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미국 달러화의 초강세가 26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고 연합뉴스가 26일 보도했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하루에 20원 이상 뛰어올랐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새 정부의 대규모 감세 정책에 따른 재정위기 우려까지 겹치면서 달러화 대비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중국 위안화는 2년여 만에 이른바 ‘포치'(破七: 7위안 돌파를 의미)가 발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약세를 지속해 당국이 부랴부랴 통화가치 방어 정책을 내놨다.
지난주 일본 당국의 시장 개입에 ‘반짝’ 반등했던 엔화의 가치는 재차 내려 정부가 다시 구두 개입에 나섰다.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 하락에 아시아 증시 역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 거래일보다 22.0원 급등한 달러당 1,431.3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개장 직후 1,420원선을 돌파한 데 이어 1,430원선까지 뚫었다.
원/달러 환율이 1,430원선을 웃돈 것은 2009년 3월 17일(고가 기준 1,436.0원) 이후 13년 6개월여 만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들어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포인트 끌어올린 데 힘입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자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과 필리핀이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서 원화가 필리핀 페소화와 더불어 아시아 국가 통화 중 가장 취약한 통화라는 관측도 나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달러 초강세는 아시아 신흥국에 이어 선진국인 영국까지 강타했다.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정책 발표에 이어 추가 감세까지 예고하면서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사상 최저로 추락했다.
지난주 영국 정부의 대규모 감세안 여파로 1985년 이후 처음 파운드당 1.09달러 아래로 떨어진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도 아시아 시장에서 4% 이상 추가 급락, 장중 1.0327달러까지 추락했다. 이는 파운드화 가치 역대 최저치라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이후 한국시간 오후 4시 51분 현재는 1.06달러 대로 낙폭을 축소한 상태다.
앞서 지난 23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새 내각은 2027년까지 450억 파운드(약 70조원)를 감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예산안을 발표했고,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25일 BBC 인터뷰에서 추가 감세정책까지 예고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심해지고 정부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가 퍼졌다.
이에 블룸버그에 따르면 옵션시장이 추산하는 ‘1파운드=1달러'(패리티) 현실화 가능성은 23일 32%에서 26일 60%로 치솟았다.
1유로 가치가 이미 1달러 아래로 내려간 만큼, 파운드화도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위안화 가치도 이날 달러당 7.1630위안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 16일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달러당 7위안이 뚫린 뒤에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에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날 위안화 기준 환율을 달러당 7.0298위안으로 고시했다. 인민은행이 이를 7위안대로 고시한 것은 2020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인민은행이 그간 마지노선으로 간주된 7위안선을 수복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날 인민은행은 오는 28일부터 위안화 선물환 거래에 대해 20%의 위험준비금(증거금)을 부과하기로 하는 등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섰다.
외환위험준비금은 중국 은행들이 선물환 거래를 할 때 인민은행에 1년간 무이자로 예치해야 하는 금액이다. 기존에 0%였던 위험준비금 비율을 이번에 20%로 높인 것은 선물환 거래 비용을 증가시켜 위안화 매도를 줄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중국이 세계 각국과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지만 위안화 가치 방어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호주 맥쿼리그룹은 중국의 무역흑자가 올해 1조달러(약 1조423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위얀화의 하락 추세는 막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화가 많아지면 해당 국가의 통화 가치는 오른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중국 수출업체가 벌어들인 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맥쿼리 측은 지적했다.
중국 상품수지 흑자액 중 위안화로 환전된 비율은 올해 8월까지 36%에 그쳐 작년 동기의 57%를 훨씬 밑돌았다. 이는 수출업체들이 위안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거나 자국 내 사업에 위안화를 재투입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맥쿼리는 설명했다.
맥쿼리는 상품수지 흑자액의 위안화로 환전 비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중국 시장에서 자금 유출을 상쇄했을 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본 엔화 가치도 달러화 대비로 143.91엔까지 떨어졌다. 지난주 일본은행의 직접 개입에 따른 엔화 가치 만회분의 절반 남짓을 내줬다.
앞서 지난 22일 일본은행은 엔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엔화를 사고 달러를 파는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이는 1998년 6월 이후 24년 3개월 만의 일이다.
이 덕분에 당일 장중 심리적 저지선인 달러당 145엔까지 무너졌던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0엔 초반대까지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날도 엔화 약세가 이어지자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투기적 움직임을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필요시 대응이라는 우리 입장엔 어떤 변화도 없다”고 말하며 구두 개입을 했다.
스즈키 재무상의 이날 발언은 당국이 추가 개입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이 동참하지 않는 한 일본 당국의 엔화 매수 조치는 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미 재부무는 일본의 직접 환율시장 개입 조치를 이해한다면서도 그런 행동을 지지한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강달러의 충격에 이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식시장도 일제히 급락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02% 떨어진 2,220.94로 마감, 2년 2개월여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코스닥은 5.07% 추락한 692.37로 2년 3개월여 만에 700선 아래에서 거래를 마쳤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닛케이225)는 2.66%, 대만 자취안지수는 2.41%, 호주 S&P/ASX 200 지수는 1.60% 각각 떨어지는 등 다른 아시아 주요 증시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중화권 증시도 오후 들어 하락세를 심화, 상하이종합지수는 1.20%, 선전성분지수는 0.75% 각각 하락 마감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한국시간 오후 4시 20분 기준 0.66% 내린 상태다.
연합뉴스 2022.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