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님들이 가장 기다리던 한가위, 그날이 얼마나 그립고 반가운지 조상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속담을 남겼다.
한가윗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얘기다.
박완서님은 한가위를 기다리는 그 말에서 오히려 한가위 외의 고단한 날들의 슬픔을 읽는다고 어느 글에선가 언급한 것을 본 것 같다. 하긴 그렇다. 한가위가 그렇게 풍요롭고 즐겁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날들의 고단함이 감춰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한가위에 얽힌 이야기나 속담이 많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보면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 이라는 말도 있다. 시집갈 때 가장 곱게 입는 것과 같이 그렇게 입고 음식은 한가위 때처럼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삶의 희망을 기원한 속담이다.
그런가 하면 ‘보은 아가씨 추석 비에 운다’ 라는 속담도 있다.
추수철인 가을에 비가 오는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의 속담이다. 곡식이나 과일이 결실을 맺어 수확할 때인 추석 무렵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들어 혼수를 장만하지 못하게 되므로 시집을 가기 힘들어지게 된다는 얘기를 대추의 고장으로 이름난 보은을 예로 들어, ‘가을비로 인해 대추 흉년이 들면 보은아가씨 시집가기 힘들어 눈물을 흘린다’라고 빗대어 말한 것으로 흉년에 대한 경계와 풍년을 소망하는 뜻이 담긴 속담이다. 그 외에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처서에 비가 오면 사방 천리 천 석을 감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항아리 쌀이 준다’, ‘말복이 지나 열흘 동안 뻐꾹새가 울면 풍년이 든다’ 라는 속담도 있다. 모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나온 가을 속담들이다.
그런가 하면 추석의 대표 음식인 송편에 관한 얘기도 많이 있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시집가서 예쁜 딸을 낳는다며 식구끼리 둘러앉아 경쟁하듯 송편을 빚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이야 그런 풍경 구경도 못한 아줌마들이 송편을 빚기는커녕 아예 구입품목에서 빼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누가 요즘 촌스럽게 송편을 먹느냐며, 이런 분들을 위해 시 한 수 들려준다.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이 남긴 송편 예찬이다.
손바닥에 굴리고 굴려 새알을 빚더니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입술 붙이네
금반 위에 오뚝오뚝 세워 놓으니 일천 봉우리가 깎은 듯하고
옥 젓가락으로 달아 올리니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역시 천하의 김삿갓이다. 이 귀한 글 재주를 무전취식을 위해 사용하였다니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송편에 얽힌 이야기로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조선시대 숙종 임금의 일화로 시작된 속담으로, 어느 날 숙종이 밤에 미행으로 남산골을 순시하였다. 밤이 깊은데 어디서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나서 소리를 좇아가 보니 어느 오막살이에서 흘러나왔다. 들창 사이로 방안을 엿보니 젊은 남편은 글을 읽고, 새댁은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젊은 선비 내외의 모습은 비록 가난하기는 하나 귀엽고 흐뭇해 보였다. 얼마쯤 지나 청년이 책을 가만히 덮더니 밤이 깊어 속이 출출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새댁이 조용히 일어나서 벽장 속에서 주발 뚜껑에 담은 송편 두 개를 꺼내 놓으면서 드시라고 했다. 선비는 반가운 듯 얼른 한 개를 집어먹더니 두 개째 집어 들었다. 그러자 왕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시장하기는 마찬가질 텐데 새댁 하나 줄 것이지 하며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선비가 송편 하나를 물고 새댁의 입에 넣어 주는데 서로 사양해 마지않으며 즐기는 것이었다. 왕은 부부의 애정에 감동하여 부러운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나인을 불러 송편이 먹고 싶다고 하자 부산을 떤 끝에 큰 수라상이 들어오고 큰 푼주에 송편을 높다랗게 괴어 전후 좌우의 옹위를 받으며 야단스럽게 들어오지 않는가. 눈앞에 그리던 어젯밤의 환상은 깨져 버리고 울컥 화가 치민 왕은 불현듯 “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 하고 송편 그릇을 내동댕이쳤다.
모두 왕의 심정을 알 리 없어 의아했을 뿐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 가지에서)
가난한 자들만 누릴 수 있는 기쁨도 있는 법이외다. 상감마마.
하하하
한가위를 가족과 보내려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여전히 이놈의 숙제, 그 잘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꼬리처럼 따라다닌다. 이상한 일이다. 한국에서 쓰는 글은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베트남 잡지라서 그런지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쓰는 글은 그러려니 하는데 이곳에 와서 하는 숙제는 정말 무겁다. 마치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듯한 기분이다.
몸이 떠나니 마음도 함께 하지 못하는 듯하여 글 문도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한가위에 대한 잡설을 이곳 저곳에서 읽고 옮겨봤다. 별로 자랑스런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어두면 나쁠 것까지는 없을 것이라 스스로를 자위해 본다.
또 한편 추석이 휴일도 아닌 베트남에서 여전히 마감일자에 쫓기며 일에 시달리고 있을 직원들을 생각하니 미안함에 마음이 무겁다. 돌아갈 때는 한국에서 빚은 솔 향기 배인 송편이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휘영청 밝은 한가위 둥근 달, 저 환하게 웃는 보름달을 그곳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더불어 저 밝은 달빛이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그 삶의 발길을 환하게 밝혀주기를 기대해본다.
작성자 : 한 영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