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 가운데 최고로 인기를 누리는 덕담이 있습니다. ‘부자 되세요’가 그것입니다.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부자라 하면 돈이 많은 상태를 일컫습니다. 무얼 하든지 주저하거나 따질 것 없이 가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이 모두 ‘경제’, ‘경제’하며 돈에 목을 매는 때에 부자로 산다는 건 세상을 통제하는 중심 원리의 영향을 벗어나 테두리 바깥에 자유로이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부류는 불황이면 불황인 대로, 활황이면 활황인대로 그저 ‘굴리면’ 됩니다. 내가 써 줘야 막힌 데가 좀 풀리는 거라 하면서요.
누가 말하길 한국은 돈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저 나라 다녀보니 돈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됩니다. 뒷골목의 어둡고 짜증나던 인생살이도 훤하게 밝아지며 낙원 같아집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부자가 되는 것은 복 중에도 큰 복이랄만 합니다. 잠언에도 이르기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고 했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부자로 인정받으려면 대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지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1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 데이터(2021.12.16)’을 참조하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소득 상위 1%의 자산에서 부채를 감한 순자산은 29억 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부자의 기준이 나온 셈입니다. 2020년의 조사에는 26억 원이었다고 하니 12%가 증가한 금액입니다.
하지만 부자라고 다 같은 부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부자들도 자기들 중에 진짜 부자를 따로 구분한다 하네요. 그들을 요샛말로 ‘찐부자’라고 한다면 그들의 자산은 어느 정도일까요? 조사에 의하면 총자산이 최소 100억 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는데 부동산 자산이 최소 50억, 금융자산은 최소 30억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KB금융지주 금융연구소의 ‘2021 한국의 부자보고서(2021.11)’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과 부자가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에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최소한 두배에서 세 배에 이를 정도로요.
살펴보니 자료에 흥미로운 내용이 더 있습니다. 부자가 원하는 진정한 부자의 모습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43%),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기계발을 하고(37%), 겸손하고 검소하며(36%),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고(32%), 존경을 받는(31%)’ 부자가 되고 싶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돈만 바라고 살기 보다는 삶에 있어서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걸 보니 부자도 그냥 스크루지 같은 부자로 남고 싶지는 않나 봅니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돈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가치 있는 삶을 따지지 하며 이런 앙케이트 결과를 폄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에 브레이크가 없음을 인정한다면 이런 의지는 존중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속담에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들고 천하고 벌더라도 쓸 때에는 훌륭하고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면서 살려면 어디서 어떻게 구르더라도 기를 쓰고 벌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 속담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잘못된 해석입니다. 단어에 개가 접두사로 붙으면 그리 달갑지 않은 의미가 되는 것이 우리말인데 그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듯합니다.
있는 꼴 없는 꼴 참아가며 모으고 아껴 큰 부자가 되고 나면 걷는 길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돈이 삶의 목표가 되어 버립니다. 금고를 가득 채웠어도 그의 눈에는 더 채울 공간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종국에는 부의 노예가 되어 돈 냄새만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어느 선에서 멈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받은 부의 복을 감사하고 다른 삶의 방향을 살피는 부류입니다. 앞서 설명한 부자가 원하는 진정한 부자의 모습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거지요. 이런 경우를 가리켜 아마도 정승같이 쓴다는 하는 것일 게입니다.
그런데 찐부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일들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찐부자 위의 ‘참 부자’가 아닐까요? 돈이 없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그런 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돈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돈은 먹고 사는 것을 감당할 수준이 될 때까지 필요한 것이지 임계점을 넘으면 실제의 효용을 잃게 됩니다. 부자나 서민이나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것은 동일한 원리입니다. 한 끼의 가격은 다를지 모르지만 가치는 동일합니다. 기본을 채우고 효용을 넘어서는 돈은 재빠르게 욕심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일용할 양식 이외의 것을 탐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돈이 효용의 가치를 채웠을 때, 그와 더불어 하는 일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그 방향이 찐부자들이 원하는 ‘가치’의 방향일 겁니다.
돈을 벌어 일용할 양식을 감당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더 중요한 가치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기계발을 하고, 겸손하며,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부자를 넘어서는 참 부자입니다. 부자들이 소망하는 인생을 먼저 살아가는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분들이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부자에 대한 세상의 정의가 뒤틀려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입니다. 문득 유명한 탤런트가 나와서 환한 미소와 더불어 부~자 되세요 하던, IMF의 후폭풍이 채 가라앉지 않았던 그 해의 광고가 생각납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최근 이 광고가 리메이크되어 방송을 탔다고 합니다. IMF 탈출급 격려가 필요할 정도로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곤경이 없어야겠지만 올 한 해는 돈만 아는 부자를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도 원하는 참 부자가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해 겸손히 애쓰며 한 끼조차 먹기 힘든 이들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이미 진짜 부자의 길로 들어섰을 것입니다. 비록 통장의 잔고는 찐부자는 커녕 일반 부자들의 그것과도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요.
베트남에서 생활하는 모든 분들께 크게 목소리 내어 외칩니다. 새해에는 진짜 부~자, 참 부자 되세요. 해피뉴이어~.
박지훈
VLU(반랑대학교) 교수, 작가이며 호찌민시 문인협회 회원이다. 호찌민시 청년연맹 산하 SAC의 파트너로 물빛청년그룹과
아름다운공동체, 행복의 집을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