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제주도 특집 마지막 칼럼입니다. 이번 호의 주인공 평정지에는 작년(2013)에 제주도를 들썩들썩하게 한 화가입니다.
이 화가 때문에 이번 여름에 제주도를 간 것은 아니지만 저 또한 이 화가의 작품을 볼 생각에 제주행이 기대되고 마음이 한껏 들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달리 7년 전에 이 화가의 작품을 처음 본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미술대학의 인물화 수업 중에 척클로스, 메리 커셋 등 여러 화가의 작품들과 평정지에의 그림들을 프로젝터로 보았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다시 보고 싶어 시간을 내어 따로 찾아보곤 했었지만 평정지에의 작품들은 강의 시간에 스쳐 지나가듯 보고 나서는 따로 찾아보기는커녕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을 보고 들었던 생각은 ‘뭐야. 색을 왜 이렇게 썼지? 눈은 왜 사시(斜視)야? 이상해’ 등등 이었고, 그의 그림들은 제 시선을 붙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불쾌감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아트 잡지를 볼 때도, 중국 현대 작가들에 대한 책을 읽을 때도 제가 좋아하는 장샤오강과 위에민준의 작품은 꼼꼼히 보았지만, 평정지에에 해당된 내용이 든 페이지는 빨리빨리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 속 주된 색인 분홍과 초록의 조합이 너무 강렬해서 거부감이 들 정도로 부담스러웠고, 사시의 여인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월 초에 제주도에 가게 되어 계획을 짜던 중(주로 전시회를 관람하는 계획)에 어머니께서 ‘어느 유명한 중국 화가가 제주도에 작업실을 지었대. 여자 얼굴을 크게 그리고 …..’ 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자마자 제 머릿속에 한 화가가 떠올랐습니다. 혹시나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그 화가, 평정지에가 맞더군요.
대충대충 스쳐서 봤을 뿐인데도 ‘중국, 여자 얼굴’ 만으로 그가 떠오르다니 평정지에가 갖고 있는 이미지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안 좋은 첫인상으로 인해 항상 제대로 본 적이 없던 작품들을 이번에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웬 걸 ….. 다시 보니 작품이 매우 좋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꼴 보기 싫던 사시의 여인도, 분홍과 초록의 조화도, 무엇보다도 작품에서 이 화가만의 개성이 팍팍 풍기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중국 화가와 제주도가 무슨 연관이 있길래 제주도 특집일까 하고 궁금하시죠?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주도에 평정지에가 작업실을 지었습니다. 제주도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 최초의 해외 작가 작업실인 ‘펭 스튜디오(Feng Studio)’ 를 열었습니다. 베이징, 청두, 싱가포르에 이은 네 번째 작업실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평정지에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역시나 ….. 그런 운은 없었습니다. 그림에 주로 쓰인 색이 칠해진 건물이라 한 눈에 알아봤지만 처음 그의 작업실을 본 느낌은 ‘생각보다 작네’ 였습니다. 중국 작가라 큼직큼직한 규모를 기대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냥 평범했습니다.(1000평이 넘는 다른 작업실보단 100평 이내로 좀 아담하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의 입주를 기념해서 작년(2013년) 10월에 저지리 예술인 마을 안에 있는 제주 현대 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한 원정 관람객들이 많이 와서 개관 이래 최다 흥행이었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미술관들은 시원시원하게 큰 규모의 전시실과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잘 갖춰져 있지만 섬이라는 한계 때문에 관람객들이 마음 먹고 비행기를 또는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지 않는다면 육지에 있는 미술관들 보다는 자주 접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자, 그럼 이제 그의 그림들을 볼까요?
중국 여인으로 보이는 여인의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죠? 눈동자의 크기도 보통 사람보다 작게 표현되어서 항상 볼 때마다 섬뜩한 느낌을 받습니다. 작품 속 시선이 어긋난 여인의 눈동자는 현대화 바람으로 불안정한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착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방향이 다른 눈동자는 모순성을 대변하는 것, 최근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나. 그런 점을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다시 보니 어디에다가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여인으로 보이기도 해서 약간의 안쓰러움도 느껴집니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색(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왜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원색적인 붉은색과 초록색을 동시에 사용합니까?” 라고 묻자 “여러 색상을 쓰지만, 붉은색과 초록색을 좋아하는 것은 중국 전통 문화의 바탕이 되는 색이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내 그림은 한 폭의 그림에서 두 색깔이 서로 충돌했는데, 앞으론 그 강렬한 충돌과 대비가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화가는 답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자!’로 칼럼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자칫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색을 조합하여 과감하게 색을 쓰고, 평범하지 않는 사시의 눈을 가진 여인을 그린 평정지에처럼 생각과 느낌을 담아 자신만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림이 완성된 후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주변 사람들과 의미를 추측해보고 그림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