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여 전부터 집에 고양이를 키운다. 한국과 달리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집사람에게 고양이 두 마리는 훌륭한 친구가 되어 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를 좋아한다. 그러나 좁은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보통 정성으로 감당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좀 손이 덜 가는 고양이로 대리 만족하는데, 고양이 역시 훌륭한 반려동물이 된다.
그러나 개와 고양이는 진짜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어느 책에 이런 글이 있다.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 그들은 나의 神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 나는 그들의 神이야”
개는 고양이를 배은망덕한 동물이라 생각하고, 고양이는 개를 멍청한 바보라고 생각할 게다.
반려동물을 끔찍이 사랑하여 사료를 준비해주는 인간은, 개 앞에서 신이 되지만 고양이 앞에서는 종 신세가 된다.
가족을 사랑하는 부인이 준비해 준 식탁을 받아보는 남편에게 부인은 신의 대접을 받으시는가?
가족을 사랑하여 한달 내내 야근을 불사하며 받아 온 봉급을 고스란히 부인에게 내놓는 남편은 부인에게 종인가, 신인가?
세상의 일은 이렇게 돌아간다.
전혀 다를 바 없는 같은 일이라도 받아들이는 존재에 따라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이런 일이 대표적으로 일어났던 곳이 중국이다. 중국에는 수많은 외국기업들이 투자하며 중국의 경제 발전에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런 외국 기업은 중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신이 되었을까? 아니면 종 노릇을 했을까.
삼성전자는 그런 중국에서 종 노릇이 싫어서 대부분의 공장을 철수했다. 그제야 중국에서는 삼성이 종이 아니었나 보다 하며 현실을 조금 인식하지만, 여전히 신은 고사하고 고마운 은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긴 그런 행태는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역시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할 때는 신처럼 모시겠다고 손을 모아 약속하는 듯하지만 일단 투자 결정이 내려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번에 바이든은 전기차 보조금을 자국 기업에만 한정한다는 입법안에 서명하여 미국진출에 심열을 기울인 현대 기아 자동차의 열기에 찬물을 확 부어버렸다.
그러면 베트남은 어떨까? 말하면 무엇하랴.
아마도 가장 극명한 태도를 보이는 곳이 베트남일 것이다.
베트남은 자신의 GDP의 25%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에 대하여 꾸준히 반도체 공장을 건설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자국에 진출한 LG 등 한국기업의 특허 기술을 빼내서 무단히 사용하다가 국제 소송이 걸린다.
늘 먹이가 부족하다고 투정을 부리며 사료 통을 무단히 뜯어내는 고양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에 나가 일하다 돌아온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에 돌아와서도 한국에서 매월 받던 최소 기백만 원 이상의 급료를 잊지 못해 한국 투자 기업에 지원서를 내며 같은 봉급을 요구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 능력이 뛰어나서 그 높은 급료를 받았을까?
속된 말로 착각은 자유라지만, 자신의 처지는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자신에게 부여되는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이 있다면 절대로 주제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 때 누리던 풍요에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면 정도를 넘은 요구는 애당초 생겨나지 않는다.
늘 반복되는 호의가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는 고양이의 착각과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착각과 오만이 고달픈 삶을 만든다는 보장은 없지만, 삶의 환희나 기쁨이 덜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베트남은 일류의 기술과 훌륭한 일자리를 제공한 한국에 감사하고, 한국은 뛰어난 손재주와 저렴한 인건비를 제공한 베트남에 감사할 때 우리는 서로 主人이 되고 神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