니다.  

결론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일은 상대를 멀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냥 주고 잊을 수 있는 돈이라면 몰라도 반드시 받아야 할 돈이라면 절대로 빌려줘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섭섭하단 소리를 듣는 것이 영원히 그 사람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돈을 빌려주면 사의는커녕 원망만 안 들어도 덕을 쌓은 증표라고 합니다. 타인의 어려움을 도와주려는 호의가 여차하면 돈 떼이고, 속 앓고, 욕 듣고, 나빠진 평판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라는데, 세상에 이런 멍청한 일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다가 자신이 돈을 빌릴 입장이 되면 어찌되나요? 세상 제대로 산다는 게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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