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모임은 요즘 서양 미술사( The Story of Art, 곰브리치 저 )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688 page에 무게가 1.9kg 나가는 벽돌책의 끝판왕입니다. 저희 모임에서 읽은 종이책중 가장 무거운 책 분야의 기록을 갱신하였습니다. 이책에서 는 구석기인이 기원전 15,000년에 그렸을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라는 작품으로 미술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스타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1982년작 <어머니> 까지 언급하며 장장 17,000년에 달하는 미술사를 정리합니다.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던 나라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다 보니 이집트부터 그리스, 로마, 서유럽, 남미, 중국의 각 도시들을 넘나듭니다. 나라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언급되는 도시들도 너무 방대하여 세계 지도의 도움없이는 명확한 이해가 어렵습니다. 거기에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비롯해 미술품을 주문했던 권세가들과 그들에게 미술품을 공급했던 주요 미술가들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머리가 아파옵니다. 중세미술을 끝내고 르네상스 미술의 세계를 열었던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이름은 마치 이태리 식당의 메뉴판에서 튀어나온것처럼 복잡하여 암기를 포기할수 밖에 없습니다. 깨알같은 글씨와 엄청난 무게, 생소한 도시와 이름들의 잔치, ‘과연 우리가 이책을 끝낼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이 책을 선정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 우려와 실제 읽을때 부딪치고 있는 독서의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선정할땐 모임 구성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인류가 갖고 있는 그림에 대한 원초적인 호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화가였습니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며 놀았습니다. 연필, 색연필, 크레용은 학용품이 아니라 장난감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나를 그리면서 즐거웠고, 그것을 바라보면 기뻐하는 부모님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좋아하는 그림책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을 따라 그리며 행복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미술 시간이 생기고, 그림 그려오기기 숙제가 되고, 평가의 대상이 되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와 못그리는 아이가 나누어지게 됩니다. 친구보다 못 그린 내 그림을 보기가 싫어지고, 점수를 받기 위해 숙제와 시험으로써의 미술을 꾸역 꾸역하다가, 수험생이 됩니다. 입시 미술을 준비하지 않은 이상 대학진학에 도움이 안되는 미술과 자연스럽게 멀어지죠. 그리고 미술은 취업에도 크게 도움이 안되고, 취업 이후 먹고 사는 것과도 큰 상관이 없으므로 그냥 그렇게 잊고 살게 됩니다. 그게 미술과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관계인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림은, 잃어버린 낙원처럼 우리의 무의식속에 남아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고, 잘 그린 그림 혹은 인상적인 그림을 보면 일단 멈춰서서 주목하게 됩니다.
어떤 그림이 너무 예뻐서 좋습니다. 그 그림속의 꽃이 너무 예쁘고, 나무의 색깔이 마음에 쏙 듭니다. 그림속에 등장하는 천사가 입은 옷이 너무 예쁩니다. 어떻게 저런 예쁜 문양을 그려넣었을까요? 작가의 실력과 노력에 감탄이 나옵니다. 어떤 그림은 너무 슬퍼서 좋습니다. 그 그림 안에는 너무나 슬픈 내용과 슬픈 표정의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표정을 한참 보다보면 내가 그 사람이 된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그림은 너무 환상적이고 기괴해서 좋습니다. 엄숙하고 딱딱한 이 세상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내 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소망을 그 그림이 실현해 줍니다. 작가가 머리속에 들어와서 내 꿈을 찍어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그림은 너무 기발해서 좋습니다. 많은 현대 미술 작품 들이 그러한데, 처음 보면 이게 뭐야 하다가 그림 밑에 붙어 있는 그림 설명이나 제목을 보고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이유로 어떤 그림을 좋아하게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몇개가 있으면 그 그림을 통해 기쁨을 얻고, 위로를 받고, 내가 몰랐던 내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고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집니다.
지금 내가 그림을 잘그리건 못그리건,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그림들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빠져 살고 있는 핸드폰을 켜는 순간, 형형색색의 빛깔과 로고로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들이 오열종대로 나란히 서서 우리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스타벅스의 인어 로고도 보이고, 유튜브의 빨간색 네모안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플레이 버튼도 보입니다. 사각형 녹색 바탕안에 흰색의 N으로 써있는 네이버 앱을 눌러 새로운 화면속으로 들어갑니다. 비쥬얼 시대에 글만 있는 신문 기사는 없습니다. 현장 사진 자료가 없는 강력 사건에 관한 기사라면, 파출소 사진, 경찰청 로고라도 기사 중간에 넣고, 사건 경위에 대한 도표로 기사의 이해를 돕습니다. 앱에서는 글자도 단순히 뜻만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적에 맞게 각양각색의 크기와 색깔, 글꼴로 독자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시선과 시간을 사로잡아 궁극적으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목적을 가진 광고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림의 역사를 알게 되면 우리의 사회에서 시각화된 기호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왜 나의 시선을 빼앗고 있는지, 그로 인해 내가 내리는 결정은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을 수 있습니다.
그림은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하던 식으로 공부를 하려고 하면 더 싫어질 수 있습니다. 연도별로 미술사조, 작가와 작품 외우기를 하는 식의 미술공부는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미술책에서 몇개의 그림이라도 좋아하는 그림을 발견하고 그 그림에 대해 파고들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그림과 관련된 다른 그림들을 발견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아름다운 보석들을 모은 후에 목걸이를 만들고 싶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보석같은 그림들에 대한 지식을 꿰어서 아름다운 목걸이로 만들어 줄수 있는미술사에 대한 책을 찾게 될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듯이,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즐겁듯이, 그렇게 그림과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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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