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도플갱어가 나타난다면..
도스토옙스키가 도플갱어를 다룬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찍이 도스토옙스키는 느닷없이 나타난 또 다른 나와 대결하는 하급 관리의 사투를 그린 ‘분신’을 1846년 발표했다. 새로 나온 ‘더블:달콤한 악몽’은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붕괴란 제목이 들어 있는 신문을 갖고 전철에 탄 사이먼(제임스). 이 첫 장면이 암시하듯 그에게 세상 모든 것은 적대적이고 극단적으로 무관심하기만 하다.
사이먼의 유일한 낙은 망원경에 의존해 아파트 건너편에 사는 회사 동료 한나를 훔쳐보는 것이다.외롭고 소외되고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이먼 앞에 어느 날 또 다른 남자, 활발하고 명랑하고 적극적이고 매력적인 도플갱어 제임스(사이먼)가 갑자기 나타난다. 사람들은 사이먼을 스탠리라든가 제임으로 잘못 알 정도로 사이먼에게는 무심하지만 제임스에게만은 백이면 백, 환대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사실 영화에는 사이먼과 제임스 외에도 수많은 거울상들이 출몰하고 사라진다. 혼자서 밤중에 자신의 피를 잉크 삼아 그림을 그리는 한나 역시 사이먼처럼 자신을 생기 없고 외롭고 기댈 곳이 없다고 느낀다. 한나는 일종의 사이먼의 거울상, 여성 분신이라 볼 수 있다.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감독 리처드 아요데는 깊은 밤 버스를 탔을 때 차창 너머로 비친 음화 같은 세상을 다양한 질감으로 현실과 뒤섞는다. 분신을 다룬 영화인 만큼 수많은 거울신과 반사신이 분열된 사이먼의 자아를 대변해 준다. 사이먼이 전철을 탄 첫 장면부터 기계의 파열음이 귀청을 때리고, 테리 길리엄의 SF영화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이미지가 시종일관 펼쳐진다.
사이먼이 행복한 감정에 젖을 때는 1960년대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사운드 ‘The Blue Comets’의 곡이 뜬금없이 흘러나온다. 게다가 엔딩곡으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햇님’이 사용됐다. 이 모두가 조각난 이미지를 간시히 이어 붙여 가는 자아가 몽타주 된 세상을 표현하기 위한 리처드 아요데 감독의 다양한 시도, 동과서, 구식과 신식 스타일의 이형접합일 것이다. 영화의 작은 부분들 역시 상징을 숨기고 있다.
예를 들면 한나만이 유일하게 사이먼과 제임스를 구별하는 여자라는 것, 그리고 하필 카피 혹은 더블이라는 주제를 가진 이 영화 속에서 복사 직원으로 설정된 것은 무슨 의미겠는가. 사이먼은 주변 사람들에게 뱀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피노키오라고 느끼며, 어느날 환기 통로에 떨어져 죽은 부서진 새를 발견한다.
이 모든 것이 사이먼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렇게 자살과 파국, 혼돈과 절망의 표지판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과연 구원은 존재할까? 결국 사이먼은 시스템 내에서 존재가 없어졌다는 판정을 받지만, 동시에 이는 부활의 징조가 된다.
‘더블 : 달콤한 악몽’은 자기 복제 시대의 암울한 우화다.
결국 맞서 싸워야 하는 자도 나이고, 사랑해야 하는 자도 나이며, 수용해야 하는 자도 나인 세계.
자아도취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암울하고 동어반복적인 세계.
이 세계와 주제가 새롭지는 않지만 1인 2역을 하는 제시 아이젠버그의 얼간이 연기와 신비롭고 아름다운 한나 역의 미아 와시코브스카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관람의 가치는 충분하다. 적어도 이 독창적인 배우들의 카피본이 할리우드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더블. 달콤한 악몽
감독 : 리처드 아요데
출연 : 제시 아이젠버그, 미아 와시코브스카
작성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