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청소를 했습니다. 집안 일의 노고를 덜어줄 생각이었는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티가 나지 않습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다시 해? 아님 말아?
문득 초등학교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새로 학기가 시작되면 교과서를 지급받는데 책을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따로 커버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후에 비닐 커버가 나왔기에 책 표지 싸는 일이 수월해졌지만 그 전에는 해 지난 달력으로 책을 감싸곤 했습니다. 이것도 작업이라고 헌 달력, 가위, 자를 앞에 두고 재단을 해가며 나름 고생을 했는데 일의 클라이맥스는 하얀 달력 포장지 위에 과목의 이름을 쓸 때였습니다. 깔끔하게 표지를 싼 후 교과서 제목을 단번에 멋지게 쓸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딘지 비딱하게 맞춰졌든지 아니면 제목의 세로획이 흔들렸든지 하여 갈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걸 버리고 다시 싸? 아니야, 아니야,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뭘 그래? 눈 딱 감고 그냥 써.
마음에 갈등의 소리가 만만치 않았지만 어린 시절 얻은 결론은 맘에 안 드는 포장은 벗겨내자 였습니다. 이제 결론이 났습니다. 잠시 멈췄던 청소기를 야무지게 부여잡았습니다. 한 번 더 하기로 했으니까요.
무언가를 하다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사람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뉩니다. 한 사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내 안의 한 사람은 그래? 그래도 한 번 더 해봐야지 한다면 다른 한 사람은 별로 티도 안 나는데 뭘 다시 해? 하며 종용하는 거지요. 이런 일들은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살을 빼기 위해 혹은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하는 운동이 특히 그렇습니다. 첫날, 둘째날은 번개같이 일어나도 셋째 날이 되면 침대를 빠져나오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어딘가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은 귀찮은 거지만요.
그러고 보니 섭리주는 참 공평하십니다. 기회가 똑같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 기회를 재벌 부모 만나는 기회, 사업에서 대박 칠 기회로 여기니 불공평해 보이지만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디딜 기회로 본다면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이 바로 한 번을 더 해보는 사람입니다.
내자(內子)는 이런 점에서 최고의 사례입니다. 그녀가 항상 투덜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녀나 나나 큰 물을 보지 못한 충청북도 산골 사람인데 수영장에서 단 5미터를 가기에 쩔쩔매던 사람이 50미터 코스를 수차례 왕복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접영을 마스터하겠다고 열심입니다. 매일 같이 ‘귀찮아, 귀찮아’를 연발하면서도 수영장을 향하던 열심이 새로운 베트남 물개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그런 사람이 물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투정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5미터가 최고 거리인 제게 말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합니다. COVID-19 격리기간 증에도 정해 놓은 체중을 넘어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살덩이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막았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져야겠다는 명분으로 저녁마다 술자리에 고단백 먹거리가 넘쳐나니 소비되지 않은 칼로리가 그대로 체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래, 운동을 해야지 결심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한 번 더’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대로 몸무게를 감량했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오는 일들, 처음 시작은 요란하게 했는데 걸음을 띈 발걸음이 십리도 못 가 포기했던 기억이 경험에 허다합니다. 한 번 더 해보자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에드마일렛(Ed Mylett)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기세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사람인데 지금은 최고의 부자 중 하나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비결을 강의하는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딱 한 걸음만 더 가자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을 바꿀 만한 목표와 열정과 의지가 있습니까? 남들보다 딱 1퍼센트만 더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모두가 포기하고 물러날 때 거기서 딱 한 걸음만 더 나가보십시오.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숨겨진 기회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가 지난지 얼마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새해가 불쑥 코 앞에 닥쳤습니다. 바야흐로 말 많고 탈 많은 2023년이 본격적으로 개막되었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온갖 걱정으로 뒤덮여진 2023년이 진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아직 겪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걱정을 쌓고 있습니다. 걱정의 근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거의 확실합니다. 그러나 험난한 폭우가 몰아치는 중에도 누구는 생명을 구할 물을 얻고 누구는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되듯 같은 상황도 결과는 극에서 극으로 나타납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베트남의 성장률은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한국의 여러 기업이 퇴로를 물색하는 중에도 어떤 한국기업은 30%가 넘는 최고 성장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모두 같은 때,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걱정을 알아서, 앞당겨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2023년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나 하는 걱정을 덮어 버리고 하던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엄청난 전략을 세워도 그 바람대로 세상이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그때 그때 벌어지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맞상대하며 한 번 더 시도해서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베트남법인을 설립하는 일에 참여하고 운영까지 맡게 되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습니다. 뒤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중에 누군가 반대를 하건, 상황이 어렵게 닥치건, 목표를 둔 곳에 이르기까지는 앞으로 걸어가자고 했습니다. 지금 보니 꽤나 빙 돌아온 것 같은데 오기는 왔습니다.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이나마 내디디며 걸었기 때문입니다.
멈췄던 청소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틴루터킹주니어가 길거리 청소부의 일을 하게 됐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이 청소하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이 명작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한 번 더 해보는,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결심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다 보면 험난함이 예상되는 2023년일지라도 어느새 50미터 수영장을 왕복하듯 물살을 헤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5미터를 벗어나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夢先生
박지훈
VLU(반랑대학교) 교수, 작가이며 호찌민시 문인협회 회원이다. 호찌민시 청년연맹 산하 SAC의 파트너로 물빛청년그룹과
아름다운공동체, 행복의 집을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