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3,Saturday

한주필칼럼 – 창조적 파괴

 

 

지난 주말 한국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강원도에서 명태를 받아 황태로 만들어 강원도 오지까지 명태를 운송하는 어느 지긋한 연세의 트럭 기사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눈길에 운전이 어렵겠다는 질문에 트럭 운전 30년을 해왔다며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운전실력이 좋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저는 좀 다른 면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30년 동안 계속 트럭을 운전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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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에는 택시나 트럭 운전에 수십 년간 종사한 베테랑 기사들이 아주 많습니다. 운전기사라는 직업을 수십 년 동안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그 답을 찾아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차를 직접 모는 사장님입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별다른 문제 없이 생활을 꾸려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목표를 세우는 일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신문보도에 따르면 애플이 전기 자동차를 만든다고 합니다.

프리미엄 폰의 상징과 같은 애플 폰을 만들어 떼돈을 벌며 세계 최고의 기업가치를 지니고 있는 애플이 왜 새로운 정글인 전기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나요? 그들에게 돈이 더 필요 한가요? 전기자동차 시장은 이미 테슬라와 현대를 비롯한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이 십수 년을 준비하며 다져온 시장입니다. 비록 애플이라 해도 그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은 국면입니다. 자칫하다가는 그동안 쌓아 올린 명성과 자금을 새로운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대가로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할까요?

경쟁 속에 변화하며 살아야 한다는 기업이라는 운명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업가를 뜻하는 Entrepreneur라는 단어의 어원이 가진 의미는 위험을 감수하고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기업인은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를 주도하는 자입니다. 기업 하는 사람이 현실에 안주하며 위험을 회피한다면 그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창조적 파괴가 국가적으로 일어난 기록이 있습니다. 1961년 군부 혁명이 그것입니다.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누구도 부인 못 하는 한가지는 그들, 군부 세력에 의해 한국의 경제개발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1961년 군부 정부가 들어서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자는 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 실천 방안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민과 함께 많은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것을 시작으로 경제를 도약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군사 쿠데타라는 파괴를 했지만, 구태를 몰아내고 경제개발이라는 창조를 이룬 것입니다.

창조적 파괴란, 목표 성취를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고통을 흔쾌히 감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꿈을 이루려는 개인에게도 적용되겠지만 기업인에게는 선택이 아닙니다. 숙명적으로 늘 해야만 하는 의무 사항입니다.

기업이 가장 위험할 때는 모든 것이 별 문제 없이 잘 돌아갈 때입니다. 회사의 모든 사항이 계곡을 휘감아 내닫는 물처럼 시끄럽지 않고 잔잔한 호수에 담긴 물과 같이 고요할 때, 
그 회사는 더 이상 살아갈 에너지를 잃은 위험한 생명체가 됩니다.

제 친구 중에 껀저에서 새우농장을 운영하는 선재승 사장이 있습니다. 새우는 일정 공간에 물을 채우고 새우를 넣어 먹이를 주고 양식합니다. 그런데 일정 공간에 물을 받아두고 있으니 이 물은 흐르지 않습니다. 흐르지 않는 물의 가장 큰 문제는 금방 썩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우농장의 물은 매일 바꿔줍니다. 그리고도 모자라,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물에 공기를 불어 넣어 물방울을 만들어주는데, 이 물방울은 작을 수록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사장은 나노 공법을 개발하여 미세한 물방울을 만들어 새우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만드는 신기술을 개발하여 그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고인 물은 그냥 두면 안락하게 지내긴 하지만 서서히 죽어갑니다. 생명에 필요한 물은 되지 못합니다. 생명이 생동하는, 살아있는 물을 만들기 위해 순환시키고
공기를 불어 넣어 주어야 합니다. 오염된 공기가 아니고 맑은 공기를 말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동안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업의 경우는 더욱 절박합니다. 그대 기업은 끊임없이 순환시키고 산소를 공급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서 이루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잊지 않고 있나요? 10년 후, 그대 기업의 모습을 그린 청사진은 있나요?  

이 모든 질문은 제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는 말입니다. 간신히 코로나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긴 했지만, 그것으로 숨을 돌리기에는 앞길이 너무 험합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반토막 난 매출을 다시 끌어오기 위한 단기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세태 변화에 따른 회사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플랜은 있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아직 그런대로 살고 있다고 하루하루를 고민 없이 그낭 보내고 있는가?

그 편안한 하루 동안에도 이미 구태의 흔적으로 남은 오프라인 매체는 그 수명을 다해갑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단기적, 장기적 계획은 무엇인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있는가? 목표조차 없다면 희망도 사라집니다.  

미래의 희망을 품고,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 계획을 수립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는 한데, 과연 이 늙은 아이에게 그런 능력이 남아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새해에는 동쪽에서 귀인이 찾아온다는 운세라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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