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부자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먼저 자리를 잡은 분들에게서 부러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요한 위치의 베트남 사람들을 알고, 주변 사람들의 힘을 빌어 문제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또 신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네트워크라는 게 시효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현직에서 물러날 때였습니다.
계급장 떼고 붙자는 표현을 아실 겁니다. 군대에서는 명령에 의한 위계, 상명하복의 원칙을 벗어날 길이 없으니 상관의 명령에 반발하는 길은 그 계급 문화의 상징인 계급장을 떼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급이 깡패라는 속어처럼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걸친 옷의 계급이 주는 권위가 무서운 것이니까요.

‘부자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A rich man’s joke is always funny)’ 라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부자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항상 들끓습니다. 그 부자와의 관계가 이익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부자가 농담을 합니다. 재미없고 썰렁한 농담입니다. 그런데도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어 댑니다. 웃지 않으면 부자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될 것이고 부자가 찡그리면 그의 일에 한몫 낄 수가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부자의 농담은 우습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으로부터 억지로라도 웃어줄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높은 지위나 큰 재물을 가진 이의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그들은 다투어 공경과 충성을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걸친 권력과 부에 대해 경의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첨과는 또 다른 뉘앙스의, 사람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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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에 강대국인 진(秦), 연(燕), 제(齊), 초(楚), 한(韓), 위(魏), 조(趙) 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하여 한 해가 멀다 하고 전쟁을 치렀습니다. 서쪽 대부분을 진나라가 차지하고 나머지 여섯 나라가 동쪽을 분할하여 다스렸습니다. 이 시기에 소진(蘇秦)이라는 사람이 동쪽 여섯 나라를 돌며 설득해 진에 대항하여 하나로 뭉치게 했는데 이를 ‘합종연횡(合從連橫)’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 공로로 여섯 나라의 재상직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도 처음 유학할 때에는 돈을 벌지 못하고 어렵고 힘들게 생활을 하였습니다. 형제와 친지들은 그를 무능력하다 비웃으며 함부로 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였고 결국에는 천하를 돌면서 합종의 맹약을 성사시켜 이들 여섯 국가 연합의 재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그가 고향인 주나라로 돌아오자 왕으로부터 환대를 받았음은 물론이요 모든 이가 우러러 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화려한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그를 비웃던 형제와 형수들이 어땠겠습니까?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그 맛을 제대로 모를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고개를 조아리고 소진의 눈치만 보기에 바빴겠지요. 소진이 이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웃으며 물었습니다.
“전에는 그토록 나를 쥘 데 없는 똥 바가지같이 대하시더니, 지금은 이토록 공손히 조아리시니 웬일들이십니까?” 소진의 형수 하나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계자의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계자는 소진의 자(字)였습니다.

베트남에서 모두가 알 만한 큰 기업의 법인장쯤 되면 주변에 사람이 많습니다. 그가 친하다 하는 사람은 적을지라도 그를 친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넘칩니다. 힘이 있으니 정부의 높은 자리 분들도 쉽게 만납니다. 그에게서 일거리를 받기를 원하는 회사들이 줄을 섭니다. 그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분주해집니다. 그가 웃으면 모두가 웃고 그가 입을 다물면 눈치를 봅니다. 협력업체라면 속에서는 불만이 불 일 듯할지라도 아무도 앞에서 대놓고 지적하지 못합니다. 그의 서명이 있어야 기성을 받게 되니 거짓 미소라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머리도 조아려야 합니다. 이 정도 대접을 받게 되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었더라도 변하게 됩니다. 그의 마음이 원치 않아도 주변이 그를 바꿉니다. 대접받기를 자연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뻣뻣한 목을 당연히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웃으면 정말로 자기 말에 감동한 것으로 압니다. 물론 그의 인품이 훌륭하고 인격의 향기가 멀리 퍼져 사람을 모여들게 했다면 이 예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이들을 만나기는 가물에 콩 나는 듯합니다. 그러니 이 정도면 베트남판 부자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는 말로 통합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그에게도 더이상 부자가 아닐 때가 옵니다. 계급장을 떼야 할 시간이 옵니다.

높은 지위의 특별한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동남아 사람들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길을 묻는 상황을 설정해 보여준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런 경향이 뚜렷합니다. 브라질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북미의 한국 교포들은 남미의 교포들을 낮춰본답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베트남의 한국 교민들은 좀 나을까요? 주변을 돌아보면 답은 금방 나옵니다. 베트남 사람을 대하는 그들의 톤 높은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도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식당에서는 웨이터를 큰 소리로 부를 용기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북미 교포나 베트남 교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가짜 부자입니다. 진짜 부자가 아닌 이들은 자기 노력으로 얻지 않은 계급장의 힘을 자기의 힘으로 착각합니다. 앞서 들은 고사에서 소진은 이를 알았습니다. 그가 가짜 부자였다면 분을 내며 상을 엎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며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부귀하면 상감마마 모시듯 하고 빈천하면 발꿈치의 때 만도 여기지 않으니, 일반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어느덧 현업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 어깨의 계급장이 떨어지고 회사의 이름이 더이상 나의 배경이 되지 않는 때가 이릅니다. 자연인으로서 베트남이라는 이방의 땅에 홀로 서는 때가 곧 옵니다. 그때가 되어도 지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지금 호형호제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여전히 나의 형제일까요? 내 지시에 모든 일을 챙기는 저 사람이 그 때에도 ‘네’ 라고 대답할까요? 나의 썰렁한 농담이 남들을 웃게 할까요? 지금 높은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의 농담도 웃어줄 만할까요?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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