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을지라도 ‘다윗’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골리앗’이라는 거인에 맞싸웠던 소년 다윗의 서사는 시대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 전 팔레스타인의 시골 양치기 소년이 돌팔매질로 위대한 전사를 쓰러뜨린 내용은 모두를 흥분하게 합니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동화와 같이 회자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기는가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거인 앞에 선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에베스담밈의 엘라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이동해 봅시다. 골짜기 중간쯤 건너 시냇가에 한 소년이 몸을 숙인 채 바닥에서 뭔가를 찾고 있습니다. 돌멩이였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알고 본다면 이 장면은 믿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여기가 전쟁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가롭게 돌멩이나 줍고 있을 장소가 아니라는 거지요.
히브리인의 군대는 지금 블레셋 족속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는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입니다.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칼은 바닥을 때리며 곧이어 벌어질 살육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증오가 범벅이 되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엘라 골짜기, 당장이라도 피바다로 변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소년은 몸을 숨기지도 않고 양쪽 모두에게 노출된 채로 바닥만 살피고 있습니다. 하찮은 돌멩이를 고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너무도 사리에 맞지 않는 풍경입니다. 긴장감이 팽팽하니 그런 다윗의 모습이 오히려 평화로워 보입니다. 나비 한 마리가 곁을 지나쳐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오후의 햇살이 따사하게 시냇가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윗의 얼굴도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마치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계곡 위에서 외치는 거인, 골리앗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 그의 행동은 돌 고르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골리앗 장군도 어이가 없는지 욕설을 내뱉던 거친 입을 다물고 그를 지켜보고 서있습니다. 아니, 전장에 모인 왕과 군사가 모두 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골짜기의 왕의 진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을 온통 압도하고 있는 존재는 골리앗이었습니다. 키가 2미터가 넘는 거인은 11킬로에 육박하는 창을 가볍게 휘둘렀습니다. 그의 외치는 소리에 모든 사람이 움츠러들었고 오금을 저렸습니다. 병사들은 거인의 야만성에 대한 두려운 이야기를 입에서 귀로 전하며 그에게 압도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강한 존재는 양을 치며 쫓아냈던 사자나 곰이 아니라 그가 섬기던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신, 야훼의 능력에 감동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리에게 거인은 공포였지만 그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전까지 엘라 골짜기에 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거인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싸워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았을까요? 왕이 갑옷을 입혀 주었을 때 그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벗어버렸습니다. 무기도 거절했습니다. 최고의 전쟁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거절은 무모하다 할 만합니다. 하지만 이 행동을 용기라고 바꿔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고정관념에 지배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내로 내려가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돌을 고릅니다. 골리앗은 이런 다윗을 조롱합니다.
엘라 골짜기에 대치한 두 그룹에게는 선택지가 둘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골리앗을 앞세운 블레셋 군대이냐, 아니면 역사상 처음으로 왕을 세우고 결집하기 시작한 부족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걸 것이냐 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하나의 대안이 더 보였습니다. 그가 이 두 진영 사이에서 침착하게 돌멩이를 고를 수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는 그의 신이 자신에게 주었던 환경, 다시 말해 자기가 일해 온 시간, 자기가 경험한 일들, 그 과정을 통해 훈련된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돌 고르기를 마치고 무릎을 펴고 일어난 그는 지체없이 골리앗에게 돌진합니다. 바라보던 병사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들은 눈 앞의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자살행위였으니까요. 제일 놀란 것은 육중한 발걸음으로 쿵쿵거리며 걸어오던 블레셋 거인이었겠지요. 아마도 깜짝 놀라 굳은 듯 멈췄을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깃이 고정되었습니다. 이것을 놓칠 리 없는 그의 물매가 허공으로 두세 번 빙빙 돌더니 돌 하나가 세차게 날아가 블레셋 거인의 이마를 때리고 두개골에 깊숙이 박힙니다. 잠시 잠깐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40일 간의 대치상황이 종결되는 데는 4분이면 족했습니다.
새해입니다. 우리 앞에 수많은 골리앗들이 서있는 것을 봅니다. 두렵고 염려스럽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이야기를 읽으며 시냇가에서 돌멩이를 고르는 그를 헤아려 봅니다. 그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겪은 일 가운데는 참담하여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에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 적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의 눈일 뿐입니다. 우리가 다른 시각을 갖는다면 부끄러웠던 경험도 귀한 훈련의 시간으로 탈바꿈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회복의 출발입니다. 다윗은 남들이 보기에는 한계요 나약함이었던 것을 가지고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았습니다.
새해가 되어도 우리가 속한 환경에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그러한 환경을 읽고 해석하는 우리의 시각에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실패의 경험이 만들어 낸 나약한 우리의 과거는 내 앞의 거인을 쓰러뜨릴 경험이요 훈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단한 나를 만드는 강함의 원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쥘 다섯 개의 돌멩이를 고르고 무릎을 펴고 일어섭니다. 저 앞에 서있는 2023년의 중보병인 거인 장수를 바라봅니다. 나의 약점이 나의 강함이라면 그의 강함이 곧 그의 약점입니다. 그에게 성공의 경험, 자만, 결정과 집행의 느린 반응, 허세, 영화로움과 주변의 찬사가 있고 그가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면 내게는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 과거의 인정, 그를 통한 경험의 값, 빠른 결단 그리고 단호한 결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그를 향해 바람같이 돌진합니다. 진격! / 夢先生
박지훈
VLU(반랑대학교) 교수, 작가이며 호찌민시 문인협회 회원이다.
호찌민시 청년연맹 산하 SAC의 파트너로 물빛청년그룹과 아름다운공동체, 행복의 집을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