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 희극처럼 ‘웃프고 찡한’ 두근두근 내인생
체육 고등학교 출신의 태권도 유망주 ‘대수’는 상대선수 대신 교장 선생님을 발차기 해 정학을 당했다. 온통 녹음이 우거진 한여름 계곡, 여자 친구 하나만 생기기를 기원하던 그의 앞에 마침 지나가던 여고생, 아이돌을 꿈꾸던 대찬 성격의 ‘미라’가 기적처럼 풍덩 몸을 던져 나타난다. 그 여름, 17살 둘은 아이를 갖는다. 시간이 흘러 불과 서른셋의 나이에 16살 아들 ‘아름’의 부모가 돼 버린 대수와 마리.
그러나 아름이는 조로증으로 인해, 2차 성장도 멈춘 채 온갖 질병에 시달린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청춘과 늙음의 문제 부모 자식간의 교감, 그리고 절대로 놓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애찬이 풍성하게 수놓아진 감동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원작을 ‘스캔들’ 과’ 정사’의 이재용 감독이 영화화하고, 강동원과 송혜교가 대수와 미라 역으로 낙점됐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이들의 조합만으로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해 왔다.
이 영화의 근원적 매력은 아이는 어른 같고, 어른은 아이 같은 인간의 모순에 있을 것이다. TV에 나온 뒤 유명세를 타게 된 아름 앞에 게임기 선물이 도착한다. 게임기에 눈이 팔린 대수는 아름에게 지금 당장 게임을 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자기에게 달라고 애원의 눈길을 보낸다. 사실 애가 애를 키운 셈인 이 젊은 부부는 갈빗집 아르바이트에, 운전에 공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어떤 의미에서 대수와 미라 역시 현실의 팍팍함 앞에 조로해 버린 인물들이다. 영화는 그 옛날 채플린의 희극을 볼 때처럼 웃기고 슬프다. 특히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흐뭇하다는 것을 깨닫은 대수가 17년 동안이나 소식을 끊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장면은 가희 영화의 압권이라고 하겠다. 김갑수가 분한 아버지는 그저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 담배 한대를 피우라고 아들에게 권한다. 아들은 돌아서서 눈물을 삼키며 담배를 받는다. 정중동의 감동을 선사하는 이 장면은 감갑수란 배우의 연기 내공이 얼마나 정밀한 것인지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아름과 대수 부부, 부모도 아이도 차마 젊음을 누려보지 못한 채 이 팍팍한 지구별에서 삶을 헤쳐온 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헤어지지 않는다. 아니 헤어지겠다는 생각 자체가 전혀 없어 보인다. 원작과 영화의 비현실성은 아름이가 3000만명중의 하나가 걸릴까말까 한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설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절대 서로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데 있을 것이다.
무모하고 또 무모했던 젊음이 그저 허무한 간이역처럼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삶이 주는 선물로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투명한 햇살과 녹색의 녹음과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들이 동화적이고 서정적인 시간을 선물한다. 그런 점에서 17살 청춘은 부모와 또 자녀에게 중첩된다. 솔직히 영화를 보며 이재용 감독이 김애란 작가의 원작을 참 좋아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 보는 내내 아름이가 지은 시와 원작의 문장과 대사들이 낭송되고 인용된다. 이재용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자의식보다는, 잔잔하고 담담하게 ‘두근두근 내인생’이 가진 문화적 향기를 충실히 번안하는 쪽을 선택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보는 기쁨과 읽는 기쁨을 동시에 선사한다. 웃프고 찡하다.
두근두근 내 인생
감독 : 이재용
출연 : 강동원, 송혜교
작성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