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속한 작은 모임 하나가 있습니다. ‘공동체’라 부릅니다. 공동체는 공통의 가치,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일컫는 용어이니 사회문제에 대하여도 같은 관심사를 갖기 마련입니다.
이 공동체의 일 가운데 사람과 지역을 돕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이에 대해 ‘섬김(service)’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어디에 광고할 만한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호찌민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그마한 한국인 커뮤니티로서 베트남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정도입니다.
공동체의 섬김은 지금까지 세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나는 심장병 등으로 고통받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단체를 통한 긴급 지원입니다. 기껏 두 세 차례에 불과했지만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나 튀르키예 지진으로 인한 어려움을 돌아본 것은 베트남에 머물던 공동체의 시각을 외부로 돌린 사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성을 갖는 후원으로 행복의 집이라는 미인가 아동시설을 지원합니다. 전에 이 일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으니 기억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모아져 십 년을 헤아려가니 작지만 열심을 다해온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교민사회에서는 흔한 뉴스 거리입니다. 호찌민시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닿는 어디서나 서로를 돕는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럼 왜 자랑(?)도 못되는 내용으로 얘기를 꺼냈을까요? 그것은 최근에 우리 공동체에 생긴 사건과 관련 있습니다. 그 사건은 섬김의 방식을 어떻게 공동체 내에서 원리화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우리 교민사회에서 이러한 일에 관심을 두고 일하고 있는 분과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저희는 이 사건을 섬김의 도전이라고 부릅니다.
도전은 외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인가 아동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돕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어떤 사업가 분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분이 저희 모임에 후원금을 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후원금이 전달되었을 때, 불쑥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다른 기업에서 물품을 후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앗, 뜨거라 싶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후원을 대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말 그대로 작은 모임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이 일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 모임을 향해 두드리고 있는 외부의 두드림, 원한 적이 없지만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이 사건에 우리를 깨우고자 하는 더 크신 이의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요구되는 것이 공동체 내부로부터 반응입니다. 어미의 소리를 듣고 알을 깨고 버둥거리며 나오기 위해 필요한 반응입니다. 이 두드림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려고 애썼습니다.
다른 예로 들어 보려고 합니다. 어느 기사에서 L회사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 회사는 인기있는 라텍스 소재 매트리스의 한국 1위 기업입니다. 최근의 뉴스에서 이 기업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규모의 가전, IT제품 전시회 CES에 자사에서 개발한 첨단 매트리스를 소개하였습니다. 한때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는데 이 회사는 실제로 매트리스를 침대 이상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전시회에 소개된 매트리스는 심전도, 호흡, 체온, 맥박, 산소포화도 등을 비롯해 수면 상태, 낙상 모니터링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합니다. 특별히 낙상이 단순 자리이동인지 실제 위급한 상태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침대가 과학이기는 한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2011년 회사가 세워진 이래 매년 영업이익의 6%이상을 사회로 환원했다는데 이는 창업자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사업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회사의 사회 환원을 이끌어 낸 동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첨단 매트리스의 개발도 이러한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COVID-19 위기가 터졌을 때 L사는 확진자들이 병상에 오랜 시간 누워있는 것을 보며 회복에 도움을 줄 방안을 찾았습니다. 외부의 위기를 두드림으로 보고 반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투자하여 뛰어듭니다. 그들도 두드림의 때를 만났고 여기에 반응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외부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공동체가 가진 정체 때문입니다. L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첫째로 살필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 우리의 가진 정체와 부합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정체는 관심을 통해 행동을 유발합니다. 그러므로 행동은 정체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며 그 근거는 공동체 또는 기업이 갖는 세상에 대한 공통의 관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이미 해 온 일들, 특별히 행복의 집 후원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에 하던 일의 의미를 살펴서 단단하게 하고 다가온 기회를 통해 확장시키는 방향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행할 일이 아니고 관심을 필요로 하는 필요의 수요를 근거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내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의 확장성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으로 필요를 채운다.”
이러한 필요를 채우는 노력이 헌신입니다. 헌신은 그저 필요치 않다고, 남는다고 주는 것이 아니요,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피고 필요에 따라 챙겨서 전하는 행위입니다. 헌신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할 수 있다면 직접 해야 합니다. 심장병 어린이를 도울 때 우리는 직접 아동과 부모, 병원을 찾아 협의했고 수술비도 직접 병원과 협의하여 대납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귀찮지만 옳은 방식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의 본체가 단지 물질만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베트남에는 NGO뿐 아니라 이런 일들을 하는 단체와 개인이 많습니다. 이 좋은 일의 근거와 방향도 각자의 원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역시 그런 원리를 찾아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공동체를 두드리는 소리를 외면치 않기로 했습니다. 수고를 결심했습니다. 지혜롭게, 마음의 열정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감동으로 이 일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베트남 사회에서 섬김의 도전을 해 나가는 모든 분들께 글로 나마 응원을 보냅니다. /몽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